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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다섯 시를 알리는 시보가 들렸다. 엄마는 라디오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작업대 귀퉁이에 세워놓던 구식 소형 라디오였다. 건전지를 넣는 부분의 플라스틱 뚜껑이 깨져 엄마는 라디오 허리부분에 검은 고무줄을 둘둘 말아놓았다. 엄마는 주파수가 잘 맞지 않으면 이리저리 움직이다 주파수가 맞는 곳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라디오를 듣거나 몸에서 아픈 곳을 찾아내는 것뿐이었다.
“저녁 준비해라.”
나선형의 나무 계단을 내려갔다. 한 계단을 디디면 그 아래 두 개의 계단이 보였다. 계단은 270도로 회전되어 있었다. 계단 중턱에 걸터앉았다. 안방 창으로 은행나무가 양쪽에 서 있는 길이 보였다. 아직, 트럭은 오지 않았다.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을 때, 엄마는 요구 사항이 복잡했다. 천장은 높이 솟아야 하고, 창은 클 것. 가운데 욕조가 놓인 욕실과 안방에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 것. 계단은 나선형일 것. 아버지는 다락 계단을 거실에 놓자고 설득했지만 엄마는 양보하지 않았다. 엄마의 주장대로 집은 지었지만 실속이 없었다. 커다란 창으로 작업 소리가 들렸고 나무 분진이 들어와 포장지처럼 가구를 감쌌다. 안방 문 옆에 나 있는 계단은 엄마 생각처럼 날렵하지 못했다. 계단 때문에 안방은 한데처럼 어수선했다. 엄마는 가끔, 다락에 올라가 자곤 했다.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계단을 내려오는 엄마를 보았다. 마치 하늘에서 처음 땅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천천히 몸을 돌려가며 내려왔다.
계단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몸을 틀며 계단을 밟았다. 엄마는 달의 방 앞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허리를 동그랗게 만 채, 안테나를 길게 뽑은 라디오를 손에 들고 앉아 있었다. 엄마가 달의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면 분명 놀랐을 테다.
트럭이 마당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식탁 위를 더듬거렸다. 약을 담아 놓은 바구니를 끌어당겨 약봉지 안에 있는 알약의 숫자를 셌다.
“두 개씩 들어 있는 게 당뇨 약 맞나?”
나는 대답대신 식탁에 물 컵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약을 삼키고 약봉지를 휴지통 옆, 바닥에 떨어뜨렸다.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거실로 가 창을 열고 식사하라고 소리쳤다.
황씨는 찌개에서 두부를 건져 엄마의 수저 위에 올려주었다. 황씨와 엄마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다. 그는 목수였던 외할아버지 집 바깥채에서 태어났고, 평생을 외할아버지를 도와 목공소 일을 했다. 결혼한 엄마에게 형수, 라고 부르던 황씨는 아버지가 죽은 뒤부터 엄마에게 자네, 라고 불렀다.
“백곰 싱크대서 수금 했어?”
엄마는 시선을 천장에 두며 물었다. 황씨가 바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내게 주었다.
“틱틱거리던 김양이 어찌나 고분고분 하는지. 이 녀석 가면 커피도 타주고.”
아무도 반응하지 않자 황씨는 엄마에게 몸을 기울이며 진이 결혼 언제 시킬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황씨에게 한참 공부할 나이에 무슨 결혼이냐고 쏘아붙였다. 엄마는 내 얘기만 나오면 못 들은 척 라디오 볼륨을 올렸다. 황씨는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한입 물며 나를 쳐다보았다. 달은 말없이 밥을 먹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엄마는 나에게 김치를 얹어 달라며 수저에 밥을 떠서 들고 있었다. 김치를 얹어주자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의 목 줄기를 따라 붉은 김칫국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못 본 척했다.
작업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달의 검고 가느다란 손이 홍자작을 잘라냈다. 어디든 어둠이 파고들어가 있는 시간이었다. 작업실 안은 한낮에 가위로 오려냈다 다시 붙여놓은 듯 또렷하게 보였다. 창을 내다보며 수학 문제집을 풀었다. 한 단원을 다 푼 뒤 답을 맞춰보았다. 기본문제와 단원정리 문제는 다 맞았다. 발전 문제에서 한 문제 틀렸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었다. 곧바로 답이 나왔다.
엄마의 라디오에선 소설극장이 시작되었다. 낮에 했던 것을 재방송하는 거였다. 추리닝 위에 노란 스웨터를 걸쳤다. 나무 계단은 가장 자리로 갈수록 삐걱대는 소리가 많이 났다. 핸드레일을 잡고 계단의 중심 기둥에 가까운 곳을 골라 밟으며 내려갔다. 중심 가까이에서 270도를 돌며 계단을 디디면 끝없이 아래로 빠져버릴 것 같았다. 엄마는 라디오를 양손으로 잡아 배 위에 올려놓고 높이 솟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의 눈을 쳐다보며 전등을 껐다. 깜박거리던 엄마의 눈이 어둠 속에 파묻혔다.
