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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의 문화문학] 만화 속에 회전하는 타이밍과 미래의 전망
  • 문종필
  • 등록 2025-11-26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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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새로운 시대, 새로운 '만화책' 4편

단편 만화는 이야기 속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건축물 같다. 장편 웹툰은 긴 호흡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과정에서 당대의 사건 사고를 적절히 잘 담아낸다. 2017년 연재를 시작해 최근에서야 연재를 끝마친 라마 작가의 웹툰 〈내일〉에서는 동시대에 뜨거운 담론이었던 동물, 성소수자, 성폭력, 무차별적인 악플, 학폭, 외모, 임산부, 성노동자, 독고노인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텍스트의 세계에 편입시킨다. 작품에 이러한 개입이 가능한 것은 '장편'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틀'에 필요한 소재를 현재에서 채워야 수월할 뿐 아니라, 가독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정도의 긴 시간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장편 웹툰은 소재나 형식에 있어 자유롭다. 단편 텍스트는 조금은 다르다. 짧은 형식에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형식도 형식이거니와 내용 역시도 치밀하게 계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설프게 운영할 시 내용 자체도 내용을 담아내는 형식도 심각하게 흔들린다. 그러니 단편의 가장 큰 장점은 잘 짜인 형식에 걸맞은 내용의 반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도 조금은 바뀌어 가는 것이 이곳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탄탄하게 잘 짜인 형식과 내용이 '단편'에 적합한 것이라는 '잣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단편도 이제는 유쾌하게 창작될 수 있고, 오히려 이런 '유쾌함'에 머물러 있는 가벼움을 단단한 내용과 연결 시킬 수 있는 것이 재능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오시로 고가니의 단편 〈눈 내리는 마을〉, 〈당신이 투명해지기 전에〉, 〈설녀이야기〉, 〈해변의 스토브〉에서 보았다. 


이 네 편은 '죽음'과 '사랑'과 '기억'과 '친구'에 대해 다룬다. 만화가는 이런 진중한 이야기를 끌어가는 과정에서 곡예를 넘듯 이야기를 '회전'시킨다. 단편모음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해변의 스토브〉를 예로 들자면 스미오와 엣짱이 우연히 만나게 된 후, 연애하게 된 지금 이 순간을 표현하려 했을 때도, 서사를 살려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급하게 회전해 시공간을 이동시킨다. 이러한 연출은 사랑했던 이들이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화책 밖으로 확장되는 정적이면서도 농도(난로의 빛) 짙은 과장된 4칸 만화 연출로 급작스럽게 스미오와 엣짱을 이별시킨다. 


중요한 것은 이 연출에는 호소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때 일부의 독자들은 실망할 수 있으나, 오시로 고가니의 자연스러운 연출로 인해 어색해하지 않다. 짧고 요긴한 것만을 취하는 숏츠 시대의 형식을 온전히 내용으로 승화시킨 덕분이다.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에 만화가가 "투룸에서 시작되었다가 끝난, 관객은 스토브뿐이었던 영화"라고 의도적으로 명명할 때, 짧은 하이쿠 형식의 이 문장이 온전히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독자들은 짧은 단편과 애틋한 내용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 숏츠 시대의 산물인 이러한 급격한 '회전'은 다른 단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설녀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눈을 다스리는 요괴'와 한 청년의 만남은 그 어떤 '계기'로 만남이 성사되지 않는다. 갑작스럽고 '우연적'으로 이뤄진다. 만화는 이런 우연을 변증법적으로 부딪치면서 형식을 끌고 나간다. 


배경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설녀는 청년과 만나서 그를 겁주고 위협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자신이 공포스런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이다. 내용만 놓고 보면 굉장히 공포스러운 내용인데, 이 요괴의 캐릭터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설녀와 청년 사이에 경계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들은 사이좋게 차를 타고 이동하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끝내는 서로 친구가 되고, 설녀가 품은 인간을 향한 두려움을 떨쳐 내주기 위해 청년은 여러 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설녀를 돌본다. 


이런 내용을 끌고 가는 과정에서 형식과 내용은 유기적으로 만나 계속해서 '회전'하는 형태가 이 만화가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칸의 리듬과 내용은 짧아지지만 주관적인 서사는 길어진다. 숏츠 시대의 특징을 잘 담아낸 것이다. 이 글에서 다뤄지지 않은 오시로 오가니의 그밖의 단편 역시 이런 형식적 특징을 고수한다. 


그렇다면 이런 만화의 시대적 흐름이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숏츠 시대에 가장 적합한 형식인 단편만화 모음집 작가 오시로 고가니 작품에 대해 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웹툰에서는 이러한 효과가 너무나 흔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만화책에서 그것도 성공적으로 '형식'과 '내용' 모두를 설득시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아가 국내의 만화작가가 아닌, 일본 문화에서 재생된 이 만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정책적인 측면에서 한국만화의 고질적인 문제인 '산업화'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 만화가들도 많겠지만,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생된 만화가 젊은 만화가들에게 꿈이나 잣대가 된다면, 한국만화에서는 오시로 고가니 같은 젊은 감각을 소유한 만화가는 출현하지 않을 것 같다. 모국 문화의 장점은 물론, 숏츠 시대의 형식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탄탄한 만화가는 출현하기 힘들 것 같다.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스템이 가진 문법은 고착화 될 것이고 이 시스템에 익숙한 사고체계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닐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의 잣대가 아니라, 자본의 '잣대'를 잠시 미뤄두고 진지하게 '이야기(내용)'와 '표현(형식)'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다. 만화 생태계와 젊은 만화가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과감히 교과 커리큘럼을 바꿀 필요도 있다. 그 방향이 어디인지 확실치 않으나, 만화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이 글은 이웃 나라의 작품 《해변의 스토브》을 통해 한국만화가 아직 가보지 않은 이곳의 가능성을 진단했다. 만화는 그 무엇도 꿈꿀 수 있다. 만화가 꿈꾸는 낭만 정신은 단단한 정형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끝- 


그림 윤움 / 문종필 평론가    

덧붙이는 글

문종필 평론가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 「좋은 곳」 「무제」를 발표하며 만화평론을 시작했다. 문학평론집 〈싸움〉으로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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