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3·1운동의 함성
작은 음표들을 연거푸 수놓듯
새파란 싹들이 돋는다
똑 부러질 것 같은 오선의 가지들이
파란만장(波瀾萬丈)의 몸짓으로
시푸른 노래를 완성할 수 있을까
나무들은 저마다 혼자 숲이 아니라는 듯
서로 내어준 공간과 공간마다
잎사귀 악보들을 빼곡히 펼친다
아지랑이와 꽃봉오리도 음정을 맞추고
바람 소리가 비어 있는 하모니를 마저 채울 때
둥치들이 한 겹씩 악장을 그린다
사시사철 일궈온 오늘의 무대 뒤
많은 날 잠 못 든 햇볕 스텝도
그늘진 쪽으로 타닥거리고
보이지 않는 입자와 입자로 뭉쳐진
열매들의 표정도 한껏 부푼다
다시 모여든 노래와 노래가 달려간
숲들이 더 큰 숲을 만들며 번지고
온갖 꽃봉오리 무더기무더기 터지며
색색의 합창들 사방으로 흩날린다
웅장한 합창이 채 다다르지 못한
깊은 골짜기 속으로 스밀 때
줄탁동시의 싱싱한 날개 한 쌍이
지구 한 알을 끌어안고 힘차게 날아오른다
-손병걸 시, '봄' 전문
3월이다. 새싹이 돋는다. 초록이 번진다. 들풀처럼 번진다. 이맘때면 함성이 들린다. “대한독립만세!” 시푸른 함성이 들린다. 하나둘 모인 목소리가 거대한 함성이 되어서 들린다. 뜨거운 노래가 들린다. 해맑은 노래가 들린다. 형형색색 꽃 이파리들도 날린다. 먹구름을 지우며 하늘이 열린다. 봄을 이끌며 3월이 번진다. 얼었던 마음에 불꽃이 켜진다. 기미년 3월 1일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봄이 그냥 온 것일까? 오늘이 그냥, 온 것일까?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3·1운동의 함성을 잊으면 안 된다. 순국선열들의 행적을 잊으면 안 된다. 이맘때면, 읽어야 할 순국선열들에 대한 책들이 많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오늘은 '백범일지'를 대표로 뽑아 들었다. 이유는 어느 정치인이 김구 선생 국적이 중국이라는 학자들이 있다고 떠든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외국 국적을 비밀리에 취득하는 사례는 요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김구 선생은 중국 국적을 공식적으로 갖은 바가 없다.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는 자가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이 모양이어서야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백범일지'는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김구 선생의 자서전이다.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기록한 육성이다.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이다. 백범 김구의 본관은 안동이며 아명은 '창암'이고 본명은 '창수'다. 선생의 집은 몰락한 양반가였다. 당연히 가난했다. 동냥젖과 암죽을 먹고 자랐다. 서너 살 때 천연두를 앓았다. 얼굴에 굵은 마마 자국이 그때 생겼다. 15세 때 한학자 '정문재'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892년 17세가 되던 해에 과거시험장에서 부정행위를 보고 생각한 바가 있어, 1893년 동학에 입교했다. 그 시절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인 '안태훈' 선생을 만났고 20세 때는 동학군 '이동엽'의 배반으로 안태훈 선생에게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팔봉도소의 접주로 임명되어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겨 1895년 만주로 피신해 '김이언'의 의병단에 가입했다. 이듬해 귀국해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복역 중 탈옥해 공주 마곡사의 승려가 되었다가 환속했다. 1909년 황해도 안악의 양산학교 교사로 있다가 신민회에 참가했고,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감형으로 출옥해서 '김홍량'의 동산평 농장 농감이 되었다. 3·1운동 후에는 상하이로 망명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했다.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령을 역임하면서 1928년 이시영, 이동녕 등과 '한국독립당'을 조직해 총재가 되었다. 이로부터 항일 무력 활동을 시작했고 결사단체인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 1932년에는 일본 왕 '사쿠라다몬' 저격사건,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일본 왕 생일축하식장의 폭탄투척사건 등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했다. 1933년 난징에서 '장제스'를 만나 한국인 무관학교 설치와 대일본전투방책을 협의했고, 1935년에는 '한국국민당'을 조직했으며,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옮길 때 통솔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설치해서 사령관에 '지청천'을 임명하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1945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대일선전포고를 하는 한편 광복군 낙하산부대를 편성하여 본국 상륙훈련을 시행하다가 8·15광복으로 귀국했다. 선생은 시종일관 애국을 강조했다. 그 조국에 다시 3월이 돌아왔다. 골짜기마다 진달래들이 붉게 물든다. 얼었던 물소리가 힘차게 흐른다. 산꼭대기에서 꽃봉오리들이 폭죽처럼 터진다. 꽃씨들이 사방팔방 흩날린다.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이 새파랗다. 사람들 얼굴마다 웃음꽃이 만발할 3월과 무사히 돌아온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