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와집에서 장독대에 떨어진 벚꽃 수를 세며 외로운 시간을 보냈던 나는 네 명이 함께 방을 쓰는 것이 좋았다. 심플한 철제 프레임 침대에 장날 시장에서 산 자잘한 꽃무늬 차렵이불을 펼쳐놓았다. 주말이나 휴일, 방학에 학교에서 아르바이트 혹은 견습 채용을 주선해주었다. 나는 쉬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외숙모는 입학 전 은행에서 내 명의 통장을 만들어줬다. 외숙모는 매달 기숙사비, 식비, 생활비로 돈을 보내주었다. 일 년여 동안 규칙적으로 보내주던 돈을 두세 달에 한 번씩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예 보내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매달 기숙사비와 식비, 실습재료비 등이 빠져나가는 월말이면 간당간당한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얄팍한 금액으로 지출 내역을 계산했다. 통장을 펼쳐볼 때마다 외숙모를 떠올렸고 걱정했다. 입금자명에 외숙모 이름이 없는 것은 외숙모 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거였다. 경매 총각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농협 공판장으로 찾아가겠다 마음먹었지만, 차일피일 미뤘다. 졸업하자마자 시내에 있는 정형외과 병원 원무과에 3개월 수습 후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병원에서 가까운 석영 철공소 안쪽에 있는 살림집 방 한 칸을 얻었다.
석영의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선반에 서서 오토바이 제조업체에 납품하는 직렬용 나사를 깎아 만들었다. 마치 선반 작업대에 맞춘 듯 키가 작고 어깨가 다부진 그는 석영이 나를 여자 친구라 소개하자 주먹으로 석영의 옆구리에 펀치를 날렸다. 숱 많은 머리카락을 새카맣게 염색해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뻘밖에 안 돼 보였다. 오랜 세월 부엌일을 해와서인지 손끝이 야무졌고 어떤 반찬이든 무조건 칼칼하게 만들었다. 내가 도울라치면 지저분한 부엌살림 들키기 싫다면서 내쫓았다. 그가 거절했지만 나는 매달 월세를 냈다. 그래도 내 통장에는 철 가루처럼 돈이 조금씩 쌓였다.
내가 휴무일 때, 할아버지는 바람 쐬러 어디론가 가셨다. 나와 석영은 철공소를 쓸고 털어 냈다. 철공소 구석구석에 쇳가루와 먼지가 쌓였다. 쇳가루처럼 석영과 나의 사랑도 철공소 여기저기 쌓였다. 석영은 철 가루 묻은 손으로 내 뺨을 만졌다. 그의 손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입술에서도 쇳내가 났다. 뜨거웠다.
외가 북동리 이장은 잊을 만하면 병원 원무과로 전화했다. 외가 인근 산에 군 사격장이 들어오니 반대쪽에 서명하라고 했다. 어떤 때는 골프 연습장이 생길 것이다, 리조트가 들어선다, 고 했지만 산 초입과 중턱에 거대한 철탑이 몇 개 세워졌을 뿐이었다.
여름 장마가 지나가면 유독, 빈집으로 남겨진 외가가 떠올랐다. 눅눅한 장독대 뚜껑을 열어둬야 하는데. 웃자란 묘의 잔디와 잡풀이 눈에 밟혔다. 석영은 철공소 쇠문을 닫고 예초기를 파란 트럭 뒤에 실었다. 외숙모 손을 잡고 걷던 계곡 길은 제법 넓게 여겼는데 실제로 트럭이 겨우 지나갈 폭이었다. 게다가 막자란 풀이 길을 가려 석영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트럭 바퀴를 확인하며 산길을 올라갔다. 그는 자신과 상관도 없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죽은 자의 묘에 돋아난 잔디를 깎았다. 짙은 풀냄새가 났다. 멧돼지가 파헤쳐놓은 묘를 삽으로 다졌다. 다듬은 묘에 막걸리를 부었다. 외할아버지 묘인지, 할머니 묘인지 헷갈렸다. 빈집에 들렀다. 뒤란 장독대로 가 뚜껑을 열었다. 외숙모와 외할머니가 덮어놓은 옥양목 덮개를 벗겼다. 미리 챙겨간 통에 고추장, 된장, 막장을 퍼 담았다. 막장은 워낙에 큰 독에 담겼고 아래로 푹, 내려가 있어 독을 잡고 허리 숙여 팔을 쭉 뻗어야 했다. 석영이 말했다. 아예 장독을 가져 가지 그래.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장독마저 없으면 정말 빈집이 될 것 같았다.
목탁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목탁 소리와 함께 염불 소리도 들렸다. 소리는 바다 쪽에서 들려왔다. 침대에서 일어나 바다로 면한 테라스로 나갔다. 내가 머무는 펜션 2층 테라스에선 간월사와 주차장이 동시에 보였다.
1호차, 2호차, 7호차, 10호차. 대형버스와 승합차, 승용차가 주차장 가득 들어왔다. 버스는 사람을 내려놓고 타일 쌓듯 차곡차곡 붙여 주차했다. 버스마다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내렸다. 대부분 여성이었다. 회색 바지를 입었거나 개량 한복을 입은 그들은 두 손을 모으고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네 명씩 무리를 지어 움직이거나 혼자 움직이는 사람들 모두 가만가만히 말해서 시끄럽지 않았다. 모자를 썼거나 선글라스를 썼거나 아무것도 쓰지 않은 여성들도 목이나 손에 염주를 들고 있어 불교 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갯벌에 천막이 드리워졌고, 단이 세워지고 자리가 깔렸다. 누군가 단 위에 불상을 가져다 놓았다. 촛불에 불을 붙였고 향로에 향을 피웠다. 나무로 만든 불전 함까지 놓였다. 물이 빠진 갯벌은 순식간에 수백 명의 사람으로 가득 메워졌다. 바다 법당이 되었다.
-다음주에 최종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