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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미역이 올라올 때 2편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5-30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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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가질래?”

미라는 스웨터를 쳐다보곤 대답 없이 긴 나뭇가지로 드럼통 안을 뒤적거렸다. 스웨터 팔꿈치 부분에는 보풀이 생겼고 반들반들 해졌다. 스웨터를 얼굴에 대보았다. 좀약 냄새가 났다. 미끈거리는 미역과 오징어 냄새도 희미하게 났다. 여고 시절, 바다색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시내에 있는 털실가게를 돌아다녔다. 실마다 색이 조금씩 다르다는 내 말에 미라는 파란색은 다 똑같아. 특히, 털실은 말이야, 하며 투덜댔다.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자 미라는 짜증을 냈다. 결국, 나는 여름이 끝나는 날 바다색이야, 하며 이 실을 골랐다. 할머니는 실을 보고 곤색이네, 했다. 우리는 방갈로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스웨터를 짰다. 조금씩 짤 때마다 할머니 몸에 맞추어 보았다. 할머니는 팔을 길게 뻗었다. 

“오래 입으려면 넉넉하게 짜야해. 원래, 짠 옷은 잘 쪼그라들거든.” 

우리는 가을이 오기 전 스웨터를 완성했다. 할머니는 그것을 여름을 제외한 세 계절 내내 입었다. 해마다 조금씩 줄어드는 스웨터에 맞추어 할머니의 몸도 조금씩 작아졌다. 드럼통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바다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미라는 빨간 누비 조끼를 드럼통 안에 넣고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미라가 앉은 옆에 할머니의 유골분 상자가 검은 보자기에 싸인 채 놓여 있다.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는 일회용 접시에 담긴 홍어무침과 수육, 오징어순대, 과일, 떡이 말라비틀어진 채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육개장을 끓였던 솥에 남은 반찬들을 쏟아 부었다. 설거지 할 그릇을 챙겨 수돗가에 내놓고 상을 차려 마루로 내갔다. 미라는 수저를 들어 밥을 꾹꾹 눌렀다. 나는 밥 한 숟가락을 입안에 퍼 넣었다. 미라는 국그릇을 마당에 내동댕이쳤다. 

“나에게 복수한 거야.”

나는 마당에 나뒹구는 그릇을 상에 올리고 부엌으로 가져가 선 채로 밥을 먹었다. 입안으로 밥을 퍼 넣고 김치를 먹고 홍어무침과 수육을 집어넣었다. 아무리 퍼 넣어도 허기가 가시질 않았다. 항구에서 넘어져 엉치뼈에 금이 간 할머니 몸에는 결석과 함께 암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번졌다고 했다. 의사는 소견서를 작성해주며 큰 병원으로 갈 것을 권했지만 할머니는 집으로 가길 원했다 나는 할머니의 의견을 존중했다. 미친 거 아냐, 사람이 아프면 고쳐야지, 병이 있으면 치료해야지. 미라는 전화기를 찢고 나올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병원에서 처방 받은 진통제가 떨어졌을 때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만 됐다. 

할머니는 혼자서 초종을 맞이했다. 전날, 할머니는 미라가 온다는 말에 몸을 닦아 달라고 했다. 옷을 벗기자 앙상한 뼈에 미농지 같은 살이 붙어 있었다. 뜨거운 수건으로 몸을 닦자 하얀 살갗이 붉게 익었다. 수건을 문지를 때마다 살가죽이 옆으로 밀렸다. 옆으로 처진 가슴에는 말라비틀어진 유두가 달려 있었고 거뭇한 팔에는 주사바늘 자국이 불거졌다. 할머니는 털이 빠진 밋밋한 아랫도리를 닦을 때 눈을 감고 입술 사이로 희미하게 흐흐, 웃었다. 옷을 입혀주니 화장을 해달라고 했다. 얼굴은 수분이 빠져 화장이 먹질 않았다. 틀니를 뺀 입에 주름이 오골오골 모여들어 손으로 입술을 펼치며 립스틱을 발랐다. 막상 미라가 왔을 때 할머니는 미라를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둘을 위해 핑계거리를 대고 시내에 갔다. 시내에서 돌아왔을 때, 미라는 전복죽을 수돗가에 버리고 있었다. 시멘트가 부서져 넓어진 수챗구멍으로 걸쭉한 죽이 천천히 흘러들었다. 미라가 수도를 틀자 김이 나는 전복죽이 물위로 둥둥 떴다. 미라는 손을 씻다가 무릎 위에 올린 손을 마주 잡은 채 말했다. 

