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빗방울, 빗방울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6-22 00:08:27
  • 수정 2025-06-24 08:44:55

기사수정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경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어긋남이 멈추는 순간부터 비는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사선을 삼키면서
굵어지고 무거워지는 빗물
흘러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더 이상 흘러갈 곳이 없으면
창틀에 고여 출렁거린다
출렁거리는 수평선
가끔은 엎질러지기도 하면서

빗물, 다시 사선이다
어둠이 그걸 받아 삼킨다

순간 사선 위에 깃드는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

뛰어내리는 것들의 비애가 사선을 만든다.

 

-나희덕 시인의 시 '빗방울, 빗방울' 전문



나희덕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에 실려있는 시다.

우리는 종종 관습이나 규범, 또는 다수와 다른 시각으로 행동하거나 이야기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 다른 생각과 행동 들이 불안정해도 세계를 변화시키고 더 다양한 삶을 경험하게 하기도 한다.


이 시는 비 오는 날, 달리는 버스(지구)를 타고 가면서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경쾌하게 그려준다. 어긋남이 멈춘 수직과 수평은 굵어지고 무거워지며 고인다. 그것에 도전하는 뛰어내리는 것들은 아름다운 사선을 만들지만 "비애"로 물든 궤적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도,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 외친 스피노자도 당시 천동설을 주장한 종교 지도자와 권력층의 온갖 비난과 증오를 '한몸'에 받은 '시대의 반항아'였다.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이론은 훗날 프로이트, 라깡, 아인슈타인 등 철학자와 과학자 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스피노자의 뇌' 참고)

우리도 나와 '다름'을 '틀렸다' 하지 말고 서로 포용하면 더 경쾌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사선 위에 깃드는 순간의 '그 바람, 그 빛, 그 가벼움, 그 망설임'으로 세상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한국은행 소비자동향] 2026년 1월 소비심리 훈풍…'집값·금리 상승' 전망도 꿈틀 2026년 새해, 소비 심리가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10.8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달보다 1.0포인트 오른 수치로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소비자들이 경제 상황을 과거 평균(2003~2025년)보다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지수를 끌어올렸다. 6개월 전과 비..
  2. [수출입동향] 2026년 1월, 수출 600억 달러 시대 개막…반도체 끌고 미국·중국 밀었다 대한민국 수출이 2026년 새해 첫 달부터 유례 없는 대기록을 세우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6년 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1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33.9%나 급증한 658.5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1월 수출 중 처음으로 600억 달러 선을 돌파한 실적이자 8개월 연속 해당 월의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수...
  3. [경제포커스] 연봉 올랐는데 실수령액은 그대로?…2026년 건보료·국민연금 동반 인상 김당황 씨는 지난달 연봉협상에서 5% 인상이라는 기분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1월 월급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실수령액이 예상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연봉은 올랐는데 통장에 들어온 돈은 지난해 12월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1월 월급날을 예상한 김 씨의 스토리다. 새...
  4. [한국은행 국내총생산] 2025년 GDP 1% 턱걸이 상승…4분기는 0.3% 감소 실질 GDP 속보치는 분기 마지막 월의 실적 자료를 모두 이용하지 못해 추후 공표할 GDP 잠정치와 차이가 있을 수 있음한국 경제가 2025년 연간 1.0% 성장을 힘겹게 달성했다. 웃을 수만은 없는 성적표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2025년 4/4분기 및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지난 4분기 실질 GDP는 전기 대비 0.3% 감소하며 '역성...
  5. [아이즈인터뷰] 정우신 시인, 불확실한 미래 그려내는 섬세한 상상력 안녕하세요? 시간 내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초대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에 앞서 가벼운 질문드립니다. 요즘 어찌 지내시고 계신가요?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듯 언제나 제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끝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일상에선 주어진 삶의 시간이 허비되지 않도록 루틴을 만들어 수...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