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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국내 초역, 빌터 벤야민의 '픽션들' 《고독의 이야기들》···파울 클레 그림 50여 점도 실려
  • 정해든 기자
  • 등록 2025-04-09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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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지음 / 파울 클레 그림 / 김정아 옮김 / 엘리 / 22,000원

벤야민은 왜 문학적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을까? 그의 글에서 드러나는 사유와 상상력은 어떻게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비출 수 있을까? 경험이 단절된 시대에 이야기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엘리에서 발터 벤야민의 《고독의 이야기들》를 펴냈다. 벤야민이 남긴 소설, 꿈 기록, 설화, 우화 등을 한데 모은 유일한 작품집으로, 그의 사유와 상상력이 응축돼 있다.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벤야민 읽기를 놀라운 방식으로 재조정할 굉장한 선물"이라 평했다.


책은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1부 ‘꿈과 몽상’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를 탐구한다. 벤야민은 “고통 없는 세계”를 상상하며, 꿈결 같은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어느 크고 오래된 도시에서」와 같은 작품에서는 몽환적이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2부 ‘여행’에서는 이동과 풍경 속에서 경험한 새로운 감각들을 다룬다. 여행은 익숙한 세계를 떠나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규칙을 배우는 과정이다. 「마스코테호의 항해」는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마법 같은 도시를 묘사하며, 「북유럽 바다」는 합리적 이성과 망상이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3부 ‘놀이와 교육론’에서는 놀이와 교육을 주제로 한 실험적 글쓰기가 돋보인다. 벤야민은 “어른들은 아이에게서 말장난과 놀이의 즐거움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도박과 점술까지 놀이의 연장선으로 탐구한다. 「행운의 손」에서는 도박이 단순한 게임을 넘어 인간 심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묘사된다.


42편의 글들은 짧지만 강렬하다. 벤야민은 이야기 형식을 실험하며 짧은 분량 안에 에너지를 압축했다. 그는 “경험이라는 붉은 실”이 전쟁과 함께 끊어진 시대에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복원하려 했다. 구술 전통을 모방해 목소리를 겹겹이 쌓아가는 그의 글들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책에는 벤야민이 사랑했던 모더니즘 화가 파울 클레의 그림 50여 점도 함께 실려 있다.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제공한다.


발터 벤야민은 1892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계 언어철학자, 문예학자, 비평가, 번역가다. 프라이부르크대, 베를린대, 뮌헨대, 스위스 베른대에서 철학, 독일 문학사 및 예술사, 심리학을 공부하고, 1919년 베른대에서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 《괴테의 친화력》 《사유 이미지》 《독일인들》 《파사주 작업》(미완성) 등을 썼고,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이야기꾼》 《번역가의 과제》 《폭력 비판을 위하여》 등 에세이를 남겼다.


김정아는 《발터 벤야민 평전》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비폭력의 힘》 《3기니》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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