“내게 마지막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거야. 전복죽이 먹고 싶댔어. 길 건너 횟집에 전복죽을 사러 뛰어 갔어. 횟집 아줌마 말이 생전에 전복죽을 안 드셨대. 난 그것도 몰랐어. 정말 먹고 싶어서인 줄로 알았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임용고시에 합격한 미라가 배를 불룩하게 만들어 내려왔다. 당황했던 모습을 감추고 할머니는 셋이 아이를 키워보자고 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든 미라를 보며 할머니와 나는 뱃속에 웅크려 있을 아이를 상상했다. 그즈음 모래사장 위로 파도에 휩쓸린 검은 미역이 올라왔다. 나는 하염없이 올라오는 미역을 건져냈다. 할머니는 내가 건진 미역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다. 며칠 후, 할머니는 새벽에 나를 깨워 인적이 드문 바다로 데리고 갔다. 할머니는 치마를 걷어 올리지도 않고 바위 사이로 들어갔다. 바다에서 막 빠져 나온 해는 하늘을 갓 잡은 멍게 빛으로 만들었다. 할머니와 나는 바위 사이로 꾸역꾸역 올라오는 미역을 땄다. 나는 수경을 쓰고 바위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바위 틈새에 길게 솟아오른 미역은 윤이 났다. 장대로 미역을 따서 손에 쥔 할머니의 치맛자락에 미역이 휘감겼다. “미역은 초겨울부터 맑고 찬 바다에서 자라다 말끔하게 씻은 뒤에 올라와. 미역이 올라오면 잘 살펴야 해. 너무 오래 두면 쇠굳어 질겨지거든. 때를 잘 잡아 따야 미끈한 것을 고를 수 있어. 볕이 좋을 때, 비 적시지 말고 꼬들꼬들하게 잘 말려야 해.” 할머니는 찬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미역처럼 미끈거리는 웃음을 웃었다. 할머니는 미역꼭지를 따 흐르는 물에 빨았다. 흰 거품이 가실 때까지 헹궜다. 감자를 으깬 밥에 쌈장을 넣어 미역쌈을 싸서 미라의 손에 쥐어주었다. 미라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 부푼 기대를 비웃던 미라는 시내 병원에서 소파 수술을 받고 왔다. 푹 꺼진 배를 보고 할머니는 미라의 어깨를 때렸다. 독한 것, 이라고 욕을 했다. 대책 없이 낳기만 하면 어쩔 건데. 그런 멍청한 짓을 되물림 했으면 좋겠어? 미라는 앙칼지게 대답하곤 서류 준비를 한다며 도시로 돌아갔다. 미라가 이곳에 오지 않은 삼 년 동안 할머니는 내게 미라를 보고 오라고 했고 만나고 돌아오면 미라의 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마당으로 나서니 미라는 곤색 스웨터를 만지고 있다가 내려놓았다. 내가 설거지를 끝낼 때까지 미라는 마루에 앉아있었다. 드럼통에서 무언가 탁탁, 소리를 내며 탔다. 화장터에서 할머니의 몸에 불을 붙일 때, 직원은 내게 할머니가 놀라지 않게 불났어, 라고 말하라고 시켰다. 나는 작은 구멍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소리쳤다. 

“할머니 불이야, 불, 방갈로에 불이 났어.”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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