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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목공 소녀 최종회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1-04 00:00:01
  • 수정 2025-02-04 2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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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화장실에서 나를 불렀다. 엄마는 한 손에는 라디오를 들고 다른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고 변기 앞에 서 있었다. 

“피가 나온 것 같아.” 

대변 위에 피가 몇 방울 떨어져 있었다. 

“피 맞지? 며칠 전부터 피가 철철 쏟아지는 느낌이 들더라. 며칠 전 아름다운 초대에 소개되었던 그이처럼 나도 대장암 아닐까? 그 여자도 처음엔 피만 찔끔 흘렀다더라.”

엄마는 내가 변기 안을 들여다본 것을 확인한 뒤에야 화장지로 뒤를 닦았다. 그러고도 한참을 변기 앞에 서 있다가 물을 내리고 나왔다. 나는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갔다. 화장대와 호두나무 액자, 단풍나무 계단에 검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나뭇결 사이로 스며든 피 얼룩은 아무리 젖은 걸레로 닦아내도 지워지질 않았다. 

매트리스에 엎드려 수학 문제집을 풀었다. 마지막 단원을 풀 차례였다. 이 문제집을 다 풀면 학교에 갈 것이다. 열어놓은 창을 통해 은행잎이 바람을 끌고 들어와 떨어졌다. 고개를 들자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창 밖에 있는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이 분분히 떨어졌다. 달을 만나기 위해 황씨가 몰고 나간 트럭은 돌아오지 않았다. 멀리 고속도로를 빠르게 지나는 찻소리가 들렸다. 고속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반대편 차선에선 고속도로가 시작되었다. 다락에 엎드려 컴컴한 작업실을 보았다. 작업대에는 달이 홍자작으로 상체와 하체를 따로 만들어놓은 나무 인형이 있었다. 마감을 하지 않은 상체과 다리에 바람이 닿아 홍자작 표면은 적갈색으로 변했을 거였다.

 그네에 앉는다. 발을 구르자 그네는 삐걱거리며 움직인다. 누군가, 내 등을 민다. 그네가 붉은 구름을 빠르게 밀어낸다. 내가 그만, 이라 말해도 그네는 계속 움직인다. 높이 올라갈수록 붉은 구름은 사라지고 하늘이 백짓장처럼 하얗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만하라고 애원한다. 뒤를 돌아보자 상어가 앞으로 뻗어있는 내 다리를 잡고 내 몸 가운데로 뾰족한 이빨을 들이민다. 상어의 이빨에 내 몸을 찢고 나온 피가 흐른다. 상어는 내 다리 사이로 흐르는 피를 혀로 핥는다. 손이 마비되며 빳빳해진다. 오그라드는 손은 손가락이 사라져 편평한 토막이 된다. 눈이 사라지고 입도 사라진다. 몸통이 얇아지고 몸에 있는 구멍이라는 구멍은 모두 막힌다. 누군가 내 앞에 서서 나를 보고 있다. 그 사람 손에는 안테나가 길게 뽑아져 있는 라디오가 들려져 있다.

고개를 들자 매트리스에 침이 고여 있었다. 몸에 무수한 구멍이 난 듯 헐거웠다. 구멍 사이로 젖은 나무분진을 채워놓은 것 같았다. 내 몸이 톱밥을 눌러 만든 젖은 합판 같았다. 창으로 들어온 바람이 헐거운 몸을 들락거렸다. 일어나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쪽 계단에 묻은 검붉은 얼룩을 피해 계단을 건너뛰었다. 엄마의 배 위에 놓여 있는 라디오에선 심야 라디오 극장이 나오고 있었다. 달의 방문 앞에 섰다. 손에 힘을 줘 문을 위로 들어 올리면서 열었다. 방안 가득 놓인 가구에서 여러 가지 나무 냄새가 뒤섞여 났다. 달은 헤드보드가 없는 평상 싱글 침대를 만들어 놓았다. 몸이 닿는 상판에만 편백나무를 덧대었다. 나는 매트리스 대신 놓아둔 달의 침낭 안으로 파고들었다. 히노끼라 불리는 편백나무에서 짙은 향이 났고 침낭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엄마는 손을 바닥에 집고 엎드렸다. 치마를 허리 위로 걷어 올리고 팬티를 아래로 내렸다. 살집이 없어 좌우 무명골로 거죽이 처졌고 엉덩이 치골 윤곽이 드러났다. 항문 아래 나를 품고 있다 밀어낸, 검게 주름진 성기가 보였다. 나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거뭇한 엉덩이를 벌리고 항문에 좌약을 밀어 넣었다. 의사는 심하진 않지만 합병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노란색 좌약은 항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금세 되밀려나왔다. 나는 힘을 줘 좌약을 항문 안으로 쑤욱, 밀어 넣었다. 

