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예보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3-09 00:00:49
  • 수정 2025-03-28 11:44:02

기사수정


나는 날씨를 말하는 사람 같다.


봄이 오면 봄이 왔다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전한다. 


이곳과 그곳의 날씨는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그래서 날씨를 전한다.


날씨를 전하는 동안에도 날씨는 어딘가로 가고 있다.


날씨 이야기가 도착하는 동안에도 내게 새로운 날씨가 도착한다.


이곳은 얼마나 많은 날씨들이 살까.


뙤약볕이 떨어지는 운동장과 새까맣게 우거진 삼나무 숲과


가장자리부터 얼어가는 저수지와 빈 유모차에 의지해 걷는 노인과 


종종 착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대체로 같고 대체로 다르다.


나의 선의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미래 시제로 점철된 예보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선의는 잘 차려입고 기꺼이 걱정하고 기꺼이 경고한다. 미소를 머금고 나를 감금한다.


창문을 연다.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민다.


오늘 날씨 좋다. 


- 임솔아 시인의 시 '예보' 전문



이 시는 임솔아 시인의 시집 《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에 실려있다.


"날씨"처럼 기분이나 감정도 흐렸다 맑았다 한다. 전하는 동안에도 변할 수 있고 새로운 기분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날씨"들이 내 안에 있는데 세상의 고정된 관념들은 "착한 사람"처럼만 살라고 한다. 그것은 "못된 사람"이라는 말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선의"라는 옷을 잘 차려입고 같은 말만 반복한다. 미래에도 "예보"처럼 되풀이될 것 같다.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계속 감금한다.


시를 읽다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이 떠올랐다. 어느날 눈이 머는 전염병이 돌았는데 한 사람을 제외한 온 세상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인습과 모든 우상, 잘못된 권위들이 얼마나 개인의 윤리관을 파괴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오는데 가슴에 참 와 닿는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마시오."-p.416


모든 일에 착하다고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정형화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자기가 옳다고 느끼는 것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안에 고인 "괴괴한 날씨"와 강박으로 만든 "착한 사람들"을 창밖으로 밀어 내고 "나"가 좋은 날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지창영의 시와 사회] 그 눈가에 맺힌 이슬 전야(前夜)는 특정한 일이나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 시기나 단계를 뜻한다. 전야는 보통 변화를 앞두고 있으므로 설렘을 동반하기도 하고 다부진 각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선거만큼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도 흔치 않다. 선거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사회에 일정 부분 변화가 일기도 한다. 그러나 그간 있었던 선거가 우리 사...
  2.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도착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도착했어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 더 많았지만아무것도 아니면 어때지는 것도 괜찮아지는 법을 알았잖아슬픈 것도 아름다워내던지는 것도 그윽해하늘이 보내준 순간의 열매들아무렇게나 매달린 이파리들의 자유벌레 먹어땅에 나뒹구는 떫고 이지러진이대로눈물나게 좋아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여기 도착했어-문정...
  3. 서울관광재단, 2025 상반기 MICE 글로벌 전문가 발대식 성료 서울관광재단이 10일 '2025 상반기 MICE 글로벌 전문가 발대식'을 개최했다. MICE 글로벌 전문가 프로그램은 잠재적 MICE 인재에게 교육프로그램과 현장 체험 기회를 제공해 성장을 지원하고 서울 MICE 업계에는 숙련된 인력을 지원하고자 운영하는 사업이다. 이번 발대식에는 2025 상반기 서울 MICE 서포터즈 서류심사를 통과한 100여 명이 참석...
  4. '배달앱 갑질'에 칼 빼든 공정위, 전담팀 신설···사건 처리 효율화는 물론 경제 분석도 병행 공정거래위원회가 배달플랫폼 시장 내 불공정행위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5월 12일부터 '배달플랫폼 사건처리 전담팀(TF)'을 운영하며, 배달앱 사업자들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일괄 처리한다는 것.그간 배달 플랫폼 관련 사건들 조사에 한계를 느낀 공정위가 사건 간 연계성과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
  5. 해수부, 어촌 청소년에 뉴질랜드 어학연수 보낸다···5월 20일부터 모집 해양수산부가 어촌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뉴질랜드 어학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 참가자를 5월 20일부터 모집한다. 이번 연수는 2016년부터 추진 중인 '한-뉴질랜드 수산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참가자 전원에게 연수 비용 전액을 국비로 지원한다.이번 프로그램은 도시보다 교육 인프라가 열악하고 외국어 노출 기회가 적은 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