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에 외숙모와 나만 남았다. 외가 뒤 선산에 외가 어른들이 웅크리고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했다. 그렇지만 외숙모가 켜두었던 라디오를 끄면 산 부엉이가 기괴한 소리로 울었다. 세 칸 사랑채와 바깥채 문이 동시에 덜컹거렸다.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뒤집히는 소리가 크게 바스락거렸다. 검은 물체가 안채 마당으로 들어와 저벅저벅 나뭇잎을 밟는 것처럼 여겨졌다. 비라도 내리면 산 여기저기서 만들어진 물줄기로 밤새도록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면 나는 붙어있는 두 개의 묘처럼 외숙모 곁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외숙모 무서워요.”
“괜찮아, 한잠 자고나면 아침이란다.”
“그건 그래요.”
외숙모 말처럼 아침이면 부엉이 울음대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밤새 바스락거리며 두렵게 만들었던 마당의 낙엽에도 빛이 바글거렸다.
우리는 대청마루에 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분합문을 걸쇠로 고정해 놓는 여름이면 저수지까지 내려다보였다.
“저수지에서 연기가 올라와요.”
“물안개란다.”
“산에서도 연기가 내려와요.”
“그것도 안개야, 산안개.”
외숙모는 대청마루 끝에 앉아 숱이 많은 내 머리카락 가운데를 양쪽으로 갈랐다. 머리카락을 꼭꼭 누르며 양 갈래로 땋아주었다.
책가방을 메고 외숙모와 함께 계곡 따라 산길을 내려갔다. 마을회관 마당에는 피아노학원 봉고차가 시동을 건 채 기다렸다. 골말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학교로 갔다. 외숙모는 마을회관에서 그날그날 일거리를 찾았다. 상추밭, 딸기 비닐하우스, 감자밭, 블루베리 농장, 버섯농장. 그것도 저것도 없으면 할머니들을 따라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산 더덕이나 두릅, 도라지를 찾아 나무 밑을 뒤적거렸고 파헤쳤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피아노학원으로 갔다. 학원에는 피아노가 두 대밖에 없었다.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원탁에 앉아 숙제했다. 원탁은 크레용 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옷소매를 접고 조심해도 어딘가에서 얼룩이 묻어 더러워졌다. 피아노학원 봉고차를 타고 마을회관으로 돌아가면 외숙모가 산나물을 다듬으며, 더덕 껍질을 벗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간혹 외숙모가 농산물 경매장에 간 날이면 마을회관에서 기다렸다.
마을회관 안 경로당에는 늘 화투판이 벌어졌다. 정작 경로당에 있어야 할머니들은 산으로, 밭으로 갔다. 화투 패거리들은 할머니라 부르기엔 조금 애매했다. 나를 보면 화투패를 돌리며 정가네 외손녀네, 라고 말했다. 번갈아 돌아보며 소곤거렸다.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열린 문틈으로 그들이 내 얘기를 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다 들렸다.
애초에 나는 인사성이 아주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투 패거리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는 대놓고 눈이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날도 열린 문틈으로 그들이 나를 힐긋거리며 쳐다보았다. 그걸 알고도 나는 그들이 보이는 위치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뻣뻣해, 지 엄마도 그랬잖아, 까무러친 산모를 둘러업고 시내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가망이 없었대, 배를 가르고 꺼냈잖아. 나를 낳다 죽은 엄마 얘기를 했다. 그르게 왜 산에 집터를 잡아 가지구선, 죽은 사람한테나 명당이지, 산 사람들에겐 귀신 붙은 집턴데, 기화도 참 딱해, 나 같으면 버리고, 착해 그래, 너무 예쁘지 곱고, 농산물 경매 담당 총각이, 기화를, 눈만 맞았겠어, 배도 맞춰보고, 그럼 가야지, 피붙이도 아니고, 대가 끊겼어, 산 밑 집을 누가 사, 산에는 죄 정가네 귀신들이.
나는 문을 밀치고 들어가 화투판을 뒤엎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 당신들은 뭐 그렇습니까, 남의 일에 무슨 관심이 그리 많습니까, 당신들은 잘살고 있습니까, 왜 매일 경로당에서 대낮부터 화투를 칩니까.
“안녕들 하세요?”
외숙모가 마을회관으로 들어서며 누가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인사부터 했다. 화투 패거리 중 한 명이 일어나 외숙모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공판장 다녀왔어? 기화 새댁은 언제 봐도 사근사근해, 얼굴도 예쁜데. 그리곤 나를 돌아보았다.
“아이고 많이 컸네? 아장아장 걷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치 이제야 나를 본 듯 알은체를 했다. 그들 중 한 명이 화투판을 들었다 밑에 깔린 지폐 만 원짜리 한 장을 집어 나에게 줬다.
“옜다, 과자 사 먹어라.”
그 지폐 한 장이면 피아노학원 일 층 분식점에서 떡볶이랑 만두를 세 번은 사 먹을 수 있었다. 만화책을 실컷 빌려볼 수도 있었다. 나는 벽에서 등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지폐를 든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을 노려보았다. 받아, 받고 고맙습니다, 해야지. 당황한 외숙모가 대신 지폐를 받았다.
푸성귀를 담은 천 가방을 든 외숙모가 화가 난 듯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나는 홀쭉해진 배와 입술을 내밀며 뒤따라 걸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조금 더 올라가자 계곡이 보였다. 앞서 걷던 외숙모가 걸음을 멈추고 내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왜 그랬니?” 나는 대답하지 않고 가방끈을 만지작거렸다.
“왜 그랬어?” 외숙모가 가방을 들지 않은 손으로 내 팔을 잡고 흔들었다.
“외숙모 오지 않았을 때, 우리 흉을 봤어요. 귀신 붙은 집이라고, 엄마 흉도 보고, 경매 총각이랑 외숙모 배가 맞아 떠날 거랬어요.”
외숙모는 푸성귀가 든 가방을 바닥에 풀썩 내려놓았다. 그래, 뭔가, 있을 줄 알았어. 우리가 이런 일도 겪는구나. 그래도 돈은 받지 그랬어. 외숙모는 무릎을 접고 앉아 눈에 맺힌 눈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 이를 악물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흙에 손바닥을 짚고 풀숲을 뒤적거리다 제법 큰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지폐로 돌멩이를 감쌌다. 옜다, 화투판에서 굴러먹던 돈 나도 싫다. 돌멩이 싼 지폐를 계곡에 냅다 던져버렸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꺼칠꺼칠한 외숙모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다음주에 4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