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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목공 소녀 1회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4-12-14 00:00:01
  • 수정 2025-02-04 21: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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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학교에서 쫓겨났다. 빈자리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창가 제일 뒷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선생님은 그 자리는 주인이 있다고 대답했다. 지휘봉을 겨드랑이에 끼우며 덧붙였다. 자꾸 이러시면 곤란해요, 아주머니. 게다가 교복 안 어울려요. 교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간혹 책상을 치며 휘파람을 부는 아이들도 있었다. 복장불량이야, 라고 말하는 여학생의 목소리는 앙칼졌다. 달아오른 귓불을 비비며 복도를 걸어 나올 때,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학교 앞 서점에 들러 수학 문제집 한 권을 샀다. 서점 계산대 천장에 설치된 볼록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복장 불량이라니. 나는 교복을 줄여 입지 않았고 와이셔츠 속에 색이 짙은 티셔츠를 받쳐 입지도 않았다. 선생님들이 싫어하는 바람막이 점퍼도 안 걸쳤다. 학생들이 없는 버스에 올라타 중간쯤에 앉았다. 버스 운전사는 룸미러로 나를 힐끗거리다 빨간 불이 켜진 신호등 앞에서 아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버스에서 내려 미용실에 들어갔다. 미용사는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녀는 내 목에 커트 보를 두른 후 옆머리를 귀 바로 아래까지 단정하게 잘랐다. 앞머리는 지금 그대로 일자로 잘라줄까요, 아니면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인 뱅으로 동그랗게 굴려줄까요, 라고 물었다. 옆자리에 비닐 캡을 쓰고 있던 아줌마가 거울 속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일자로요, 깔끔하게. 눈썹으로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돈을 지불할 때 비닐 캡을 쓴 아줌마가 몸을 돌려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내가 미용실 문을 열기도 전에 여자들은 거울 속에서 키들댔다. 


육교 계단을 올라가면 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고속도로와 나란히 흘러가는 용비천도 보였다. 육교를 내려가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늘어선 길에 들어서면 짙은 나무 냄새가 났다. 아홉 개의 가구점들이 모여 있는 가구공단은 고속도로와 용비천 사이에 있었다. 지금은 용비목공소를 제외하고 모두 비어 있었다. 아파트 부지로 매각되어 모두들 떠났다. 빈 목공소 마당에는 목재 쓰레기더미만 가득했다. 용비목공소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도 건설회사 소장과 상어가 찾아왔다. 상어는 엄마에게 좋은 조건일 때 합의하라고 재촉했다. 엄마가 톱질 소리가 들리네, 라고 엉뚱한 말을 하면 상어는 냅다 소릴 질렀다. 나는 상어가 올 때마다 다락으로 올라가 이불 속에서 휴대용 전기톱을 움켜쥐었다. 상어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머릿속으로 상어의 몸을 토막냈다. 소장은 건축허가 승인을 받은 상태고 착공 일정도 잡혔다고 했다. 착공 신고할 때까지 합의를 하지 않으면 용비목공소만 제외하고 아파트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용비목공소 전체가 아파트 그림자에 가려질 것이라 했다. 나는 고층 아파트 그림자에 가려진 목공소를 떠올려보았다. 썩어 들어가는 나무를 보는 것만큼 기분 나빴다. 

대문 없는 마당에 들어서면서 작업실을 살폈다. 황씨는 월넛 시트지를 부착한 합판을 자르고 있었다. 작업실에서 나오던 달이 알은척을 했다. 아줌마, 또 학교 갔었니? 나는 달을 째려보았다. 달은 어깨를 으쓱하며 순하게 느껴지는 큰 눈동자를 굴렸다. 현관에서 걸음을 멈췄다. 작업실에서 전기샌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라디오를 잡지 않은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 사이로 햇살과 나무가루만 빠져나갔다. 엄마가 손에 쥔 라디오에서 잡음이 들려왔다. 엄마는 라디오 안테나를 올리며 거실을 서성거렸다. 거실 창 앞에서 주파수가 맞자 그 아래 쪼그리고 앉았다. 정수리가 하얗게 샌 머리 위로 나무분진이 내려앉았다.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발끝을 들어 올리고 걸었다.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엄마가 다리를 쭉 뻗으며 말했다.

“어딜 그리 싸돌아 다녀? 베개 좀 가져와.”

