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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담쟁이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10-19 00:36:00
  • 수정 2025-10-21 23: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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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 전문

 


이 시는 도종환 시인의 시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에 실려있다. 

 

살면서 감당할 수 없는 순간과 맞닥뜨리게 됐을 때, 다가온 현실이 너무 높고 단단한 벽이라 주저앉고 싶을 때 어김없이 떠올리게 되는 시다. 보통 인간은 절망을 피하려고 하지만 이 시는 절망을 잡고 놓지 말라고 한다. 절망을 인식할 때 비로소 그 벽을 넘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잎은 다른 잎을 붙잡고 함께 벽을 넘는다. 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서로를 연결하여 새로운 생명의 길을 만들어 낸다. 그 연결은 결국 벽의 의미까지 바꾸게 된다. 질 들뢰즈가 말한 리좀(Rhizome), 즉 뿌리줄기의 방식과 닮아있다. 기존의 '정해진 것, 고정된 것, 강제된 것'을 벗어나 새로운 가치나 방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나무가 혈통 관계라면 리좀은 결연 관계인 것이다.

 

가끔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되어 포기할 때가 있는데 이 시는 "혼자"와 "혼자"가 모여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손내밀 용기를 주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손을 맞잡고 일어나게도 하는 시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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