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명년 봄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4-27 08:14:21
  • 수정 2025-04-27 08:20:20

기사수정


파도는 순해지고 풀이 돋고 목덜미의 바람이 기껍고 여자들의 종아리가 신나고 신입생의 노트에 새 각오가 반짝이고 밥그릇과 국그릇 위로 오르는 김이 벅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상처는 아물고 커피가 맛있고 입맛이 돌고 안 되던 드라이브가 되고 시인도 시인이 되고··· 시인도 다시 시인이 되고 혁명이 오고

 봄,


 -장석남 시인의 시 '명년 봄' 전문



 이 시는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에 실려있다.

새봄 맞는 기분을 실감나게 잘 표현했다. 읽다 보면 절로 발랄해지고 왠지 설레고 힘이 솟는다. 이미지가 움직이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미지들이 계속 생성된다. 그 에너지가 대단하다. 이런 시적 에너지들이 화자의 욕망을 모두 실현시켜 줄 것만 같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상처는 아물고", "입맛이 돌고", "안 되던 드라이브가 되고", 안 써지던 "시"도 멋지게 쓰게 될 것 같다. 종전의 모든 것을 바꿀 것 같은 아주 혁명적인 "봄"이다.

명년은 내년을 이르는 말이다. 혹 올봄에 이 기꺼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니 이 짧은 봄날이 아쉽게 지나갔다면 속상할 필요가 없다. 명년에 봄은 또 올테니까. 이런 시인의 욕망을 담아 제목도 "명년 봄"이다.

 이 시를 읽으니 봄도, 인연도 연연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모과의 귀지를 파내다 모과에 핀 얼룩을 손으로 쓱쓱 문지르니점액질이 끈끈하게 배어 나온다얼굴에 핀 검버섯처럼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반짝거린다 모과의 귀에 면봉을 깊숙이 넣으니갈색의 가루가 묻어 나온다너는 그것이 벌레의 똥이라고 우기고나는 달빛을 밟던 고양이들의 발소리라 하고천둥소리에 놀라 날아들던 새의 날갯짓 소리라 하고새벽바람에 잔..
  2. [새책] 20대 청년이 쓴 《마르크스주의 입문》···세계 바꿀 가장 날카로운 무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는 지금, 왜 다시 마르크스주의를 읽어야 할까? 1%의 부자가 전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가 계속되면 마르크스주의는 다시 부활할까?오월의봄에서 20대 청년 이찬용이 쓴 《마르크스주의 입문》을 펴냈다. 그동안 나온 마르크스주의 책들은 대부분 오래됐거...
  3. 2025년 포엠피플 신인문학상 주인공 22세 이고은 "시 없인 삶 설명 못 해" 올해 《포엠피플》신인문학상은 22세 이고은 씨가 차지했다. 16일 인천시인협회 주관하고 인천 경운동 산업단지 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1,351편의 경쟁작을 뚫고 받은 것이다. 행사 1부는 《포엠피플》 8호 발간(겨울호)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2022년 2월, 문단의 폐쇄적인 구조를 타파하고 회원들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기치 아래 창간된 계..
  4.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같은 부대 동기들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우리들. 첫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서 운동장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난 이런 죄를 고백했는데. 넌 무슨 죄를 고백했니? 너한텐 신부님이 뭐라 그랬어? 서로에게 고백을 하고 놀았다.  우린 아직 이병이니까. 별로 그렇게 죄진 게 없어. 우리가 일병이 되면 죄가 조금 다양해질까? 우리가 상병이 되면…… 고백할 ...
  5.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새우탕 수평선이 그어져 있다 그 부분까지 끓는 물을 붓는다 오랜 기간 썰물이던 바다, 말라붙은 해초가 머리를 풀어 헤친다 건조된 시간이 다시 출렁거린다 새우는 오랜만에 휜 허리를 편다 윤기가 흐른다 순식간에 만조가 되면 삼분 만에 펼쳐지는 즉석바다, 분말스프가 노을빛으로 퍼진다 그 날도 그랬지 끓는점에 도달하던 마지막 1°는 네가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