“학교에 다녀왔어요.”

“또 그놈의 학교.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연락 주겠지.”

엄마는 내 교육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처럼 사교육이나 학원 같은 곳을 알아볼 생각도 안했다. 이제, 가을이 끝나면 고등학교 배정을 받을 텐데. 아직까지 나의 내신은 상위 5%내에 속했지만 학교에 계속 못 나가면 금방 뒤처질 것이었다. 엄마는 베개를 베고 거실 바닥에 누워 한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치마를 걷고 사타구니 옆을 더듬었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사타구니 옆에 난 혹을 노골적으로 내게 보여주며 암 덩어리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교복을 벗었다. 양 옆에 흰 줄이 그려진 검은 추리닝을 입었다. 교복 와이셔츠를 옷걸이에 걸고 그 위에 자주색 타이를 걸쳤다. 재킷 어깨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털어내고 장롱에 넣어두었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을 올라갔다.

마당으로 향한 창을 열자 전기샌더 소리와 함께 소광제 냄새가 들어왔다. 이불이 펼쳐진 매트리스에 엎드렸다. 다락은 앉은뱅이책상과 침대 매트리스 자리를 제외하곤 작은 나무 인형들로 가득 찼다. 서점에서 사온 수학 문제집을 꺼내 두 장을 풀었다. 너무 쉬웠다. 엎드린 채 얼굴을 문제집에 파묻었다. 학교를 못가는 날이 많아져 불안했다. 손등을 누르고 있던 이마를 들고 문제집 위에 떨어진 대팻밥을 집었다. 나선으로 말려져 있는 대팻밥을 창밖으로 던지고 두 손으로 턱을 괴었다. 작업실 밖에 널브러져 있는 각목과 베니어합판 조각, 대팻밥 따위에 햇빛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달은 빨간 호스를 들고 작업실 바닥에 물을 뿌렸다. 마당을 가로지른 빨간 호스 속에서 물이 꿈틀거리며 달의 손아귀에서 흘러 나왔다. 달은 마당으로 나와 작업실 벽에 기대 쌓아놓은 자투리 목재에 물을 뿌렸다. 나무자투리는 달과 내가 빈 목공소를 돌아다니며 주어 모아놓은 것들이었다. 젖은 목재에서 깊은 나무 냄새가 피어올랐다. 달이 엄지손가락으로 호스 끝을 누르자 물이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흩어지는 물에 가 닿은 햇살이 무지개를 만들어 놓았다. 날이 제법 쌀쌀한데 달은 러닝셔츠만 입고 있었다. 햇살이 달의 어깨 근육을 핥았고 물이 튄 어깨와 목덜미가 반짝거렸다. 햇살이 되어 달의 근육에 착 달라붙고 싶었다. 

황씨가 참나무로 만든 문틀을 들고 나와 파란 트럭에 올려놓았다. 달은 호스를 둘둘 말아 수돗가에 던지고 한쪽 다리를 짚고 날렵하게 트럭 위로 올라갔다. 달은 황씨가 건네는 것을 받아 트럭에 착착 쟁여놓았다. 황씨는 마지막으로 사무용 의자를 올리곤 작업실로 들어갔다. 달은 셔츠를 입고 말아 올렸던 소맷부리를 바로 폈다. 황씨가 캔맥주를 들고 작업실에서 나왔다. 달에게 하나를 건네고 트럭 조수석에 올라탔다. 달은 맥주를 마시며 내게 등을 보이고 트럭 난간에 걸터앉았다.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웠다. 달의 단단한 엉덩이를 감싼 청바지 허리춤은 두 손을 넣을 정도로 헐렁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달의 엉덩이는 터질 것처럼 꽉 차 뒷주머니에 담뱃갑조차 끼울 수 없었다. 달은 햇빛과 빠루 망치질로 어느새 단단한 근육을 가진 남자가 되었다. 달은 트럭 짐칸에서 내려와 운전석으로 가며 대팻밥이 쌓여 있는 곳에 캔을 던졌다. 캔이 벽에 부딪혔다. 엄마가 거실 창을 열었다.

“네팔. 술 마시지 말랬더니, 또 술이야? 얼렁 갖다 줘.”

“할머니, 나 이름 있어. 달 바하두르야. 나 술 안 마셔.”

