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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의 문화문학] 만화 속에 담겨온 회전된 내재적 정치성
  • 문종필
  • 등록 2025-11-12 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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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새로운 시대, 새로운 '만화책' 2편

우리 만화계에서 정치적인 만화는 많이 있어왔다. 한국현대사의 가슴 아픈 부조리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만화의 형식으로 기록한 작품이 적지 않다. 물론, 이 작업은 김홍모, 박건웅, 김금숙 등 소수의 만화가들에 의해서 꾸준히 작업된 면이 없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이 소수의 만화가들에 의해서 잊지 않고 기억된다는 점에서 만화의 '정치성'을 감각할 수 있어서 다행인 면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지극히 '리얼리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대에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난해하고, 왜곡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용어를 정의내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적어도 한국만화에서의 정치성은 '투명'한 방식으로 재생되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을 많은 만화가들이 선택한 것이다. 


물론, 만화가의 개별적인 감각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치열하게 반영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고, 이들이 한국현대사의 상흔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느껴야 했던 고통의 과정을 가볍게 치부할 수 없음을 백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 방법이 '투명'한 방식이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가령, 홈통만화연구실에서 기획된 4호 '국가폭력'에 다뤄진 20편 이상의 작품만 놓고 보더라도 이런 경향을 피해갈 수 없다. 


동일한 표현방법을 지닌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지만, 재현해 내는 스타일이라든지 경향성은 한 곳에 머물러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시대의 상흔이나 사회의 부조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 뿐더러 창작의 대상이 되는 존재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왜곡되지 않게 재현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의 사명을 다하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사회구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거칠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진입하게 되는 과정에서 커다란 담론에 해당되는 '우리'나 '민족', '국가'와 같은 담론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밀려오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인해 국경이 흐려졌을 뿐만 아니라, 한 명의 개인은 자본에 짓눌린 존재가 된다. 


그때부터 한 명의 개인은 사회를 대표하는 존재가 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야기가 사회를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정치적인 것에 대한 표현 역시도 내재적 자율성이 응축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개별성과 보편성을 품고 있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이 이 시대를 감염시키게 된다. 이런 자장(磁場)에서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통해 숨겨진 사회의 통증을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세계관은 물론, 손쉽게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개발과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어떤 스토리나 이야기 역시 '기술'이라는 '시대적 무의식'에 젖어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시대의 세계관과 첨단 '기술'의 세례를 받은 젊은 만화가들은 과거의 방식처럼 '정치적인 것'을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형식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최근 작품으로는 박인주의 〈날개암〉(2025)과 조성환의 〈스몰 프레임〉(2025) 등이 있지만, 이 글에서 다뤄지고 있는 오시로 고가니의 단편 〈눈을 껴안다〉와 〈소중한 일〉은 이들 작품보다 더 '시대적'이다. 


『해변의 스토브』 134쪽. 

〈눈을 껴안다〉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표면에 단 한 글자도 드러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분명히 많이 드러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과정에서 정치색이 드러날 뿐 표면적으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 텍스트의 주인공 히노 와카바는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삶을 살아간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임신 소식에 눈물을 흘려주는 착하고 성실한 남편이 있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 그녀에게는 아무런 고민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임신을 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니 그렇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갖게 됨으로써 포기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히노 와카바는 "내 몸이 나 혼자만의 것이었던 때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라고 고백하며 임신 사실에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온 적이 없었음을 확인한다. 만화에서 이 장면은 피사체를 가까이 끌어당기는 형태로 그녀의 불안을 온전히 잡아낸다. "부모님이나 남편, 손님같이 스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이 당연한 얼굴로 내 몸에 간섭"했었기에 아이를 갖게 되면 또 다시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은 그래서 합리적이다. 


