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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목공 소녀 3회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4-12-28 00:00:02
  • 수정 2025-02-04 21: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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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장대는 느릅나무 집성판재로 되어 있다. 서랍은 오동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손잡이와 상판 몰딩은 호두나무를 써서 직접 깎았다. 경첩과 서랍 레일을 제외하고는 나사못을 사용하지 않았다. 뚜껑을 열면 문 안에 거울이 부착되어 있고 거울 테두리 또한 오동나무로 만들어졌다. 세 개의 나무를 섞어 만든 화장대인 그것들은 서로 다른 뿌리와 환경에서 자랐지만 한데 어울려 하나의 가구를 구성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화장대를 만들었다. 햇살이 마당에 자글거리는 오후에 잠깐씩 밖으로 나와 톱질을 했다. 열여섯의 나는 아버지를 도와 나무를 깎아냈고 갈았다. 마지막 도장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아버지는 화장대 마무리 작업을 황씨에게 부탁했다. 엄마는 나에게 시켰다. 화장대는 나무에 문양을 조각하지 않아 밋밋했지만 세 개의 결이 뒤엉켜 은근히 화려했다. 나는 중도재를 투명하게 해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나게 했다. 마감은 스테인이나 바니쉬로 하지 않고 들기름으로 했다. 여러 차례 마른 수건에 들기름을 발라 세 개의 나뭇결을 그대로 살렸다. 그 후 엄마가 수시로 들기름으로 닦았다. 화장대는 엄마의 기름칠과 손 떼에 길이 들어 반질반질 윤이 났다. 나뭇결은 방금 핀 꽃처럼 선명했다.  

엄마는 의자에 앉아 라디오를 무릎 위에 놓았다. 목에 푸른 보자기를 두른 엄마는 손을 더듬어 화장대 위에 놓인 호두나무 액자를 집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아버지 얼굴 위 하늘을 쓰다듬었다. 

“여기냐?”

나는 엄마의 집게손가락을 잡아 아버지와 엄마 얼굴 사이, 허공을 짚어주었다. 손가락이 잠시 멈칫, 하다가 빈 배경을 쓰다듬었다. 붉은 체크 셔츠를 입은 아버지가 엄마의 허리를 안고 있었다. 누군가 웃기고 있는지 오른쪽 아래로 시선을 두고 웃고 있었다. 사진 오른쪽 아래에는 세 발 자전거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나를 누군가 끌어냈을 것이다. 심술이 난 나는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고 마당 안에는 울음소리와 웃음소리,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동시에 났을 것이다.  

흰 머리칼이 힘없이 엄마의 두피 위에 얹혀 있다. 이마에 나뭇결처럼 선명한 주름이 잡혔다. 엄마의 허리를 잘라내면 육십 개의 나이테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엄마를 볼 때마다 용비천에 버려진 채 썩어가던 백물푸레 나무토막이 생각났다. 나무 인형을 밀어내고 헐거워진 껍질 같은 토막들은 검게 썩어 나무였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분무기를 뿌려 머리칼을 적셨다. 촘촘한 빗으로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숱이 적은 백발이 작은 머리통에 착 달라붙었다. 가위와 빗을 이용해 앞 머리칼을 일자로 똑바로 잘랐다. 옆으로 옮겨가는 나를 따라 거울 속 엄마의 시선도 따라왔다. 

“엄마, 보이지?”

“뭐가?”


“이봐, 아무나 연장을 만지는 것인 줄 알어? 그냥, 스킬을 사용하라니깐, 톱을 갈고 앉았어?” 

황씨는 달에게 이봐, 라고 불렀다. 우리 세 명은 달을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불렀다. 용케 달은 어떻게 불러도 자기를 부르는 것인지 알아들었다. 달은 작업실 문 앞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다리 사이에 숫돌을 놓고 외날 톱을 갈았다. 외날 톱을 간 뒤, 대패 덧날을 들었다. 대패 덧날을 갈고 난 뒤, 날을 햇빛 사이로 들어보았다. 대패 덧날을 미끄러진 햇빛이 내 가슴을 찔렀다. 달은 황씨의 야단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절단용 톱인 가바사와를 갈았다. 달이 아버지와 닮은 점은 손공구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초보에게 손공구는 만만하지 않았다. 황씨는 외날 톱을 갈고 있는 고집스런 달의 모습이 아버지와 닮았다고 말했다.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나는 힘없이 자작자작 떨어진 흰 머리칼을 한데 모아놓고 솔에 염색약을 묻혀 머리칼에 발랐다. 숱이 없는 정수리부분은 살갗이 야들야들했다. 엄마는 주파수를 맞췄다. 격동 50년이라는 정치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나왔다. 엄마는 이 프로가 이번 주까지만 하고 아주 끝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늘 들었던 프로였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십 년 조금 더 됐을 거야, 니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들었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나왔는데 어떻게 이십 년이 넘었단 말인가. 라디오가 치지직거리자 엄마는 다른 주파수를 맞췄다. 교통방송을 듣고 있다가 불교방송을 틀었다. 한의학박사를 초대해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으로 건강 상담을 해주는 코너였다. 58년 개띠이며, 키 156센티, 턱은 약간 각진 사각형이며 뼈대는 약합니다. 평소에 숨을 쉴 때 한숨 쉬듯 쉬어요. 늘 목이 부은 듯 거북스러워요. 엄마는 라디오에 두른 검은 고무줄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목이 칼칼하다.”

