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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새는데 보험금 안 나온다?…분쟁사례별 소비자 유의사항
  • 김상우
  • 등록 2025-12-17 15: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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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세 세입자, 매립 배관 동파사고는 집주인 책임
  • - 이사 후 주소 변경 깜빡하면 무용지물
  • - 인테리어 공사·장기 휴업 숨기면 보상 안 돼

금융감독원이 보험금 지급 관련, 주요 분쟁 사례를 알렸다


영하권을 맴도는 강추위가 시작됐다. 겨울은 수도관 동파나 화재, 강풍 피해 등 집과 건물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나는 계절이다. 


많은 소비자가 만일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해 두지만, 막상 사고가 터졌을 때 '보상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1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겨울철 주요 분쟁 사례를 통해, 보험금이 눈 녹듯 사라지는 '함정'을 피하는 법을 정리했다.




세입자의 눈물, "배관 터졌는데 왜 내 보험 안 돼요?"


겨울철 가장 빈번한 사고는 단연 누수다. 전세로 아파트에 거주 중인 임차인 라임차 씨는 최근 한파로 베란다 매립 배관이 동파되는 사고를 겪었다. 


흘러나온 물은 아래층을 덮쳤고, 수리비 요구가 빗발쳤다. 라 씨는 든든하게 가입해 둔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을 떠올리며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지급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유는 '책임의 주체'에 있다. 배상책임보험은 가입자가 법적으로 물어줄 돈이 생겼을 때 작동한다.


그런데 벽 속에 묻힌 매립 배관의 관리 의무는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임대인)에게 있다. 법원은 건물 구조의 일부인 배관 등은 임대인이 지배·관리하는 영역으로 보며, 이로 인한 하자는 임차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본다.(대법원 2009다13170)


라 씨에게는 배상할 법적 의무가 없으므로 보험금도 나가지 않는 것이다. 세입자 과실이 아닌 구조적 하자라면 집주인이 해결해야 한다.




집주인의 당황, "내 보험도 안 된다고요?"


라 씨의 요청을 받은 집주인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주인은 2019년 5월 아파트를 분양받으며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 둔 상태였다. 


안심하고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집주인이 실제 거주하지 않으므로 보상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여기서 핵심은 '가입 시기'다. 2020년 3월 이전 약관은 피보험자가 '실제 거주하는 주택'만 보상 대상으로 인정했다. 


전세를 준 집은 집주인이 살지 않으니 보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다행히 2020년 4월 약관이 개정되면서 임대를 준 집도 보험증권에 기재돼 있다면 보상받을 수 있게 됐다. 


집주인이 2020년 4월 이후 가입했다면 보상이 가능했겠지만, 그 이전 가입자라면 약관의 덫에 걸릴 수밖에 없다.




이사의 함정, 주소지 안 바꿨다간 '낭패'


직장인 구변경 씨 사례는 '게으름'으로 낭패를 보았다. 2022년 아파트를 분양 받아 보험에 가입한 그는 2년 뒤 지방발령으로 이사를 했다. 


집은 전세를 주고 새집으로 옮겼지만, 보험증권상의 주소(보험 목적물)를 변경하지 않았다. 새집에서 누수 사고가 발생해 아래층에 피해를 줬지만, 보험사는 보상을 거절했다.


보험은 증권에 적힌 '그 집'을 보장한다. 몸은 이사했지만 서류상 보험은 옛날 집에 머물러 있었기에, 현재 거주지 사고는 보장 대상이 아니다. 


이사를 했다면 반드시 보험사에 알리고 증권 내용을 수정해야만 불의의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일부 약관은 예외를 두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기재된 주택'이 기준임을 명심해야 한다.





벽 틈새 누수, '급배수시설 보험' 믿었다가 발등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김급배 씨는 배관이 터질까 봐 '급배수시설누출손해보험'에 가입했다. 이후 누수가 발생해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원인이 배관이 아닌 '건물 외벽 균열(크랙)'과 '방수층 손상'이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누수라면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보험 약관은 냉정하다. 이 상품은 수도관이나 수조 같은 '급배수 시설'이 고장 나 물이 샜을 때만 보상한다. 


빗물이 외벽 틈으로 스며들거나 방수 페인트가 벗겨져 샌 물은 '급배수 시설의 우연한 사고'로 보지 않는다. 자기 집 수리비를 보장받으려 가입했지만, 보장 범위를 오해해 낭패를 본 셈이다.




몰래 한 인테리어, 화재 보상 가로막는 벽


건물주 박개조 씨는 건물 내부 구조를 바꾸는 인테리어공사를 하다 불이 났다. 화재보험을 믿었지만, 보험사는 계약 해지와 함께 보상 거절을 통보했다. 박 씨가 '통지 의무'를 어겼기 때문이다.


보험 계약 후 건물을 증축·개축하거나 15일 이상 대수선하는 경우, 혹은 30일 이상 건물을 비워두는(휴업) 경우에는 반드시 보험사에 알려야 한다. 


위험도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알리지 않고 사고가 나면 상법에 따라 보험사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보험금도 주지 않아도 된다. 


설마 하고 숨겼던 공사 사실이 화재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만든 것이다.





바람에 날아간 입간판, 목록에 없으면 '남의 일'


식당을 운영하는 김간판 씨는 강풍에 가게 앞 이동식 입간판이 쓰러지며 손님 차를 덮치는 사고를 겪었다.


'시설소유관리자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었지만 보상은 거절됐다. 입간판이 보험증권상 시설 목록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보험은 증권에 기재된 시설 내에서 발생한 사고만 보장한다. 건물 외벽에 고정된 간판은 시설의 일부로 보지만, 밖에 내놓은 이동식 입간판은 별도로 등록하지 않으면 보장 대상에서 제외된다. 


입간판이나 외부 설치물이 있다면 반드시 보험사에 알려 증권에 보험 목적물로 명시해야만 겨울철 강풍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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