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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지독한 현상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6-02-01 00:09:56
  • 수정 2026-02-01 00: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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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잇지 못했다 떨어뜨린 모양이야 그러나,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너는 물어보지 않는다 있어 그런 말이 하고 대꾸할 것 없이 그냥 주워야 하는데 그 말은 아주 까맣고 지금은 너무 밤이야 깜깜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쪼그려 앉으려다 말고 바닥을 더듬대는 심정 찾지 못할 것은 알고 있었다 떨어진 것은 숨어버리니까 하지만 볼 수가 없구나 다른 누가 그 말을 주우면 어쩌나 주운 그것을 주머니에 쓱 넣고 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더 깜깜한 밤으로 가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으나 걱정은 말이 될 수 없고 그러니 대답도 될 수 없고 말과 말을 이어주지도 않는다 잇지 못한 저편에 너는 아직 말이 없다 너도 떨어뜨렸나 떨어뜨려 잇지 못하고 있나 그 말은 어떤 색일까 딱딱해서 바닥 위로 튀어 올랐다가 도르르 책상 아래로 까만 어둠 속으로 굴러간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느라 한참 나는 그대로 있었다


-유희경 시인의 시 '지독한 현상' 전문



이 시는 유희경 시인의 시집 《이다음 봄에 우리는》에 실려있다.


가끔 마음과 달리 "말"이 먼저 나와 상대방을 실망시키거나 화나게 할 때가 있다. 입 밖에 나온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만약 "너"가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하고 물어준다면 대꾸라도 할 텐데 물어보지 않는다. 다른 누가 그 말을 주워 듣기라도 했을까 걱정도 된다. 그 걱정은 말이 될 수 없고 말과 말을 이어주지도 않는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이 생각난다. 말하는 순간, 말은 화자의 통제를 벗어나며 의미는 언제나 미끄러지고 지연된다고 했다. 우리가 차마 하지 못한 말들, 말하려다 삼킨 말들은 의도와 달리 숨어버린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불안한 가운데 화자는 문득 "말"에 대해 엉뚱한 상상을 한다.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뜨린 무엇처럼 물질성을 부여한다. 의미보다는 색이나 질감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래서 너와 함께 감각하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시인의 재밌는 상상은 "지독한 현상" 앞에서도 독자를 말랑말랑한 시간으로 이끈다. 다 말하지 않아도, 다 전해지지 않아도 "말" 이전의 "진심"을 헤아리게 한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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