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 회장 [한화 제공]국세청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규모 유상증자와 자본거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나섰다. 단순한 기업의 자금 조달을 넘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편법이 없었는지 돋보기를 들이댄 것이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승계 및 탈세 의혹에 대해 자본거래 부분은 반드시 확인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대주주의 사익 편취나 자본시장을 악용한 세금 탈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엄중한 경고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월 한화에너지 등이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3000억 원에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가진 회사다.
거액의 현금이 오너 일가 회사로 흘러간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조6000억 원 규모의 일반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전격 발표했다. 회사 돈을 털어 아들들 회사의 주식을 사준 뒤, 정작 회사에 필요한 자금은 소액 주주들에게 손을 벌린다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1조3000억 원 줬다 뺏기, 성난 여론에 놀란 한화
주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금융감독원까지 증권신고서를 반려하며 제동을 걸자, 한화그룹은 결국 한발 물러섰다. 유상증자 규모를 2조3000억 원으로 줄이고, 모자란 1조3000억 원은 세 아들의 회사인 한화에너지 일가가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채워 넣기로 방침을 바꿨다.
오너 일가가 지분을 판 돈을 고스란히 다시 회사로 돌려놓는 셈이다. 소액 주주들에게는 신주를 15% 싼값에 주고, 오너 일가는 할인 없이 제값에 주식을 사기로 했다.
하지만 논란의 불씨는 정치권으로 옮겨붙었다. 유상증자 발표 직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가 10만 원가량 폭락한 틈을 타, 김승연 회장이 보유하던 한화 지분 11.32%를 세 아들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주가가 떨어졌을 때 지분을 넘겨 증여세를 크게 아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세청이 이번 자본거래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악재를 틈타 주가를 누른 뒤 지분을 물려주는 방식은 꼼수 승계의 대표적인 수법으로 꼽힌다.
이재명 상법 개정안과 정면충돌, 명분 얻은 야당
이 사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상법개정안과 맞물리며 정치적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한화의 지분 증여를 직접 겨냥해, 회사의 악재를 이용해 총수 일가가 증여세를 절감하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현행 상법상 기업의 이사는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할 의무를 진다. 따라서 경영진이 오너 일가에게 유리하고 소액 주주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려도, 회사에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야당이 추진하는 상법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초기 유상증자 계획처럼 일반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이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명분이 된 셈이다.
11조 원 투자의 진정성, 글로벌 탑티어 도약의 꿈
쏟아지는 비판 속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경영진은 직접 진화에 나섰다.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은 언론 설명회를 열고, "이번 유상증자가 오너가의 승계와는 전혀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2028년까지 해외 투자 6조2700억 원, 지상 방산 인프라 2조2900억 원 등 총 11조 원이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잠수함과 장갑차 등 대규모 무기 체계를 수출하려면 수출 대상국 현지에 생산 공장과 훈련 시설 등을 직접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압도적인 자금력과 재무 건전성이 필수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모자란 투자금 7조5000억 원은 영업 이익과 차입금 등을 통해 마련할 계획이다.
회사는 2035년까지 방산과 우주 항공, 해양 분야를 아울러 매출 70조 원, 영업이익 10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소액 주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주당 배당금을 3500원으로 두 배 올리는 주주 환원책도 함께 꺼내 들었다.
재계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지분 증여로 한화그룹의 3세 경영권 승계 작업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고 평가한다. 세 아들의 지배력이 확고해진 만큼, 더 이상의 지분 다툼이나 경영권 논란은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다. 남은 숙제는 증여세 납부 방식이다. 업계는 오너 일가가 보유 현금이나 주식 담보 대출을 통해 세금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