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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비의 음률' 4회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2-01 00:00:01
  • 수정 2025-02-04 21: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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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소나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를 맞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소나기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릴 시간이 없는 사람이거나 비를 좋아하는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 비에 젖는 것이 상관없는 사람,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혼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 여자는 혼이 다른 세계에 닿아 있었다. 비에 젖는 것, 몸을 긁는 상처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비를 고스란히 받은 여자의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자 옆에 놓인 흰 고양이 열쇠고리가 매달린 빨간 백 팩에서도 핏물처럼 붉은 물이 떨어졌다. 헐렁한 티셔츠 아래 드러난 팔뚝에는 어디선가 긁힌 상처 자국이 나뭇가지처럼 나 있었다. 여자는 두 손으로 종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유리에 부착했다가 바람에 날려간 청음회 안내장이었다. 여자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청음회는 저 위 다락에서 지금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자에게 수건을 주고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손짓했다. 여자는 물이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닦지 않고 수건에 얼굴을 파묻었다. 여자와 함께 다락으로 올라갔을 때 프리드리히 뤼케르트 시에 말러가 곡을 만든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가 나왔다. 나는 이국의 언어로 노래하는 곡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곡목을 적어 놓은 종이를 복사하며 대충 훑어봤기에 알았다. 유리 공장 노동자는 가사를 번역한 것 중 일부분을 읽었다. 


아이들은 잠깐 외출했을 뿐이다.

곧 집에 돌아오겠지.

이 세상은 아름답다.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아라.

아이들은 좀 오래, 밖에 있을 뿐이다.

물론 외출했을 뿐이다.

곧 돌아오는 거다.

두려워 마라. 이 세상은 아름답다.

아이들은 천국으로 떠났을 뿐이다.

우리 보다 먼저.

집에 다시 돌아오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도 천국으로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는 거다.

그 광명이 넘치는 평화스러운 천국으로.


유리 공장 노동자는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아이를 잃은 불행한 아버지의 절실한 슬픔을 충분히 공감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실제로 말러의 첫 딸 안나 마리사를 잃었을 때는 도저히 그 어떤 음악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말을 멈추고 다락의 작은 창을 바라보았다. 빗소리가 들렸다. 약속이나 한 듯 동그랗게 모여 앉은 사람들이 작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빗소리를 들어볼까요?”

책방 외벽에 덧대놓은 녹색 비닐 차양막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다락에 모인 사람들은 빗소리에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가슴을 후벼 팠다.

금속 공장 노동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락 천장이 그의 머리에 닿을 정도로 키가 큰 남자였다. 그는 몸을 구부린 채 서서 종이를 펼쳤다. 그는 여자에게 이 자리에 참여해 반갑다고 말했다. 여자가 고개를 들어 금속 공장 노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곧바로 수건에 얼굴을 다시 묻었다. 그는 용광로에서 설설 끓는 쇳물을 떠 주물 틀에 부어 맨홀 뚜껑을 만드는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하는 작업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수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여자밖에 없었다. 그는 2층 용해로 작업장에서 900kg짜리 용해로 실린더 교체작업을 위해 뚜껑을 체인으로 감아올리다 체인 연결고리가 끊어져 동료의 몸으로 용해로 뚜껑이 떨어지는 사건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다고 했다. 

“정 씨, 그이의 몸 위로 떨어졌던 뚜껑을 다시 들어 올리는데 아무도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죄를 짓는 기분이었습니다. 쇠에 쩍 들러붙어 엉겨있던 형체가 눈을 감을 때마다 떠오릅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한참을 주먹 쥔 손으로 눈을 가렸다. 두부처럼 으깨져 시신의 살점을 그러모았다고 했다. 염을 할 수도 없어 관도 없이 곧바로 화장한 동료의 으스러지고 납작해진 주검을 목격한 이들과 주검이 짓눌러진 노동자를 위로하는 시를 낭송했다. 낭송하는 그의 목소리는 울음과 섞여 나는 단 한음절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동그랗게 모인 노동자들은 그가 낭송하는 시를 알아듣는지 모두 고개를 숙였다. 파란 작업복을 입은 남자는 눈을 감은 채 낮은 천장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유리 공장 노동자가 컴퓨터 앞으로 갔다.