“치질이 아닌가봐. 약을 넣어도 피가 계속 나오니 큰 병원에 가야하지 않을까?”

엄마는 엎드린 채 항문에 손을 가져가 꾹 눌렀다가 손을 코에 대고 큼큼거렸다. 방으로 가 누우라고 해도 약이 녹을 때까지 그 자세로 있겠다며 팔을 모으고 이마를 기댔다.  

당뇨 약 봉지를 뜯어 흰색 알약 두 개를 개수대에 버렸다. 싱크대에서 수면제 두 알을 꺼내 봉지 안에 넣고 물과 함께 엄마에게 가져갔다. 엄마는 엎드려 있다가 몸을 일으켜 약을 받았다. 약을 한꺼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라디오가 여섯시를 알려주었다. 엄마는 창을 열고 식사하라고 소리쳤다. 황씨는 일없이 작업실 소파에 앉아 담배만 피웠다.

엄마는 밥을 먹으며 자주 하품을 했다. 

“자네, 그만 여기 정리하지 그래.”

엄마는 반찬을 올려달라는 신호로 수저를 흔들었다. 황씨가 고추장 양념을 해 놓은 황태를 올려주었다.

“자네, 내일은 꼭 가야해. 자네가 증인을 서줘야 해. 진이도 함께.” 

엄마는 대답 없이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자네가 십 오년 전에 본 것을 말해. 그놈이 진이한테 한 짓을. 이후에도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하고.”

“나는, 나는 아무 것도 안 보여. 아무 것도 못 봤어.”

“이 답답한 사람아. 안 보인다고 우기면 없던 일이 되나. 이번에도 안 나가면 그 녀석 끝이야. 살려야지, 녀석이 무슨 죄야.”

엄마는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마구 돌렸다. 나는 부엌으로 가 숭늉을 떠와 황씨 앞에 놓았다. 황씨는 숭늉으로 천천히 입가심을 했다. 내일 오후 한 시에 출발해야한다고 말하며 대접을 내려놓았다. 황씨가 현관을 나설 때까지 엄마는 라디오 주파수를 돌렸다. 식사 후 복용하는 혈압 약을 꺼내 한 알을 개수대에 버리고 수면제 한 알을 넣었다. 엄마는 약과 물을 마시고 하품을 하며 거실 창 앞으로 갔다. 창 앞에 앉아 치맛자락을 끌어당겨 라디오를 닦았다. 

식탁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마지막 단원까지 모두 풀었다. 마지막 단원에서는 네 문제나 틀렸지만 풀이를 보고 바로 해결했다. 안방으로 가 장롱을 열었다. 다리미판과 교복 와이셔츠를 꺼냈다. 와이셔츠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 후 다렸다. 소매에 옆선을 만들고 소맷부리도 반듯하게 다렸다. 어차피 선생님은 내일도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나는 다리미를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만약, 내일 자리가 있다고 수업을 받으라고 하면 어쩌지? 첫날부터 조퇴를 해야 하나. 와이셔츠를 옷걸이에 걸은 후 가방도 미리 싸 놓았다. 라디오에서 치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창 앞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안방 문을 안쪽에서 걸어 잠갔다. 장롱 서랍을 통째 꺼냈다. 장롱바닥에 서류봉투가 있었다. 나달나달해진 봉투를 꺼내 열어보았다. 봉투 안에는 혼인서약서와 아버지가 군에 있을 때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불장에 달린 서랍을 꺼내보았으나 바닥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불 하나하나에 손을 넣어 더듬었다. 이불 틈의 폭신함만 느껴졌다. 화장대 서랍을 열어 뺐다. 서랍 안쪽에 작게 접힌 서류와 나무 도장이 있었다. 서류와 도장을 꺼내고 서랍을 원래대로 끼워놓았다. 

