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는 파란색 플라스틱 들통을 들고 바닷물 빠진 갯벌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을 들고나왔다. 한쪽 어깨가 기울어져 보기에도 무거워 보였다. 소녀는 들통 밑을 잡아 내 곁에 놓인 빨간 고무 함지에 들이부었다. 들통 안에 들어 있던 우럭, 도다리, 돔. 물고기가 쏟아졌다. 물고기가 펄떡거려 물방울이 튀었다. 넋 놓고 웅크려 앉아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이게 다 뭐니? 갯벌 흙이 묻은 물고기는 함지 안을 이리저리 돌았지만 몇 마리는 검은 돌처럼 바닥에 가라앉았다. 물고기예요. 아침에 외지 사람들이 방생하고 간 게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다시 밀려온 거예요. 같이 좀 가보실래요?
소녀는 함지에 뜰채를 넣고 휘젓다 물고기를 건져 갯벌 바닥에 꺼내놓았다. 다섯 마리는 너끈히 찾으실 수 있을 텐데요. 오늘은 물때가 기막히게 잘 맞았어요. 아니, 난 괜찮아. 흙바닥에 꺼내놓은 물고기 한 마리는 이미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아가미를 달싹거리며 죽어가는 물고기였다. 소녀는 대수롭지 않게 청색 장화로 물고기를 함지 그늘로 쓰윽 밀어두었다. 맨손으로 함지에서 검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았다. 물고기는 제법 활기차게 펄떡거렸다. 이것 봐요, 이렇게 고르게 점무늬가 있고 색이 검은 우럭은 양식이에요. 바다에서 살았던 애들은 지느러미도 거칠고 파도에 휩쓸려 색이 빠지거든요. 물에 휩쓸려오지도 않아요, 자연산은 값도 두 배로 쳐줘요. 이번엔 전부 양식이네.
소녀는 양손으로 잡은 물고기 몸통을 쓰다듬고 조심스레 함지에 담았다. 이렇게 잡은 물고기를 활어차가 와서 가져간다고 했다.
“오늘 저녁에는 우럭구이 해줄게요.”
소녀는 파란 들통을 들고 다시 갯벌로 내려갔다. 함지 그늘에 있던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몸통을 뒤집었다. 소녀는 이걸 구워 주겠다는 거였다. 흙바닥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물고기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몸도 뒤틀리는 것 같았다.
바닷길을 걸어 지금은 뭍과 연결된 암자를 향해 걸어갔다. 물이 빠진 곳에 빨간 보트가 묶여있었다. 암자는 공사 중이었다. 알루미늄 비계가 설치되었고 공사를 알리는 안내판에는 요사채 석축 보수공사 일정이 적혀 있었다.
다행히 암자는 개방되었다. 나지막한 돌계단 몇 개를 올라 일주문을 지나자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암자에서 보이는 바다에는 수위가 낮아도 물이 차 있었다. 바다와의 경계 난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기둥이 서 있었다. 나무 기둥에는 부처 얼굴과 좌상이 그려져 있었다. 나무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줄에는 빨강, 노랑, 녹색, 파란색 작은 등이 달려 있었다. 소원을 빼곡하게 적은 등이 바다를 향해 바람에 흔들렸다. 용왕각 앞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이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을 거였다. 외숙모, 제가 너무 늦게 왔어요.
할머니 묘는 외가 뒤에 있는 선산 외할아버지 묘 바로 곁자리였다. 외가 선산에는 꼭대기에서부터 차례차례 두 개씩 묘가 나란히 있었다. 외삼촌 묘만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마치 죽은 자들끼리 숨바꼭질하는 것 같았다. 두 명씩 웅크려 숨어 있고 외삼촌은 술래.
외숙모도 나중에 삼촌 곁에 묻히나요.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외숙모는 묘를 손짓했다.
“네 외삼촌이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나 혼자 두고 가버린 사람, 오래 기다려 보래지.”
그때까지는 외숙모가 젊은 나이에 죽은 남편에 대해 애틋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외숙모는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걸 듯 혼잣말을 했다.
“비가 오네요, 모란이 지고 나니 작약이 폈네요, 저는 작약을 더 좋아합니다만.”
외숙모는 연분홍 작약 앞에 웅크리고 앉아 커다란 꽃송이에 코를 비비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어린 내 눈에도 연분홍 작약처럼 고왔다.
‘고와, 고와서 그러지, 더 늦기 전에 내 니를 쫓아내야 할 텐데. 가라, 가.’
장독대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난 할머니가 냅다 소릴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외숙모 곁으로 가 무릎을 접고 앉았다. 작약 꽃잎을 손으로 비볐다.
“나 혼자 두고 가지 말아요.”
-다음주에 3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환상 소녀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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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