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국내 성장률 전망
미국발 보호무역주의라는 거센 파도가 예고됐지만, 한국 경제의 '반도체 엔진'은 여전히 뜨거웠다. 한국은행이 글로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반도체 경기 호조와 내수 회복세를 근거로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올려 잡았다.
한국은행은 27일 '경제전망(Indigo Book)'에 올해 경제성장률을 0.9%에서 1.0%로, 2026년 성장률을 1.6%에서 1.8%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미국 신정부의 관세 정책 등 대외 리스크가 상존함에도, 인공지능(AI) 산업 확장에 따른 반도체 수출 증가가 우리 경제를 견인할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국내 GDP 전망경로
반도체와 내수 '쌍끌이' 회복
한국은행이 바라본 경제 기상도는 '흐림 뒤 갬'이다. 올해 성장률 1.0%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지난 8월 전망치보다는 0.1%포인트 개선된 수치다. 2026년에는 성장세가 1.8%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낙관론의 중심에는 역시 '반도체'가 있다. AI 투자 붐이 지속되면서 고성능·범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내년 GDP 성장률 상향 조정(0.2%포인트)의 배경으로 글로벌 반도체 경기 호조(+0.1%포인트)와 정부의 확장 재정(+0.1%포인트) 등을 꼽았다.
여기에 건설 경기 부진이 다소 완화되고 민간 소비가 살아나면서 내수 부문도 성장에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물가 전망경로
환율 복병에 물가는 2% 안착 지연
성장 지표는 개선됐지만,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부담이다.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와 내년 모두 2.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8월 전망치(올해 2.0%, 내년 1.9%)보다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며 물가 하방 압력을 주고 있지만, 문제는 환율이다. 거주자의 해외 투자 확대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가을장마와 여행 수요 급증으로 2.4%까지 치솟았던 점도 연간 물가 전망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 한은은 2027년에 이르러서야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인 2.0%로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나리오별 반도체 수출 전제 및 미국 빅테크 자본지출 전망
시나리오별 엇갈린 운명, 'AI 거품'론이 변수
한국은행은 이번 전망에서 반도체 경기에 대한 '대안적 시나리오'도 함께 제시했다. AI 산업의 성장 속도에 따라 한국 경제의 성적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반도체 수출 호조가 지속되고 미국의 관세 부과가 지연될 경우, 2026년 성장률은 기본 전망보다 0.2%포인트 높은 2.0%까지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AI 투자가 과잉으로 판명돼 반도체 수요가 정체되는 비관적 시나리오 하에서는 내년 성장률이 1.7%(-0.1%포인트)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고 미국발 통상 파고를 넘고 있지만, 그 엔진의 연료인 'AI 수요'가 얼마나 지속될지가 향후 성장의 핵심 열쇠가 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향후 성장 경로에 글로벌 통상 환경과 반도체 경기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상존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