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날이었다. 열흘 넘게 이어지던 폭염과 오랜 가뭄 끝에 퍼붓는 비였기에 소나기가 본격적인 비로 이어지길 바랐지만 굵은 빗방울은 후려치듯 바닥을 적셨다가 이내 멈췄다. 하얗게 뭉쳐있는 구름마저 더위로 축축 가라앉을 것 같은 후텁지근하고 끈적거리는 습한 더위였다. 틀어놓은 선풍기에서 더운 바람이 불 때마다 에어컨 리모컨을 잡았다 놓았다. 한 명이래도 손님이 들어오면 켜자고 마음먹었지만, 책을 팔기 위해 오는 손님조차 없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눅눅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낡고 오래된 이 골목에 쌓여있는 더위를 걷어가기 전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짠 내를 품은 바람이 곧바로 소나기를 몰고 왔다. 우체국 택배 기사가 국제 항공 소포와 헌책이 담긴 라면 상자를 내려놓고 틀어놓은 선풍기 앞에 잠시 앉았다가 갔다. 라면 상자에 담긴 어린이책 전집은 인터넷 직거래를 통해 구매한 위인전이었다. 라면 상자를 구석에 밀어 놓고 국제 항공 소포를 풀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반백이 된 남자와 금발의 여자, 엄마 쪽을 더 닮아 금발에 곱슬머리의 사내아이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열 살의 사내아이가 쓴 맞춤법이 틀린 삐뚤빼뚤한 한국어 편지를 읽었다. 한인교회에서 주관하는 한글 교실을 다닌다고 했다. 사진과 편지를 카운터 책상 위에 올려두고 각종 영양제가 담긴 상자를 카운터 책상 아래에 뒀다.
유리 공장 노동자와 금속 공장 노동자들이 한 명, 두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다락으로 올라갔다. 나는 출입문에 청음회를 알리는 종이를 붙였다. 출입문 유리가 젖어 스카치테이프가 잘 붙지 않았다. 면 셔츠를 끌어당겨 유리 표면을 닦은 후 겨우 붙이고 돌아섰다. 한차례 바람이 불어 닥치자 종이가 뜯겨 바람에 날려갔다. 종이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가 관두었다. 청음회의 주제는 위로, 였다. 나는 책방 외벽 책꽂이와 빽빽하게 쌓여 있는 책을 녹색 비닐 천막을 내려 덮어놓았다. 카운터 옆에서 노래 곡목이 적힌 종이와 유리 공장 노동자와 금속 공장 노동자가 써 온 시를 복사했다. 청음회는 유리공장과 금속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 진행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청음회를 했다. 음악을 듣다가 중간에 시를 낭송했다. 열 장씩 복사했지만 늘 한두 장씩 남았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청음회를 알리는 종이를 공예 지하상가와 문구용품 할인 매장 유리문에 부착해 놓았다. 공예 상가에서 가죽과 한지 공예를 배우러 다니는 사람들과 이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찾아오곤 했다. 방석이 모자랐고 앉을 공간이 없어 나무 계단에 앉기도 했다. 한 계절이 지나기도 전에 일반인들 참여가 줄어들었고 언제부터인가 유리공장과 금속공장 노동자들만의 행사가 되었다. 나는 복사한 것을 나눠주기 위해 다락으로 올라갔다. 유리공장 노동자인 남자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전기 주전자로 끓인 물을 믹스 커피가 담긴 종이컵에 부어 동그랗게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커피와 설탕이 뜨거운 물에 녹아 달달한 향이 번졌다.
금속공장에 다니는 노동자가 프레스기에 잘린 일곱 개 손가락을 위로 하는 시를 낭송했다. 세 개의 손가락만 남은 오른손에 끼운 시를 적은 종이가 파들파들 떨렸다. 그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낭송을 끝낸 후 두 손을 허공을 향해 들어 올렸다. 수지 접합 수술에 실패해 의수를 끼운 그의 왼손과 중지와 장지가 잘린 오른손을 합쳐 남아 있는 손가락은 세 개뿐이었다. 검고 주름진 세 손가락 사이에 두 개의 손가락이 있어야 할 공간이 움푹 패었다. 의수인 왼손은 젊은 여자의 손처럼 하얗고 반질반질했다. 시 낭송을 마치고 방석에 앉은 그는 세 개의 손가락이 있는 오른손으로 익숙하게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마셨다. 세 개의 손가락은 얇은 종이를 잡았을 때와는 달리 종이컵을 들고 있을 때는 안정적으로 보였다. 진행을 맡은 유리 공장 노동자가 컴퓨터 앞으로 갔다.
“오늘 처음으로 들을 곡은 파블로 카잘스 첼로 곡 새의 노래입니다.”
유리공장 노동자는 카잘스가 연주회 때마다 마지막에 자신의 고향 카탈로니아와 어머니를 떠올리며 새의 노래를 연주했다고 했다. 1971년 95살 카잘스가 유엔 평화상을 받을 때의 연설 일부와 함께 연주한 것이라 했다. 나는 1971년과 어머니, 라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내가 태어난 해였다. 태어난 해를 알았지만 나를 낳은 어머니를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어머니라는 이미지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려고 애썼다. 하늘을 나는 새는 떠올렸지만, 어머니라는 이미지에는 파지와 헌책을 받으러 오는 할머니 모습만 떠올려졌다.
“어떤 이들은 새가 내는 소리를 지저귄다, 노래 한다, 라고 하지만 어떤 이들은 운다, 라고 합니다. 새가 운다. 슬픔을 알기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낡은 책더미가 사방 벽을 가리고 쌓여 있는 다락에서 책에 등을 기대고 앉거나 접은 무릎에 턱을 대고 앉은 사람들은 눈을 감거나 고개를 숙였다. 낡은 컴퓨터 모니터 안의 유투브 영상은 치직거렸고 컴퓨터에 연결한 스피커도 상태가 좋지 않아 음질이 고르지 않았지만, 책더미 사이로 흐르는 곡은 늘 동그랗게 모여 앉은 그들을 강력하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다락의 한쪽 벽면에는 오래전 불에 타 검게 그을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낡고 허름한 공간이어서 그들의 시간은 더욱 빛이 났다. 카잘스 연설 일부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일층 출입문에 달아둔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방석을 짚고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가며 아래를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출입문이 열려있었다. 다시 종이 울리지 않았기에 누군가 문을 열었다가 그냥 가버렸을 거라 여겼다. 출입문을 닫기 위해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피스, 피스, 피스.
새들은 하늘에서 피스, 피스, 피스 라고 노래 부른다며 아흔다섯 살 노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가 쏟아졌다. 나는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어두운 밖을 내다보았다. 지나가는 이 없는 좁은 도로 위로 틈 없이 비가 내렸다. 검은 길이 번질거렸다. 바닥을 후려치는 소낙비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첼로 소리가 들렸다. 몸 구석에 번져 있는 가느다란 핏줄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소리는 곧바로 눅눅한 책갈피 사이로 스며들었다. 출입문에서 안쪽으로 물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나는 물의 흔적을 따라 책 기둥 사이를 걸었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책더미 모퉁이를 돌았을 때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가 앉은 바닥은 빗물로 젖어있었다.
-다음주에 3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