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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불탄공장 최종회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5-17 00:00:01
  • 수정 2025-05-17 08: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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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리는 재이가 낡은 1톤 트럭에 시동을 걸 때, 당연히 서원이 있는 병원으로 간다고 여기고 따라붙었다. 우리의 예상을 깨고 그녀는 분주히 움직였다. 곧장 고용노동청으로 갔다. 깨우의 상황을 설명하고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실명으로 산재보험을 신청했지만, 해당 없음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재이는 다시 이주노동자 복지센터에 찾아갔다. 담당자는 미등록 체류 기간 중 파견 근무했기에 이주노동자 산재 신청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어깨가 축 처진 재이는 그제야 서원에게 갔다. 6인용 병실에 누운 서원의 눈과 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부풀어 오른 얼굴은 노랗고 푸르게 멍들었다. 환자복 안에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 

우리는 오래전 내장이 터진 채 공업용 호수 안으로 빨려 들어갈 때 발을 동동 구르던 소년의 심정을 헤아렸다. 상처 나고 멍으로 푸르뎅뎅한 서원의 모습에 우리는 애가 끓었다. 그는 재이를 보자마자 피가 엉겨 붙은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손을 잡았다. 우리는 맞잡은 손을 쳐내고 싶었지만, 용케 참았다. 그렇지만 재이가 손을 뿌리치자 왈칵 얄미운 감정이 치솟았다.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해야 해?”

“흐음, 복잡한데.”

서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느리게 말했다. 까칠했던 재이가 평소답지 않게 침착하게 들었다.

공단 지대 번화가에 태양 인력, 이라는 직업소개, 파견 근무, 하청 연결을 해주는 수상한 사무소가 존재했다. 잡다한 여러 일을 했고 공단 골목의 어둠을 움켜쥔 자들이었다. 소장은 3차 하청받은 작업을 서원에게 4차 하청했다. 실장이라는 사내는 새벽마다 진회색 승합차에 미등록체류자들을 태워 그날그날 파견 근무 공장 앞에 데려다줬다. 깨우는 그 사무소를 통해 서원산업에서 파견 근무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에탄올 구매 대행과 배달까지 해줬다.

“혹시, 세척제로 메탄올을 쓴 거야?”

재이의 질문에 서원은 공업용 메탄올을 세척제로 쓰지 않았다고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내, 그가 멍으로 푸른 이마를 찡그렸다.

“아니네, 결과적으로 그래.”

서원은 최초로 깨우가 헛구역질했을 때 자세히 살펴야 했다고 자신을 자책했다. 처음 하청받았을 때, 태양 인력 사무소장은 세척액을 공업용 메탄올을 쓰라고 제안했다. 에탄올에 비해 공급가액이 1드럼당 세 배 넘게 저렴했다. 한 달이면 엄청난 금액 차가 생겼다. 보안경과 장비만 제대로 갖추면 메탄올을 써도 문제없다고 했다. 그러나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피해사례가 있었고 위험성을 알고 있기에 서원은 세척액을 에탄올로 주문했다. 

서원은 깨우가 병원으로 간 날 에탄올 통을 확인했다. 보통 공업용 메탄올은 파란 통에 독극물 표시가 있었다. 흰색 통에 담긴 에탄올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 통 속을 의심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깨우의 증세로 메탄올 중독 현상이라 예측했을 거였다. 그는 메탄올이 중추신경계와 시신경을 망가뜨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원은 에탄올을 주문했고, 에탄올값을 냈고 배달된 통을 확인했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재출근한 깨우가 쓰러져 응급실로 간 후에야 서원은 에탄올 통 속의 용액이 의심되었다.

서원은 에탄올 통을 들고 기울여 파란색 플라스틱 트레이에 액체를 쏟아부었다. 화악, 화학약품 냄새가 독했다. 에탄올과 메탄올은 구별하기 쉽지 않았지만, 에탄올은 휘발 후 약간의 물기가 남고, 메탄올은 물기 없이 휘발했다. 그는 파란색 플라스틱 트레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싹 휘발했다. 


재이가 녹색 컨테이너 문을 두드렸다. 컨테이너 문을 잡고 더듬으며 깨우가 나왔다. 재이는 깨우의 손바닥을 펼치고 그 위에 봉투를 놓았다. 

“도와줘.”

“돈이에요. 고국으로 돌아가세요.”

