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배웅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5-18 07:27:29
  • 수정 2025-05-20 12:57:37

기사수정

 

 

떨어지지 않겠다고 버팅기며 목놓아 울어대는 통에

십 리 오솔길 급기야 어미가 동행했다

 

장날 마실 가듯

어미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풀 냄새 맡다가

나비 좇다가

어느 순간 흠칫 놀라 겅중겅중 뛰어와

마른 젖통 툭툭 치받던 길

 

아가, 주인 인상 좋아 뵈더라

외양간 북데기도 푸짐하더구나

말 잘 듣고… 잘 살거라

 

낯선 외양간에 울음 떼어 놓고

돌아선 울음

달빛 앞세워 새끼 발자국

되밟아 오는 길

 

큰 눈에 별 방울 뚝뚝


-박청환 시인의 시 '배웅' 전문



이 시는 2021년 제27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이다.


농촌 풍경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어미소와 송아지의 시선을 통해 혈육 간의 끈끈한 유대와 상실감,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키우던 송아지가 다른 집에 팔렸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겠다고 버팅기며 목놓아 울어대는 통에 어미소도 십 리 오솔길을 동행한다. 송아지는 어미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마음 편하게 놀면서 길을 간다.


낯선 외양간에 새끼를 떼어 놓고 그 발자국을 되밟아 오는 길, 어미소의 큰 눈에서 "별"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존재"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상처 입고, 그렇게 변화하는가 보다. 어미소와 송아지의 모습에서 우리의 부모님과 자식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어미소와 송아지의 걸음이, 울음이 행간마다 툭툭 나타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어미소가 새끼를 직접 "이별의 자리"까지 인도하는 모습이 오래도록 여운 남는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지창영의 시와 사회] 그 눈가에 맺힌 이슬 전야(前夜)는 특정한 일이나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 시기나 단계를 뜻한다. 전야는 보통 변화를 앞두고 있으므로 설렘을 동반하기도 하고 다부진 각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선거만큼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도 흔치 않다. 선거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사회에 일정 부분 변화가 일기도 한다. 그러나 그간 있었던 선거가 우리 사...
  2.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사랑하는 별 하나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될 수 있을까.외로워 쳐다보면늘 마주쳐 마음 비춰 주는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세상 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가슴에 화안히 안기어눈물짓듯 웃어 주는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별 하나를 갖고 싶다.마음 어두.
  3.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도착 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에 도착했어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 더 많았지만아무것도 아니면 어때지는 것도 괜찮아지는 법을 알았잖아슬픈 것도 아름다워내던지는 것도 그윽해하늘이 보내준 순간의 열매들아무렇게나 매달린 이파리들의 자유벌레 먹어땅에 나뒹구는 떫고 이지러진이대로눈물나게 좋아이름도 무엇도 없는 역여기 도착했어-문정...
  4. 서울관광재단, 2025 상반기 MICE 글로벌 전문가 발대식 성료 서울관광재단이 10일 '2025 상반기 MICE 글로벌 전문가 발대식'을 개최했다. MICE 글로벌 전문가 프로그램은 잠재적 MICE 인재에게 교육프로그램과 현장 체험 기회를 제공해 성장을 지원하고 서울 MICE 업계에는 숙련된 인력을 지원하고자 운영하는 사업이다. 이번 발대식에는 2025 상반기 서울 MICE 서포터즈 서류심사를 통과한 100여 명이 참석...
  5. 인천5.3민주항쟁 39주년 기념행사 개최 인천5.3민주항쟁 39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주촤로 3일 오후 5시 미추홀구 주안동 시민공원에서 열렸다.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인천5.3민주항쟁 계승대회는 이민우 (사)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의 대회사와 공로자 표창장 수여, 황효진 인천시 정부부시장과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의 축사, 김광.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