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두만강 푸른 물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6-02-15 08:01:11
  • 수정 2026-02-15 08:27:10

기사수정


   파고다공원에 갔지 비오는 일요일 오후 늙은 섹스폰 연주자가 온몸으로 두만강 푸른 물을 불어대고 있었어 출렁출렁 모여든 사람들 그 푸른 물속에 섞이고 있었지 두 손을 꼭 쥐고 나는 푸른 물이 쏟아져 나오는 섹스폰의 주둥이 그 깊은 샘을 바라보았지 백두산 천지처럼 움푹 패인 섹스폰 속에서 하늘 한자락 잘게 부수며 맑은 물이 흘러나오고 아아 두만강 푸른 물에 님 싣고 떠난 그 배는 아직도 오지 않아 아직도 먼 두만강 축축한 섹스폰 소리에 나는 취해 늙은 연주자를 보고 있었네 은행나무 잎새들 노오랗게 하늘을 물들이고 가을비는 천천히 늙은 몸을 적시고 있었지 비는 그의 눈을 적시며 눈물처럼 아롱졌어 섹스폰 소리 하염없을 듯 출렁이며 그 늙은 사내 오래도록 섹스폰을 불었네


-이대흠 시인의 시 '두만강 푸른 물' 전문



이 시는 이대흠 시인의 시집 《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 에 실려있다.


파고다 공원은 3.1운동 등 우리 민족 근현대사의 상징적 장소이다. 그곳에서 어떤 늙은 사내가 온몸으로 "두만강 푸른 물" 을 연주하고 있다. '두만강' 은 일제시대 수많은 민중들과 애국지사들이 살길을 찾아 만주로 떠날 때 건너간 한恨이 담긴 강이다. 그곳에서 연주되는 "두만강 푸른 물" 은 역사의 강이고 민중의 눈물이 흐르는 물이라 할 수 있겠다. 


내 님을 싣고 떠난 그 배는 오지 않더라도 비오는 일요일에 연주자는 그들을 대신해 오래도록 온몸으로 불고 있다. 화자도, "출렁출렁 모여든 사람들" 도, 은행나무 잎새들도 그 푸른 물속에 섞여 함께 물들고 있다. 시를 읽다보면 섹스폰이 늙은 연주자의 몸이고, 화자 자신의 정서를 대변한다. 음악인지, 비인지, 눈물인지 모두가 섞여서 젖고 있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같은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 큰힘이 될 때가 있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금융위원회 가계대출동향] 2025년 '빚투 브레이크'...가계대출 37.6조 ↑로 증가폭 둔화 지난해 대한민국 가계부채가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가계대출 동향'(잠정)에 따르면,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37.6조 원 증가했다. 2024년 증가폭 41.6조 원보다 4조 원가량 줄어든 액수로 연간 증가율은 2.3%를 기록했다.정부의 일관된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며 GDP 대비 가계부채...
  2. [한국은행 소비자동향] 2026년 1월 소비심리 훈풍…'집값·금리 상승' 전망도 꿈틀 2026년 새해, 소비 심리가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10.8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달보다 1.0포인트 오른 수치로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소비자들이 경제 상황을 과거 평균(2003~2025년)보다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지수를 끌어올렸다. 6개월 전과 비..
  3. [수출입동향] 2026년 1월, 수출 600억 달러 시대 개막…반도체 끌고 미국·중국 밀었다 대한민국 수출이 2026년 새해 첫 달부터 유례 없는 대기록을 세우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6년 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1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33.9%나 급증한 658.5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1월 수출 중 처음으로 600억 달러 선을 돌파한 실적이자 8개월 연속 해당 월의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수...
  4. [경제포커스] 연봉 올랐는데 실수령액은 그대로?…2026년 건보료·국민연금 동반 인상 김당황 씨는 지난달 연봉협상에서 5% 인상이라는 기분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1월 월급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실수령액이 예상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연봉은 올랐는데 통장에 들어온 돈은 지난해 12월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월 월급날을 예상한 김 씨의 스토리다. 새...
  5. [한국은행 국내총생산] 2025년 GDP 1% 턱걸이 상승…4분기는 0.3% 감소 실질 GDP 속보치는 분기 마지막 월의 실적 자료를 모두 이용하지 못해 추후 공표할 GDP 잠정치와 차이가 있을 수 있음한국 경제가 2025년 연간 1.0% 성장을 힘겹게 달성했다. 웃을 수만은 없는 성적표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2025년 4/4분기 및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지난 4분기 실질 GDP는 전기 대비 0.3% 감소하며 '역성...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