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라〉
미국의 정치학자 마샬 버만은 괴테의 《파우스트》 2부에 '발전의 비극'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버만은 바다라는 자연 환경에 간척사업을 실행하는 파우스트의 꿈에서 개인적인 성장과 사회적인 발전이 연계되는 이념을 발견했다. 자연을 개척하고 환경을 개선한 인간이 스스로의 자아를 해방하는 꿈이 그 시대의 표상임을 확인한 것이다.
파우스트의 편에 서 있었지만, 괴테는 발전의 이면을 간과하지는 않았다. 간척사업에 반대하는 늙은 부부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는 위대한 낙원 건설 사업의 이면을 드러낸다. 새로운 유토피아에 마련한 늙은 부부의 보금자리가 기만이 되어버리면서 완성되는 순간, 파우스트는 자기 삶을 끝내는 아이러니한 한 마디를 뱉는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자연과 싸워 이겨 인간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이데올로기는 근대만의 것은 아니다. 늪지를 메워 유럽풍 도시를 건설한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 허허벌판 사막 위에 건설되어 세계 유수 기업들 기지가 된 두바이는, 그러한 욕망이 근대에 더욱 활짝 꽃피웠음을 알려준다.
그러한 인류사의 기념물에는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상트페테르부크가 '뼈 위에 세운 도시'로 불리웠다든가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 진나라의 맹강녀 설화 등이 이를 예증한다.
영화 〈수라〉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문제가 드러났다. 깎고 다듬고 폭파한 후 단단한 소재로 자연의 흐름을 싸움하듯 막아버린 탓에 여러 문제가 생겼다. 물이 고여 썩었고 생태계가 교란되어 생물다양성을 훼손하였다. 미국, 유럽에서 댐을 철거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바로 이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군산에서 부안을 잇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짓고 토지를 매립하는 거대한 규모의 간척사업은 1991년에 시작되었다. 물을 막고 흙을 들이붓고도 (초기 계획은 농지 전용이었기 때문에) 소금기가 사라질 때까지 땅을 관리해야 하는 거대한 사업이었다.
매립용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도 뚜렷하지 않았다. 모두 농업용지로 활용한다는 애초의 계획이 복합개발계획으로 바뀐 2007년 이후, 새만금 활용계획은 계속 토론 중이었다. 현재 소송 중인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은 그 와중에 확정된 사업 중 하나였다.
그간 해창갯벌, 계화도갯벌, 수라갯벌 등 '지구의 콩팥' 갯벌을 지키려는 시민단체, 바다에 온 생계가 달려 있던 어민들은 이에 반대해 왔다. 진척된 간척사업 자체를 되돌릴 수 없다면 해수 유통이라도 유지하여 갯벌에 살고 있는 보호종과 멸종위기종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고, 이번에 관객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선정되어 9월 20일 앵콜 상영한 〈수라〉는 그 싸움과 갯벌에서 생명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담았다. 황현 감독은 SNS에 이를 기뻐하는 글 뒤에 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 소송의 항소 포기를 위한 서명을 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영화 〈수라〉도요새 군무새만금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에 대한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이 내려진 건 9월 11일이다. 재판부는 '연간 9~45회 발생할 수 있는 조류 충돌 위험과 생태계 훼손이 심각하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승소를 선고했다. 9월 22일 국토교통부는 "구체적인 보완 대책을 마련하고 사업의 공식성을 다시 강조하겠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한강이 그렇고 시화호가 그러했듯, 어쩌면 개발의 꿈에 취한 이들은 자연이 아무리 망가져도 돌이킬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겉보기에 깔끔하고 깨끗해진다고 해서 무너진 생태계의 생물다양성까지 회복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새만금의 대표 조류 중 하나인 도요새는 시베리아에서 호주까지 횡단하는 아름다운 철새로 봄과 가을에 한반도에 머문다. 그러므로 새만금은 지구 생태계 순환의 중요한 한 축이다. 개발과 생태, 사고 위험성을 함께 고려하는 현명함이 필요할 때다.
그때에야 우리는 인간만의 낙원 건설에 눈이 멀었던 파우스트의 한 마디에 오늘날 인류의 진심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영화 〈수라〉
참고자료: 김성기 외,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4 ; 마샬 버만, 《현대성의 경험: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 버린다》, 윤호병·이만식 옮김, 현대미학사, 1998(개정판) ; MBC NEWS, 〈“연어가 돌아왔다!” 댐 허무는 미국, 더 짓겠다는 한국〉, 2025. 3. 3.; 시사인, 〈새만금의 과거는 바꿀 수 없을지라도〉, 2025. 9. 19. ; 경향신문, 〈정부, 새만금 신공항 취소 판결에 항소…“국가균형발전 위한 것”〉, 2025. 9. 22.
[아이즈앨범] 길고 긴 터널의 끝
길고 긴 겨울의 북풍 한설 끝에 봄이, 아주 벅찬 그리하여 완전한 봄이 왔습니다. 너무나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리며 애태우던 절망의 그 절망이 사라지고 매화, 그 희망의 봄이 왔습니다.
'아이즈 앨범' 1999년 어느 겨울 새벽
아주 추운 어느 새벽 나의 밤의 미행은 계속되었고 갑자기 친구가 나타났다 외투를 벗어주고 싶었지만 야박하게도 렌즈 노출이 3분을 넘어가고 있었다.파르르 떠는 몸의 파동과 온기를 나눌 연민의 차이처럼 찰라가 만든 결과 뒤 밀려드는 타자들의 고통이 어두웠다. 오늘처럼 쇄골이 시리면 생각나는 그 겨울 그 시간... *2001년 사진전, ...
얼어 붙은 땅에 노란 납매 그리고 동백
꽁꽁 얼어 붙은 날씨였으면 더 신기하고 감격으로 채워졌을 텐데...대한민국이 얼어붙고 혼란스러운 계절납매와 동백이가 핀 1월 따뜻한 봄을 기다려 본다
[아이즈앨범] 첫눈이 말하는 폭설 이야기
큰눈이 내려주었다차는 차대로 엉거주춤사람은 사람대로 조심조심건물들도 내리는 눈에 모서리를 잃어간다모두가 흐려지는 날인데눈 녹은 자리에 다시 큰눈 내리고내리는 만큼 길이 질퍽해져도입가에 번지는 웃음이 있다첫눈이 많이 왔다는 말과 첫눈이 빨리 왔다는 말이 있다오늘 몇 시에 나왔냐는 물음과 퇴근길은 괜찮겠냐는 물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