부엌으로 가 아카시아 벌꿀을 머그잔에 넣고 미지근한 물을 부었다. 엄마는 투정을 많이 부리는 여자였다. 목에 나무가루가 쌓였다며 아버지 앞에 서서 입을 쩌억, 벌리곤 했다. 아버지는 눈을 엄마의 입 가까이 가져가 입안을 진지하게 들여다보았다. 나도 목욕탕 거울 앞에서 발끝을 들고 입을 벌렸다. 분홍색 혀 위로 하얀 나무가루가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아카시아 벌꿀을 구해오면 엄마는 머그잔을 손에 들고 다니며 꿀 차를 마셨다. 나도 플라스틱 컵에 꿀 차를 타서 엄마 뒤를 따라 다녔다. 엄마는 목이 가라앉으면 눈에 나무분진이 들어갔다고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무릎에 엄마의 머리를 눕히고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눈을 눌러주었다. 다음 날이면 엄마는 전기톱 소리와 전기샌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프다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귀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비벼주었다. 나도 엄마 옆에서 귀가 아프다고 울었다. 아파트 건설회사 소장이 찾아올 때마다 엄마는 아버지의 톱질소리가 사각사각 들린다고 했다. 목공소를 정리하고 나면 우리는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아파트 그림자가 아닌, 아파트 지하실에 파묻힌다고 해도 용비목공소를 정리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라디오를 무릎 위에 놓고 머그잔을 받아 꿀 차를 조금씩 마셨다. 나는 밖을 내다보았다. 달은 나무에 연귀자를 대고 선을 긋고 조임쇠로 나무를 고정시켰다. 톱을 들어 얼굴을 비춰보고 톱질을 했다. 톱질할 때마다 톱날에 걸린 햇살이 톱밥과 함께 튀어 올랐다. 엄마는 라디오를 들고 일어나 주파수를 격동50년에 맞추며 거실을 서성거렸다. 창가에 쪼그리고 앉아 뼈가 앙상하게 도드라진 무릎 위에 라디오를 올렸다. 마치 집안 구석구석에 달라붙은 아버지의 톱질소리와 교신을 하는 듯했다. 나는 염색 도구를 챙겨 욕실로 갔다. 욕실 가운데 놓여있는 커다란 욕조는 관리하기 힘들었다. 욕조 밖 테두리는 돌아가며 자주 물때를 닦아내야했다. 솔과 통을 씻고 남은 염색약을 수납장에 넣을 때, 밖에서 무언가 넘어지며 왁자한 소리가 들렸다. 거실 창으로 다가갔다. 엄마는 라디오 볼륨을 줄이곤 나를 돌아보았다.  

“당신이 뭔데 상관이냐고? 입 닥치고 마무리나 잘하고 꺼지라고.”

마당에서 상어가 황씨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나는 상어를 보자마자 다락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밟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계단이 회오리처럼 휘감겨 올라가는 것 같았다. 매트리스에 엎드려 이불을 뒤집어썼다. 매트리스 아래에 손을 넣어 휴대용 전기톱을 집어 들었다. 톱은 황씨가 내게 준 거였다. 상어의 그악스런 목소리에 황씨의 목소리가 파묻혔다. 상어는 현관문을 발로 찼다. 거실로 들어와 엄마에게 뭐라뭐라 소리를 질렀다. 나는 상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상어가 거실 마룻바닥을 긁으며 돌아다니는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상어는 냉장고 문을 거칠게 열었다 닫았다. 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가 뭘 하겠어? 내가 대신 받아준다잖아. 똥값 받고 맨몸으로 쫓겨날 거야? 인감도장이랑 문서 달라고. 동생 못 믿어? 엄마의 라디오 소리가 점점 커졌다. 치직거리는 소리도 점점 커졌다. 에이 쌍. 그것 좀 꺼. 진이 년이 가지고 있어? 진이 년 어디 있어? 상어의 발자국 소리가 안방으로 다가왔다. 쿵쿵쿵. 상어가 나선형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가 삐걱거렸고 거칠게 내뱉는 상어의 숨소리가 들렸다. 내 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끝과 발끝이 뻣뻣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전기톱의 스위치를 켰다. 덜덜 떨리는 톱이 이불자락을 잘라냈다. 튀어나온 목화솜이 흩날렸다. 눈처럼 흩어지는 솜 사이로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빠요, 나빠. 당신 내려와.”

달은 외날 톱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섰다. 황씨가 달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달이 손수 갈아놓았던 외날 톱이 번쩍거렸다. 달의 얼굴로 톱밥처럼 피가 튀었다. 황씨가 달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주에 최종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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