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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선의 희망공간] 마을이 쇠락하고 있는 중
  • 송형선
  • 등록 2025-02-24 06:20:35
  • 수정 2025-02-25 19: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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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을 풍경이 시나브로 달라진다

 

매일 똑같아 보이는 마을 풍경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경기가 얼어붙은 마을을 본다. 하루가 다르게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임대’로 나온 점포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이다. '신장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라고 웅얼거리며 '가게 내놓았습니다'라고 써 붙인 유리문을 본다. 


분명히 얼마 전에 인테리어 공사를 했던 가게다. 리본이 묶인 화분들이 즐비했던 가게다. 신장개업 특수를 누리며 성공할 것 같은 가게였다. 그러나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가게를 내놓은 것이다. 이러한 가게가 한둘이 아니다. 엊그제 연 가게들 같은데 소리 소문 없이 가게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때는 인테리어 사업자만 돈을 번다는 말이 있었다. 한 가게가 자주 간판을 바꿔가며 개업하니까 그때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게 된다. 투자한 가게에서 생계를 이어가려는 생각이었지만, 해를 못 넘기고 문을 닫았다. 결국, 투자금만 고스란히 날린 꼴이었다. 



그나마 인테리어 사업자만 돈을 번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다. 최근에는 아예 빈 가게가 속출한 채 인테리어 사업자들도 일이 없는 판이다. 언제 개업했는지도 모르게 임대가 붙은 가게들이 즐비하다. 우리 동네만 그런 줄 알았다. 돌이켜 보니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게 됐다. 



기억을 더듬어 지난해 인천일보 기사를 찾아보니 2023년 인천의 자영업자 6만 명이 폐업신고를 했다. 전국 자영업 폐업 비율이 7%대인데 인천은 10%대로 전국 1위다. 인천의 기업체들 사업 부진과 범국가적 내수 부진이 원인이었다.


음식점의 경우 맛이 성패를 좌우하거나 서비스와 청결함, 가격 등 그 외에도 여러 이유로 손님이 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요소를 다 이겨내도 곤궁해진 시민들 주머니 사정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빈 가게가 하나둘 늘어가는데 보통은 얼마 안 지나 신장개업 가게가 들어섰다. 늘 그렇듯 다시 가게가 들어설 만도 한데 몇 달째 임대로 남아 있는 곳이 너무 많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커다란 음악 소리와 함께 가게를 오픈해도 '신장개업 특수'를 누릴 뿐 몇 개월 못 가 가게 문을 서둘러 닫는 실정이다. 손님들도 검증된 음식점을 이용한다. 오래전부터 유명한 맛집들도 매우 힘들어 하는 게 요즘이다. 보통은 현상 유지도 힘들어 마지못해 문을 열어 놓는다. 손님이 귀하다. 그런 맥락에서 달리 할 일을 찾지 못해 버티고 버티다 보증금까지 날리고 가게를 처분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 초여름, 교동도에 다녀 왔다. 나오는 길에 강화도 길목에 있는 해장국집에 들어갔다. 규모도 제법 됐고 장사도 좀 되는 것처럼 보였다. 들어서면서 기대는 깨졌다. 넓은 홀은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저분했다. 서빙은 외국인 청년 하나가 하고, 주방은 노파가 맡았는데 사장까지 겸하고 있었다. 꽤 장사가 되다가 쇠락하는 모양새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집 외에도 주변 가게들이 앞다투어 퇴색하고 있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다. 나올 때 김포 길가 간판들 풍경도 쇠락하는 해장국집처럼 보였다. '좋아지겠지, 좋아져야겠지' 기다리다 해가 바뀌었다. 내가 사는 동네뿐 아니라 곳곳이 불경기의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때는 번성하던 마을 골목들이 '임대'로 뒤덮이면서 사람들 발길은 뜸해졌고 적적해져 간다. 언론·방송에서는 그야말로 전국 곳곳의 '파리날리는 골목' 풍경을 내보내고 있다.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됐을까? 


한두 개가 흥하거나 망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 탓일 수 있지만 전국적인 형태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경제평론가들은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서"라고 한다. "장기간 이어진 불경기와 고물가로 사람들이 소비를 줄여서"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나라 전체의 불경기가 끝나야 할 문제"라고 한다. 


진단이야 여러 이유를 말할 수 있고 대안도 여러 말을 할 수 있다. 마을기획 청년활동가인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마을의 풍경'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경제가 살아야 한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나 나라경제가 살려면 마을경제가 앞서 살아야 한다. 온 국민이 함께 사는 나라의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골목에 관심이 따라야 한다. 물론 기초 단계의 마을을 살리며 전 세계의 변화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마을은 온 세상과 연결돼 있어서다.

덧붙이는 글

마을기획 청년활동가 송형선은 사단법인]마중물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남동희망공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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