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덕을 따라 걸었어요 언덕은 없는데 언덕을 걸었어요 나타날지도 모르잖아요
양말은 주머니에 넣고 왔어요 발목에 곱게 접어줄 거예요 흰 새여 울지 말아요
바람이에요 처음 보는 청색이에요 뒤덮었어요 언덕은 아직 그곳에 있어요
가느다랗게 소리를 내요 실금이 돼요 한 번 들어간 빛은 되돌아 나오지 않아요
노래 불러요 음이 생겨요 오른손을 잡히면 왼손을 다른 이에게 내밀어요 행렬이 돼요
목소리 없이 노래 불러요 허공으로 입술을 만들어요 언덕을 올라요 언덕은 없어요
주머니에 손을 넣어요 새의 발이 가득해요 발꿈치를 들어요 첫눈이 내려올 자리를 만들어요
흰 천을 열어 주세요 뿔이 많이 자랐어요 무등을 태울 수 있어요
무거워진 심장을 데리고 와요
-이원 시인의 시 '이것은 사랑의 노래' 전문
이원 시인의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에 실려있다. 2023년 광화문 글판 겨울편에 "발꿈치를 들어요 / 첫눈이 내려올 자리를 만들어요"라는 이 시의 구절이 공개되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시에서 "사랑"은 어떤 대상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향해 걸어가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행위에 가깝다. "언덕을 따라 걸었어요 언덕은 없는데" 첫 문장부터 "나타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믿고 세상을 살아간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오른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모호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계속하면서, 기다리며 산다. 언덕은 없을지라도 언덕을 오른다. 그러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날아오를 "새의 발이 가득" 하다. 그래서 "발꿈치를 들"고 "첫눈이 내려올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노래는 부르지만 목소리는 없다.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고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언젠가 서로에게서 떠나게 될지라도 "한 번 들어간 빛은 되돌아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사랑은 둘만의 관계를 넘어 "오른 손을 잡히면 왼손을 다른 이에게 내미는" 세계로 확장되어 간다. 사랑 이전보다 이후가 더 "무거워진 심장"을 감당해야겠지만 덕분에 우리는 더 넓은 세계를 품게 될 것이다.
언덕이 없는데 언덕을 걷는 일, 그 자리를 살아내는 일, 그 자체가 이미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모두 발꿈치를 들고 마음의 선물을 전하고 내려올 자리도 만들어 보도록 하자.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