“이번에 들을 곡은 역시 카잘스 연주곡입니다. 스페인 민요 나나입니다. 나나는 자장가입니다. 아무드 동굴에 죽은 아기를 매장하는 어머니가 아기에게 편안하게 잘 자라고 부르는 곡을 마누엘 데 파야가 편곡한 곡입니다.”

다락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얼굴에 수건을 묻고 있던 여자가 욱욱, 거리다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토악질했지만 수건에는 걸쭉한 흰 액체만 토해졌다. 시큼한 냄새가 났다. 노동자들이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여기가 어디인지 뭐 하는 곳인지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단지 토하기 위해 다락으로 올라온 것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계속 입으로 물을 토해냈다. 유리 공장 노동자가 여자의 어깨를 잡고 가만히 흔들었다. 여자는 꿇었던 무릎을 펼쳐 아무렇게 벌리고 헛구역질했다. 베이지색 면바지 밑단이 얼룩과 물에 젖어 있었다. 앉아 있던 노동자들이 몇 명이 여자에게 다가가 어깨와 등을 두드렸다. 

“슬픈 일을 겪었군요.”

유리 노동자의 말에 여자가 헛구역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허물어질 것 같은 여자의 얼굴은 물로 번들거렸다. 

“슬픔이 슬픔을 알아봅니다, 이 곡을 같이 들어봅시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갈비뼈 사이로 활을 집어넣어 긁는 것처럼 첼로 음이 이어졌다. 덩어리 슬픔이 얇게 저며졌다. 음률을 따라가면 깊숙한 동굴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환각처럼 동굴 앞에 죽은 아기를 안고 엎드려서 우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2분가량 짧은 곡이 끝났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금속 노동자의 말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 여자는 수건을 움켜쥐고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한 번 더 들어볼까요?”

유리 공장 노동자의 말에 그제야 사람들은 환각에서 정신을 차린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들을 때 피아노와 첼로 음 사이로 누군가의 목에서 나오는 허밍 소리가 들렸다. 첼로 연주자인 카잘스가 내는 한숨 소리였다. 곡이 끝났을 때 손가락이 세 개 남은 금속 노동자가 손을 들고 말했다.

“한 번 더 들읍시다.”

그의 말에 노동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번을 들은 후에야 노동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의 손을 잡고 어깨를 쓰다듬으며 일 층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근처에 있는 돼지껍데기 집으로 갔다. 컴퓨터를 끄고 다락을 정리하고 일층으로 내려갔을 때 여자는 책 기둥에 기대앉아 있었다. 여자는 앞에 놓인 학생용 참고서가 꽂혀 있는 칸을 바라보았다. 가게 문을 닫고 노동자들이 간 술집으로 갈 예정이어서 나는 여자가 얼른 책방을 나가길 바랐다. 나는 여자 곁으로 다가섰다. 여자의 얼굴에는 먼저 흘렀던 물이 마른 자국 위로 새로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자는 흐느낌도 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앉아 있는 여자 곁에 말없이 서서 바닥에 삐뚜름하게 쌓여 있는 책을 무연히 쳐다보았다.

“여기 와 본 적이 있어요.”

“그런가요.”

“가연이 문제집을 팔았어요. 찾아주세요.”

“네?”

불현듯 여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고등학생 문제집을 꽂아둔 책꽂이에서 수학영역 A형 문제집을 꺼내 펼쳤다. 갈피를 살핀 책을 책꽂이에 꽂지 않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뜨리고 다른 문제집을 꺼내 갈피를 넘겼다. 나는 여자가 던져놓은 책을 집어 책꽂이에 꽂으며 책방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집을 펼쳐 들고 있던 여자가 책에서 눈을 떼고 손으로 가슴을 쳤다.

“갈 곳이 없어요, 숨을,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다음주에 5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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