작업실에서 양은대야에 서류와 도장을 넣고 시너를 부었다. 조절을 잘 못해 시너가 손에 쏟아졌다. 손이 확, 사라지는 느낌이 났다. 라이터를 켜 서류 끝에 불을 붙였다. 서류와 나무 도장은 금방 타들어갔다. 잔잔한 바람에도 검은 재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작업대에 서서 전기 샌더를 들고 나무 인형의 하체를 손으로 쓸어냈다. 전기 샌더 스위치를 켜자 나무 표면에 닿는 샌딩 소리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찻소리를 삼켰다. 상체와 하체를 다시 갈아냈다. 달은 두 부분을 나무 나사로 연결할 것이라고 했다. 한 손에 전기드릴을 잡고 달이 미리 표시해 놓은 곳에 구멍을 뚫었다. 나무 나사를 끼워 넣었다. 인형은 니은 자로 앉은 모양새가 되었다. 바니쉬로 마감을 하다가 나는 드릴을 집어 들었다. 나무 인형의 머리에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 스웨터 올이 풀린 지점인 등 가운데를 찔렀다.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부분에 드릴을 쑤셔 넣었다. 가슴에, 어깨에, 겨드랑이에 드릴을 처박았다. 톱밥이 튀어 올랐다. 나무 인형의 몸이 그물처럼 헐거워질 때까지 무수히 많은 구멍을 냈다. 마침내 인형이 나달나달해졌다. 얼굴에 달라붙은 톱밥을 뜯어내며 현관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마룻바닥에서 치마를 걷어 올려 상체를 덮고 잠들어 있었다. 이불을 꺼내 덮어주고 치직거리는 라디오 주파수를 정확하게 맞춰놓았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앞에 섰다. 맨발에 닿는 단풍나무 무늬 결이 느껴졌다. 상어는 죽었다. 검붉은 얼룩을 발로 밟았다. 얼룩이 발에 닿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계단 첫 시작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화장대 옆 창으로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이 보였다. 달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상어가 죽은 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다. 불법체류자 추방운동연합회 사람들은 파일을 보여주었다. 불법체류자들이 저지른 범죄를 모아놓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달이 가구점 경리들에게 선물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물었다. 나에게 성추행이나 협박이 없었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나는 달의 방문을 잠그고 달의 짐 일부를 작업실에 옮겨 놓았다. 달은 순했고 작업실에서 잤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인권위원회 사람들은 상어의 횡포와 달이 피해자라는 것을 설명했다. 엄마가 도와주지 않으면 달은 무기징역을 면할 수 없고, 자국으로 추방되어도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엄마는 찾아온 사람들에게 무심히 응대했다. 

엄마와 나는 상어의 시신을 화장해 용비천에 뿌렸다. 일 분도 안 걸렸다. 상자에서 봉지째 꺼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듯 휙, 부어버렸다. 물의 흐름이 없어 뼛가루는 떠내려가지도 못하고 물 위에 둥둥 떴다. 모든 장례행사는 생략했다.

계단을 세 개 올랐다. 불을 켜놓은 작업실이 보였다. 수돗가에 빨간 호스가 둘둘 말려져 있었다. 은행잎이 붉은 흙 위로 떨어졌다. 내일 나는 잠에 취한 엄마를 끌고 황씨를 따라갈 것이다. 일곱 번째 계단을 오를 때 라디오에서 새벽 두시를 알리는 시보가 들렸다. 심야 라디오 극장이 시작되었다. 일곱 번째 계단은 유난히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천천히 다락 안이 보였다. 그네를 타는 나무 인형이 보였다. 계단 끝에서 다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검붉은 얼룩을 맨발로 꾹꾹 밟은 후,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내일 교복을 입고 갈 것이다. 나는 말할 것이다. 나는 작년에 열여섯 살이었고, 올해도 열여섯 살이고, 내년에도 열여섯 살일 것이라고. 그리고 만약 죽이는 방법을 알았다면 오래 전에 내가 했을 것이다, 라고. 

계단은 중심에 굵은 기둥이 있고 열 두 개의 계단 판이 놓여졌다. 계단 한 판의 회전각은 22.5도였다. 아버지는 왜 계단을 270도만 회전 시켰을까? 목재건물인 집은 천장이 높아 충분히 360도 회전시켜도 되었을 텐데. 계단은 위에서 보면 원에서 사분의 일을 남겨두었다. 회오리처럼 휘감겨 위를 향해 뻗어 올라가는 계단은 몸에 리듬을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몸에 리듬을 만들며 나선형 계단을 오르다보면 어딘가 다른 곳에 닿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되었다. 


-다음주부터는 '비의 음률'이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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