“갈 수 없어요. 돈을 벌어야 해, 나, 두 명의 아이 있어.”

“깨우, 돌아가 줘요.”

“유리 사장님 만나게 해줘요. 아니, 할머니.”

깨우가 손을 뻗어 재이의 몸을 더듬다 팔을 억세게 잡았다. 

“깨우는 할머니의 손주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재이는 적확한 호칭 사용에 놀랐고, 며느리라 제대로 발음해서 거듭 놀랐다. 우리는 재이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걸 보았다. 

“깨우 결혼하면 불법 체류 아니에요. 고국으로 안 가도 돼요.”

“아이들이 있잖아요.”

“깨우, 돈이 소중해요. 서원 사장님과 결혼하고 싶어요.”

“…….”

“서원 씨와 결혼하게 도와줘요.”

“돈 때문에, 결혼을 그렇게 막,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깨우는…… 그럴 수 있어요.”

말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재이의 눈가가 붉어졌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깨우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재이는 깨우가 우는 걸 보았다. 그러나 깨우는 재이의 눈물을 볼 수 없었다. 이제 깨우의 눈은 눈물을 흘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깨우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새들이 날아가나요?” 

재이는 철탑의 활선을 피해 날아가는 새 무리를 보았다. 속으로 숫자를 셌다. 열일곱, 아니 열아홉 마리의 새. 선두에서 날아가는 새가 중심이 되어 대칭으로 사선을 유지하며 날아갔다.

“바람 소리, 들려요, 파닥파닥 새의 날개, 소리도 들려요.”

재이는 깨우 곁에 서서 무리에서 뒤처지는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새가 철탑에 퍽 부딪혀 아래로 떨어졌다. 

“추우니깐 들어가세요.”

재이는 컨테이너 문을 열고 깨우를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벌판을 걸었다. 철탑에 부딪혀 떨어진 새가 검은 날개 사이로 검붉은 피를 흘리며 꿈틀거렸다. 날개를 파륵 떨며 날아오르다 툭 쓰러졌다. 재이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녹색 칠이 벗겨진 컨테이너에 등을 기대고 선 깨우는 종이봉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두리번거렸다. 


볕이 좋은 날이면 우리는 흙보다 작은 입자로 흩어져 벌판 여기저기 뒹굴었다. 희게 퍼지는 민들레 씨앗처럼 우리도 번졌다. 그러다 누군가 벌판으로 오면 호기심에 우리는 한데 뭉쳤다. 재이가 벌판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는 재이를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29호 철탑에 다다른 재이는 편평한 모서리에 기대섰다. 서원이 크레용으로 공장 이름을 써놓은 곳이다. 


우리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철탑 아래 시멘트 사각 틀에 앉은 소녀가 무릎에 공책을 놓았다. 산수 문제를 풀고 있다. 11-1=1

“1이 두 갠데 하나 빼면 1 하나 남지.”

바람이 공책을 들췄다. 소녀는 흰 목을 꺾어 새파란 하늘에 선명한 흰 구름을 보았다. 

학교를 마친 유리공장 소년이 벌판 저편에서 이쪽으로 뛰어왔다. 소년의 손에 솜사탕이 들려져 있다. 소년이 솜사탕을 줬다. 소녀가 분홍빛 혀를 내밀어 구름처럼 흰 솜사탕을 핥았다. 소년은 주머니에서 흰색 크레용을 꺼냈다. 재이화학, 서원산업. 소년은 화학이란 글자 위에 하트 모양을 그려 넣었다. 


재이는 고개를 들어 철탑의 꼭대기를 보았다. 새가 철탑에 앉았다 이내 날아갔다. 철탑, 전력이 흐르는 전선, 구름 그림자가 벌판에서 바람에 흔들렸다. 우리도 흔들렸다. 철탑 꼭대기에서 펄럭거리던, 참을성 없는 더미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재이의 발목에 들러붙었다. 저수지에서 밀려온 것, 숲을 떠돌던 것, 불탄 공장에 스며들었다가 이리로 최초의 더미들이 벌판을 뛰어다녔다. 녹색 컨테이너 문을 열고 나온 깨우가 양팔을 벌리고 이리로 걸어왔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벌판에서 흙과 분간되지 않을 때까지 뒤섞이며 증폭하는 더미가 닳고 닳을 때까지.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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