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다던 사람이 오지 않았다 사람들 말로는 많은 비가 온대서 서둘러 감자를 캐러 갔다고 했다 서운했지만 이내 그이의 비탈밭과 그이가 이랑에서 캐 담을 감자 생각이 났다 아가 주먹만 한, 알알의 감자 생각이 났다 감자 굵어진 곳은 흙의 절이요 성당 아닌가 그 흙과 그이의 땀과 기도 아닌가 그이는 저만치 비탈밭에 있지만 마치 감자를 한솥 막 쪄내 올 듯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 무더운 여름날도 한겹의 껍질 그 속에 뽀얗게 분이 꽉 차오르는 한알의 감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었다
-문태준 시인의 시 '감자' 전문
이 시는 문태준시인의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 에 실려있다.
농부에게는 농사일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일 것이다. 화자도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아 처음에는 서운했지만 비가 온대서 서둘러 감자를 캐러 갔다는 말에 이해를 한다. 그리곤 비탈밭에서 이랑에서 캐담을 감자를 위하여 그이가 흘렸을 땀과 노동의 시간에 대해 떠올려 본다. 감자가 굵어진 그곳이야말로 흙과 농부에게는 최고로 성스러운 공간이 될 것이다. 간절한 기도와 응답이 있는 "절"이요, "성당"일 것이다.
저서 <맹자> 에 '立志於民間之中입지어민간지중' 이라는 말이 나온다. 삶의 진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상 속에 있다는 말이다. 비탈밭이나 주변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무더운 여름날"도, "분이 꽉 차오르는 한 알의 감자"도 모두 숭고해 보이는 요즘이다.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