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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불탄공장 3회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4-19 00:00:01
  • 수정 2025-04-19 05: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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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산업은 녹색 컨테이너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어 승합차 비용도 절약할 수 있었다. 서원산업에서 하청받은 업무는 스마트폰 부품인 액정을 규격에 맞춰 자르는 작업이었다. 분사된 액정을 세척 후 건조기에 넣는 공정을 깨우와 다른 여성이 맡았다. 원 공장과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닌, 태양 인력 사무소의 소개로 3차 하청받은 공장에서 작업이 밀려 대행으로 도와주는 4차 하청인 격이었다. 근무 인력 또한 일곱 명으로 적었다. 식사는 안채 에서 서원의 할머니가 해줬다. 가끔 재이는 식사 준비하는 할머니를 도왔다. 

“안녕하세요, 진짜 이름, 츠짱은 아핀야 깨우 우돔실프.”

“뭔 이름이…… 재이야, 뭐라는 거냐?”

“츠렌, 그러니깐, 별명으로 깨우라고 부르면 좋아요. 우린 가족도 친구도 다 츠렌으로 불러요.”

“깨우래요, 할머니.”

“뭘 깨우나?”

“깨우는 유리라는 뜻이에요. 저, 여기랑 인연인 거 같아요.”

깨우는 할머니의 요리에 반했다. 특히 생선 요리를 좋아했는데 구이와 조림, 찜, 탕까지 골고루 잘 먹었다. 

“강장에 졸린 생선, 생각만으로 침이 돌아요.”

“강장이 아니고 간장, 졸린이 아니라 졸인!”

서원의 할머니는 허리는 굽었으나 기운이 넘쳤다. 깨우가 잘못 말하는 한국어를 재깍 지적하는데 재미를 붙였다. 깨우는 한국어 쓰기는 서툴렀지만, 비교적 말은 능숙했고 발음도 정확했다. 자막 없이 한국 드라마를 수십 편 반복해서 봤고 아침 드라마까지 섭렵했다고 했다. 깨우는 제 아이 두 명을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이곳에 왔다고 했다. 재이는 비슷한 나이인 깨우가 아이를 두 명을 낳았다는 것과 그걸 스스럼없이 말해 놀랐다. 깨우는 할머니와 금세 친해졌다. 야근이 없는 날에는 안채에서 느긋한 저녁 식사와 차를 마셨다. 깨우는 할머니를 목화솜 이불 위에 엎드려 놓고 쾌적한 향이 나는 허벌 그린 밤을 손에 묻혀 마사지해줬다. 사장인 서원에게 리라와디 꽃 모양의 비누를 선물로 줬다. 서원은 제 책상 위에 올려진 희고 탐스러운 비누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액정 세척제는 공업용 에탄올을 사용했다. 태양 사무소에서 에탄올을 구매해 배달까지 해줬다. 메탄올보다 3배 정도 비싼 에탄올은 무해 했지만 서원은 송기 마스크와 보안경, 보호복, 장갑, 장화를 세척 공정을 담당하는 그녀들에게 주고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처음에 깨우는 착실하게 장비를 착용했다. 그러다 서원이 공장을 나가면 보안경이 답답해 잠깐씩 벗었다. 어느 순간부터 눈이 침침해졌다. 눈이 침침해져 더 자주 보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그러다 속이 메스껍고 눈이 시렸다. 헛구역질하는 깨우를 본 서원이 병원에 가보라고 오후 반차를 내줬다. 

깨우는 내과에 갔다. 복부CT 촬영 결과는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금식 후, 위내시경을 하자고 권했으나 미등록체류자인 그녀는 보험도 없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거절했다. 깨우는 약 처방만을 원했고 의사는 위산 분비 억제제 처방전을 써줬다. 다행히 약을 한 번 복용하자 대번에 메스꺼움이 가라앉았다. 눈이 침침하고 어둑해지는 저녁이면 앞이 잘 안 보이는 것은 비타민 부족이라 판단해 약국에서 분말 비타민C 한 통을 샀다. 

몸이 괜찮아졌다고 출근한 깨우에게 서원은 송기 마스크와 보안경을 착용하라고 당부했다. 깨우는 수건을 목에 걸고 일하다 눈이 침침해지면 보안경을 벗고 수건으로 눈을 문질렀다. 몸을 숙일 때마다 뿌려지는 세척제가 수건에 흡수되었다. 눈이 점점 뻑뻑했고 시린 느낌이 들어 깨우는 세척제가 튀고 눈물로 축축해진 수건을 눈에 대고 문지르고 비볐다. 깨우는 재출근한 지 나흘 만에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종합병원으로 이동해 중환자실에서 치료했지만 끝내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 눈은 어떠한 빛도 느끼지 못하는 광각 무상태 진단이 나왔다. 

깨우는 서원산업의 사장인 서원에게 매달렸다. 

“나를 돌려보내지 마세요. 깨우는 이곳에서 돈, 많이, 벌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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