“안 보인다고 모를 줄 알아? 또, 달은 하늘에 있는 게 달이지.”

“할머니 네팔 왔을 때, 내가 코리아, 하고 부르면 기분 좋아?”

“내가 네팔에 왜 가? 그럼, 니도 할머니라 부르지 말고 이름 불러라. 정순아, 하고.”

달은 시동을 걸자마자 거칠게 트럭을 뒤로 뺐다. 마당을 반 바퀴 돌고 출발했다. 붉게 젖은 흙에 바퀴자국이 생겼다. 나는 엎드린 채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헤아렸다. 허리에 나이테가 새겨지는 것 같았다. 


터미널 앞에 서 있던 달은 단박 눈에 띄었다. 솜이 두툼한 잠바를 걸친 달은 고개를 숙이고 양 손으로 머리카락을 털고 있었다. 황씨가 클랙슨을 울리자 달이 고개를 들었다. 구불거리는 머리칼이 하늘을 향해 뻗쳐있었다. 달은 느릿하게 트럭에 올라탔다. 나는 가방을 내 무릎에 올렸다. 달이 타자 트럭 안은 비좁고 지저분해 보였다. 학교에 들렀다 오느라 늦었어, 많이 기다렸어? 황씨의 말에 달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흐트러진 머리칼 아래 눈동자가 크고 새카맸다. 

엄마는 달이 머물 곳이 없다는 말에 내 짐을 안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나는 침대 매트리스를 다락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책 꾸러미와 여덟 살 때 아버지가 만들어준 나무 인형과 내가 만든 삼십 여개의 나무 인형도 옮겼다. 나무 인형은 모두 납작납작했다. 눈과 귀, 입이 없었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한데 뭉뚱그려졌다. 무엇보다도 나무 인형에는 구멍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안전하게 여겨졌고 흡족했다. 매트리스에 엎드린 채로 백물푸레나무 인형을 집었다. 그네를 밀었다. 그네는 몇 번 삐걱거리며 움직이다 멈췄다. 

비가 온 뒤였지만 용비천은 물의 흐름을 볼 수 없었다.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가진 천은 용은 커녕 개구리도 못 살 것처럼 수위가 낮았고 지저분했다. 냄새 나는 천 기슭에 쓰러져 있는 나무를 보았다. 아버지를 끌고 용비천으로 갔다. 아버지는 백물푸레나무라고 했다. 아버지가 몇 번의 톱질로 나무를 토막 내자 반 이상이 썩었다. 아버지는 썩은 부분을 깎아내고 내 키 반만 한 나무토막을 들고 트럭에 올라탔다. 

나는 공책에 그네 타는 소녀를 그려서 아버지에게 주었다. 아버지가 작업대에서 겉이 하얀 나무의 껍질을 벗겨내자 갈색 줄무늬가 있는 담황색 속살이 드러났다. 아버지는 톱으로 나무 가운데를 가르고 나무에 밑그림을 그렸다. 연필을 귀에 꽂아두고 나무를 깎아냈다. 암만 깎아내도 그네는 나오지 않았고, 소녀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루해진 나는 대팻밥을 목공본드로 붙여 양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아버지 턱수염에 톱밥이 엉겨있는 것을 보고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톱에 얼굴을 비추어 본 아버지도 웃었다. 나는 아버지가 끌로 소녀를 오려내는 것을 바라보다 소파에 웅크리고 잠들었다. 꿈에 내 겨드랑이와 어깨, 무릎에 잎이 돋아나기도 했고, 내가 물푸레나무 속에 갇힌 나무인형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작업실로 와 나를 깨웠다. 아버지는 나무에 왁스칠을 하고 있었다. 몸통이 내 손바닥 크기만 한 인형이 니은자로 몸을 구부리고 그네에 앉아 있었다. 다리를 일자로 뻗은 인형은 공책에 그린 것과 달랐다. 눈도 없었고, 입도, 귀도 없었다. 손가락과 머리칼도 한데 뭉쳐 있었다. 내 기대에 못 미친 것에 실망해 결국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 후, 용비천을 지나면서 나무 인형을 오려내고 남은 백물푸레나무 토막들을 보았다. 겉이 벗겨진 나무토막들은 공기에 노출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검게 썩어갔다. 내 팔다리가 잘려진 채 굴러다니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


-다음주에 2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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