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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접히다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11-01 23:54:20
  • 수정 2025-11-02 10: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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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장 중입니다"


승화원 전광판에는 뜨거운 불길이 일고

한곳에 모인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 없었다


전광판이 바뀌고

눈물이 마르기 전 냉각을 마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철제 침대가 끌려 나왔다

붉은 장미로 채운 관과 황금빛 수의는 간 곳 없고

주검을 눕힌 그 자리

타다만 뼈 몇 개와 재만 놓여 있었다


익숙하게 유골을 수습하는 그 남자

빗자루로 쓸어모은 뼛조각을 분쇄기에 갈고

재가 담긴 흰 종이를 서너 번

약봉지처럼 접는 시간은

딱 5분이었다 


철 따라 챙긴 녹용과 개소주 온갖 한약재들

살과 뼈를 짓던 그 보약도

79세 어머니를 접고 거뭇한 재로 남았다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던 배짱과

꼬장꼬장 큰소리치던

질긴 고집은 불에도 녹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결국 한 줌으로 접힌 어머니

 

손에 받아든 파란만장이

그토록 가벼운 줄 처음 알았다


-마경덕 시인의 시 '접히다' 전문



이 시는 <시와 징후> 2025년 가을호에 실려있다.


여름 내내 나무에 매달려 있던 도로변 잎들이 요즘 하나둘 떨어지고 있다. 서슬퍼런 푸르름도 갈변하고 바람에 가벼이 날아다닌다. 인간의 삶도 이런 자연현상과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밀리지 않던 배짱과 꼬장꼬장한 큰소리, 질긴 고집을 가졌던 어머니도 결국 한 줌 재로 요약되었다. 그 유골은 한때 어머니가 몸을 살리기 위해 철 따라 챙긴 한약재를 쌌던 "약봉지처럼" 접혀 있다. 한 존재가 접혀지는 시간은 "딱 5분"이다.


시에서 "접히다"는 '작아지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삶이 밖으로 펼쳐져 나가는 현상이라면 죽음은 안으로 다시 접히는 시간을 말할 것이다. 그 접힘의 순간, 화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안의 어머니를 펼쳐 읽게 된다.


이 시는 어머니 장례를 치르는 동안 화자가 관찰자가 되어 존재의 무게가 시간과 의식 속에서 어떻게 접혀서 사라지는지 담담한 시선으로 그린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세계와 공존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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