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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봄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3-16 08:20:32
  • 수정 2025-03-18 15: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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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시인의 시 '봄' 전문



이 시는 시집 《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에 실려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의 섭리대로 곧 봄은 온다. 추위가 길어지고

현실이 막막하여 기다림마저 희미해져가도 꼭 올 것이다.


겨울을 이기고 오느냐고 더디게 더디게 도착할지라도 마침내 와서 봄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 봄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봄이었으면 한다. 현대철학의 거장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소개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의 봄이었으면 좋겠다.


따사로운 봄햇살처럼, 부푼 봄흙처럼, 달큰한 봄바람처럼 법의 적용이나 주어지는 기회가 차별 없기를 바란다.


기다리는 마음 풍경을 생동감있게 잘 그린 시다. 참 눈부시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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