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빗방울, 빗방울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6-22 00:08:27
  • 수정 2025-06-22 00:15:39

기사수정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나희덕 시인의 시 '빗방울, 빗방울' 전문



나희덕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에 실려있는 시다.

우리는 종종 관습이나 규범, 또는 다수와 다른 시각으로 행동하거나 이야기하면 비난의 대상이되곤 한다. 하지만 그 다른 생각과 행동들이 불안정해도 세계를 변화시키고 좀더 다양한 삶을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이 시는 비오는 날, 달리는 버스(지구)를 타고 가면서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 을 보며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경쾌하게 그려준다. 어긋남이 멈춘 수직과 수평은 굵어지고 무거워지며 고인다. 그것에 도전하는 뛰어내리는 것들은 아름다운 사선을 만들지만 "비애" 로 물든 궤적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말한 갈릴레이도,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 고 외친 스피노자도, 당시 천동설을 주장한 종교지도자와 권력층의 온갖 비난과 증오를 한몸에 받은 시대의 반항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다양한 이론들은 훗날 프로이트, 라깡, 아인슈타인 등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 '스피노자의 뇌' 참고)

우리도 나와 "다름" 을 틀렸다고 생각 말고 서로 포용할 수 있다면 좀더 경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선 위에 깃드는 순간의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으로 세상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영진설비 돈 갖다주기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멀리 쑥꾹 쑥꾹 쑥꾹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
  2.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건망증1 창문을 닫았던가출입문은 잠그고 나왔던가계단을 내려오면서 자꾸만 미심쩍다다시 올라가 보면 번번이잘 닫고 잠가놓은 것을퇴근길 괜한 헛걸음이 벌써한두번이 아니다오늘도 미심쩍은 계단을그냥 내려왔다 누구는마스크를 쓴 채로 깜박 잊고가래침도 뱉는다지만 나는그런 축에 낄 위인도 못된다아마 잘 닫고 잘 잠갔을 것이다혼자 남은...
  3.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서둘러 후회를 하다 평소대로라면등 떠밀며 서둘러 손 재촉했을 어머니가오늘은 어쩐 일인지 종종걸음으로 큰길까지 나와궁색한 목소리로 발길을 잡아끈다- 자고 가믄 안 되냐?죄지은 사람마냥서 있는젖은 눈망울못 본 척돌아서 왔다풀죽은 보따리를 업고그리운 도시를 향해 돌아오는 내내궁색한 그 한마디가마음을 찔렀다-김월수 시인의 시 '서둘러 후회...
  4. 인하대 학부생팀, '캡스톤 디자인 및 창의아이디어 경진대회'서 '장애인 식사 보조 로봇팔'로 대상 2025 한국 기계가공학회 춘계학술대회의 '캡스톤 디자인 및 창의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인하대 학생들이 상지 절단 장애인을 위한 3D프린팅 기반 식사 보조 로봇팔을 제작해 대상을 수상했다.  기계공학과 조예은(팀장), 전병철, 전기공학과 박원빈 팀으로, 사용자 중심 제어 인터페이스를 갖춘 '3 자유도 로봇팔'을 구현해 전...
  5. 국토부, 100억 투입해 소방·AI드론 개발···K-드론으로 재난 현장과 공항 안전 지킨다 국토교통부가 재난 대응과 항공 안전 확보를 위해 고중량 소방드론과 AI 기반 조류대응 드론 개발에 본격 착수한다. 5월 26일부터 시작된 '드론 상용화 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100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이번 사업은 산불과 같은 대형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공항에서 발생하는 항공기 조류 충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