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명한 보울 속에 검고 파랗고 노란, 붉디붉은 것들이 봄날의 꽃밭처럼 담겨 있다. 겉도는, 섞이지 않는, 차디찬 것들. 뿌리 뽑힌, 잘게 썰어진, 뜯겨진 후에도 기죽지 않는 서슬 퍼런 날것들, 정체불명의 소스 아래 뒤범벅이 되어도 각각 제 맛인, 제 멋인, 화해를 모르는 화사한 것들. 불온했던, 불안했던, 그러나 산뜻했던 내 청춘 같은 샐러드, 샐러드라는 이름의 매혹적인 불화 한 그릇 입속으로, 밑 빠진 검은 위장의 그릇 속으로, 생생히 밀려 들어온다. 나, 언제나 소화불량이다. 그 체증의 힘으로, 산다. 나는. 여전히, 내내, 붉으락푸르락 샐러드. 나는 불안한 샐러드다.
-강기원 시인의 시 '나는 불안한 샐러드다' 전문
이 시는 강기원 시인의 시집 《지중해의 피》 에 실려있다.
투명한 보울 속에 담긴 샐러드를 보며 시인은 "봄날의 꽃밭" 을 떠올린다. 아마도 투명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기 쉽고 더 취약할 수 있지만 그래도 섞이지 않고 고유한 빛깔과 맛을 유지하며 "각각 제 맛인, 제 멋인, 화해를 모르는" 그 화사한 샐러드에서 "불온했던, 불안했던, 그러나 산뜻했던 청춘"을 만난다.
그 "검고 파랗고 노란, 붉디붉은 것들" 은 한 사람의 마음 안에 공존하는 수많은 감정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는 다양한 군상들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시인은 이러한 "겉도는, 섞이지 않는, 차디찬 것들"을 단순히 고통이나 결핍으로 묘사하지 않고 각자 살아가는 존재 방식으로 표현한다. 더 나아가 소화불량처럼 불편한 감정들조차 그 "체증의 힘으로 산다" 고 말한다.
가끔 어떤 일에 부딪히면 우리는 불안해하고, 오히려 그 불안 때문에 더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쓴 '스피노자의 뇌' 를 읽으면 "불안" 을 운동하는 뇌의 방식이라고 서술한다. 고정된 자아를 거부하고 관계망 속에서 새로운 형식을 찾는 역동적인 '정동(affectus)'이라 표현했다. 따라서 시 속의 샐러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이 섞이기를 거부하는 '정동들의 집합체' 라 할 수 있다.
마지막 행 "나는 불안한 샐러드다" 라고 화자는 체념이 아닌 자기 인정을 한다. 그 다양성을 억압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적극적인 태도이며 "불안" 이야 말로 삶을 계속 살아가는 원동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 샐러드를 먹을 때마다 이 시가 떠오르고 또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낼 것 같다. 참 군침도는 맛있는 시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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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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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