작업실에서 홍자작 상판에 사포질하던 달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사포질 된 부분은 홍색 무늬가 살아났다. 홍자작은 아버지가 남겨둔 무늬목이었다. 나는 달에게 내 키보다 큰 홍자작을 주며 아버지가 만든 것과 똑같은 나무 인형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달, 간식 가져다줄까?”
달은 말없이 사포질을 멈추고 인형의 상체를 들고 입으로 후 불었다. 나무가루가 휘날렸다. 나는 12mm 하드 메이플 계단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백색에 적색 줄무늬가 있는 단풍나무는 얇은 책처럼 손에 잡혔다. 연필로 웅크려 앉은 사람을 그린 후, 직소 테이블에서 윤곽을 오려냈다. 작업대 뒤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밤색 소파는 비닐이 뜯겨져 누런 스펀지가 나와 있었다. 나는 메이플 판에서 오려낸 윤곽을 손으로 쓸었다. 목공 끌로 윤곽의 안쪽에 그려진 연필 선을 따라 팠다.
“달, 차 아니 치아 타다 줄까?”
“아니여. 치아 안 하세요.”
달은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달은 최근에 생긴 세계한국말인증시험에서 계속 떨어져 합법적으로 이곳에 올 수 없었다. 그러니깐 달은 불법체류자였다. 목공소가 정리되면 달은 갈 곳이 없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했다. 엄마는 목공소를 정리할 생각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달은 손으로 제 목을 치며 엄마가 꼴깍 할 때까지 이곳에 있겠다고 대답했다가 한 대 얻어맞았다. 검은 피부인 달은 동작이 느릿느릿했고 말을 못 알아들으면 무조건 웃었다. 달은 손재주가 뛰어났다. 빈 목공소에서 버려진 목재를 주워 모았다. 달은 엄마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달의 방 안에는 나무 의자, 책상, 침대, 책 없는 빈 책장 등 발 디딜 틈 없이 달이 만든 가구로 꽉 찼다. 달은 톱밥을 눌러 만든 합판으로 작은 보석 상자를 만들어 거래처 경리들에게 선물로 줬다. 여자들은 달의 선물을 좋아했지만 달과 데이트를 하지는 않았다.
“아줌마, 거기 있으면 나빠. 신경 생겨요. 들어갔어요?”
“아줌마라니. 나는 이제 중3 밖에 안 되었는데. 달, 내 얘기 좀 들어볼래? 이제 가을 끝나면 고등학교 원서를 쓰거든. 걱정이야. 엄마가 내 교육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하거든.”
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안한 듯 웃었다. 나는 계속 하소연을 했다. 엄마가 백내장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던 대목에서 달이 몸을 돌려 두 손을 모았다. 그만해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메이플 판을 작업실 밖으로 내던졌다. 자투리들이 와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달은 나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작업대로 몸을 돌리고 사포질한 나무 인형의 상체를 손으로 쓸어냈다. 허리를 구부리고 상체 단면을 비스듬히 보았다. 흠집을 퍼티로 잡아주고 우레탄 샌딩 실러를 사용해 표면을 조정했다. 내가 소파에 앉은 것을 잊은 것 같았다. 속옷이 보이는 달의 허리춤을 보다가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웨터가 소파에서 비어져 나온 스프링에 걸렸다. 몸을 돌리며 스웨터를 잡아당겼지만 스프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스웨터를 벗은 뒤 소파 스프링에서 스웨터 올을 빼냈다. 스웨터 올 하나가 길게 늘어났다. 늘어난 올 양옆을 잡아당겼다. 이미 늘어난 올은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올을 세게 잡아 당겼다. 실이 뚝, 끊겼다. 꼬들꼬들한 올이 풀려나왔다. 금세 스웨터 등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언젠가 의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의사는 내 머리에 들어 있는 신경 줄 하나가 길게 늘어나 있다고 했다. 머릿속 구멍을 들여다보듯 스웨터에 난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작업실을 나서며 고속도로를 보았다. 견인차가 붉은 빛을 뿌리며 달려갔다. 안방 창에 어스름한 물체가 보였다. 어둔 창 안쪽에 엄마가 두 손으로 라디오를 감싸 쥐고 서 있었다. 엄마의 시선은 정확히 고속도로 위를 달려가는 견인차를 따라 움직였다. 의사는 백내장 수술이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백내장으로 인해 시력을 잃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엄마는 백내장과 상관없이 눈에 나무가루가 들어가 앞이 안 보인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다음주에 3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