이 텍스트의 또 다른 주인공 하라 고코는 예쁜 외모와 당당한 태도로 '멋진 여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고충이 있다. "고등학생 때 곧잘 치한을" 만나 곤혹을 치렀다. 만화는 이러한 감정선을 눈(雪)을 굴리는 행위나 거울 앞에 선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감정을 세분화하고, 도시가 미사일에 폭격받는 장면을 성추행 행위로 비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당신의 삶은 어떠한지 묻는다. 하지만 이 텍스트는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단계에서 매듭되지 않는다. 여기서 매듭이 되었다면 부조리를 고발하는 일반 텍스트와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만화는 생리적이거나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두 여성이 폭설로 인해 '목욕탕'을 찾아가는 행위를 통해 정치적인 것을 논한다. 이 공간은 단순한 목욕탕이 아니다. "아가씨도, 아줌마도, 한 명 한 명 모두가 가지각색의 몸을 하고 간섭하지도 간섭당하지도 않고 유유자적" 탕을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은 소외된 존재들이 마음 편히 쉴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공간이다.


이런 설정은 성소수자들이 살아가는 틸리 윌든의 〈햇살을 타고〉(2020)의 우주선과도 무관하지 않다. 목욕탕에서 편히 쉬는 두 여성은 이 만화에서 칸을 횡단해 전면적으로 배치되는데, 이는 시공간을 초월해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만화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이런 방식으로 소외된 존재에게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현재 안전하지 못하니, 당장이라도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이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의도는 여성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사회에 가장자리에 놓인 존재를 현재로 소환한다.


최근에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우크라이나 난민인 한 여성이 버스 안에서 흑인에게 피살된 사건이 있다. 이 장면은 CCTV에 녹화되어 숏츠의 형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시청되었다. 여성이 이 사회에 약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무차별적인 폭력이나 가부장적인 사회적 관성에서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오시로 고가니는 이 사실을 짧은 단편에 시시각각 바뀌는 칸과 칸의 회전으로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칸만을 운영해 담아냈다. 만화가는 이 만화에서 "다, 다, 다, 다, 다…알몸을 껴안고 거리를 질주하는 여자들"이라고 표현하며 만화의 끝을 장식한다. 여기서 알몸으로 껴안는 행위는 '연대'를 의미한다. 이 세계에 살아가고 있는 소수자들과 연대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해변의 스토브』221쪽. 

정치적인 영역과 관련된 그의 또 다른 작품 〈소중한 일〉은 만화책으로 10쪽밖에 안 되며, 36칸으로 운영되는 아주 짧은 텍스트다. 이 텍스트에서는 회사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한 청년의 삶이 그려진다. 그녀가 하는 일은 "아침 열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종일 엔터 키를" 누르는 일이다. 사무직으로 일하며 결제를 담당하거나,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주인공은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녀의 삶은 고달프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를 가던 중 바닥에 반사된 빛을 보면서 그곳으로 발을 옮긴다. 빛의 터널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꿈꾸어 본 것이다. 지루한 회사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이 행위에 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하는 사무실에서 반사된 햇살을 들이키는 순간, 생각을 고쳐먹는다. "익숙한 사무실. 거지같은 상사. 거지같은 엔터 키. 그런데 예뻐 보여"라고 말하면서 부정의 감정을 희석시켜 버리는 빛에 매료당하기 때문이다. 이 경험 이후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석양이 비쳐지지 않는 사무실에 빛을 닿게 하는 일"을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무실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회상의 형식으로 제시되고, 지금, 이곳의 시간은 현실로 재현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주인공은 오래 전에 자신의 꿈을 찾아 용기내어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빛'은 이 텍스트에서 주인공의 감정을 좌지우지 하는 역할로 작동하는데, 함께 일하는 상사나 동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보통의 삶을 감싸 안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경험의 재현은 동시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노동'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런 부드러운 방식이 이 시대의 새로운 정치색이지 않을까. 한 개인의 삶을 바꾸는 방식도 이렇게 기성과는 다른 것이다. 흔히 우리는 정치적인 것을 '낭만적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낭만적인 것'은 사랑과는 거리가 있다. '이곳'에서의 불가능을 '저곳'에서 가능하다고 믿는 체계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가벼운 소품이라고 할지라도 짙은 정치색을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림 윤움 / 문종필 평론가 

덧붙이는 글

문종필 평론가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 「좋은 곳」 「무제」를 발표하며 만화평론을 시작했다. 문학평론집 〈싸움〉으로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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