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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곤 교수의 과학·교육·기술·현장] 디지털 헬스케어 혁명, ‘기술’이 아닌 ‘사람’에 중심 둘 때
  • 이선곤 교수
  • 등록 2025-05-28 1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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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헬스케어의 새로운 패러다임 -마지막 회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진단을 내리고, 스마트워치는 심장 이상을 조기에 감지하며, 빅데이터는 개개인의 생체 리듬과 건강 위험을 분석한다. 기술은 이미 병원을 넘어 일상에 들어와 있다. 그러나 이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마주한 우리는, 단 하나의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선다.


“이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의료는 지금 전례 없는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병이 발생한 뒤에야 병원을 찾는 ‘사후 치료’ 중심에서, 병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사전 관리’ 중심으로 의료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퍼스널 헬스케어(Personal Healthcare)’가 있다. 개인의 유전정보, 생활 습관, 환경 조건 등 다차원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맞춤형 건강관리를 제공하는 이 기술은, 스마트워치나 모바일 앱, 유전자 분석 서비스 등을 통해 이미 우리의 삶과 밀착돼 있다. AI는 수천만 건의 진단 데이터를 학습하여 질병을 예측하고, 웨어러블 기기는 실시간으로 생체 신호를 감지하며,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의 행동 패턴에 맞춘 치료를 제안한다.


이제 의료는 병원의 울타리를 넘어선다. 특히 원격의료와 AI는 의료 접근성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 의료 취약지역의 주민, 언어 소외계층도 스마트폰 하나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AI 챗봇은 건강 상담을 제공하고, 스마트워치는 이상 징후를 포착해 병원 방문을 유도한다. 이는 ‘편의’ 이상의 가치, 즉 ‘생명선’이 되고 있다. 더불어 원격의료는 의료비 절감 효과도 낳는다. 교통비, 대기 시간, 불필요한 처방 등을 줄이고, 의료진의 업무 부담도 분산시킨다. 반복적인 기록, 기본 진단 예측, 문서화는 AI가 맡고, 의료진은 환자의 깊은 이야기와 고위험 질환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의 존엄을 넘어설 수는 없다. 문제는 ‘기술의 윤리성’이다. 헬스케어 AI는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데이터가 편향되면 판단도 왜곡된다. 인종·성별·나이에 따른 학습 불균형은 오진 가능성을 높이며, 책임 소재 역시 불분명하다. “누가 판단했고, 누가 책임지는가?” 개발자인가, 병원인가, 혹은 시스템 그 자체인가? 또한 건강 데이터는 민감한 사적 정보다. 유전자 분석, 수면 패턴, 식습관, 위치 정보까지 포함되는 이 데이터가 제3자에게 상업적 용도로 활용되거나 유출될 경우, 환자는 단순한 ‘고객ID’로 전락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디지털 접근이 제한된 고령자나 저소득층에게 헬스케어 기술은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 기술은 빠르지만,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국제는 ‘표준화’와 ‘규범’으로 응답하고 있는데 미국과 유럽은 기술을 넘어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FDA는 AI 기반 진단 소프트웨어를 SaMD(Software as a MedicalDevice)로 분류해 별도의 규제를 마련했고, AI가 자율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사전 변경 관리계획'을 허용하되 안전성 검증은 강화하고 있다. 또한 의료 빅데이터 프로젝트 ‘Allof Us’를 통해 국민 100만 명의 유전체와 건강정보를 수집해 공공 목적에 활용 중이다. 유럽연합(EU)은 GDPR로 데이터 주권을 법제화했으며, AI의 판단에 대해 환자가 ‘설명받을 권리(Right to Explanation)’를 보장받도록 규정했다. 더 나아가 '유럽건강 데이터 공간(EHDS)'을 조성해 국경을 넘어 건강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흐름의 중심엔 항상 ‘표준화’가 있다. ISO, HL7, IEEE 등이 제시하는 진단 알고리즘, 데이터 인터페이스, 정보보안 표준은 기술의 신뢰성과 인간 중심성을 제도화하는 핵심 장치다. 이제는 기술이 아닌 사람 중심의 헬스케어 인프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역량과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퍼스널 헬스케어에 적합한 제도, 표준, 공공 인프라 측면에서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AI 의료기기는 여전히 전통 의료기기법 안에서 포괄 관리되며, 데이터 보호법은 헬스 특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공공 건강 데이터 플랫폼 역시 부재한 상태이며,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일부 지자체 차원에 머물고 있다. 이제는 정책적 선택이 필요하다. 국가의 책무는 기술혁신이 아니라 ‘신뢰 인프라’를 설계하는 것이다. 기술은 민간이 주도할 수 있지만, 신뢰 생태계는 국가만이 설계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다음의 다섯 가지 책무를 명확히 인식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먼저 규제를 혁신하고 법제화 해야 한다. AI 기반 의료기술을 위한 독립 규제 체계 구축(SaMD 분류 및 설명 가능성 확보)하고 데이터 소유권, 활용 동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 헬스 특화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공공 건강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다. 민간에 분산된 병원/기업 데이터를 통합하여 국가 주도의 헬스 데이터 플랫폼(Korean Health Data Platform)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유럽의 EHDS처럼 연구·정책·치료에 활용 가능한 공공 신뢰 기반 데이터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

세 번째는 디지털 헬스 포용 정책이다. 보건소, 복지관 중심의 디지털 건강 리터러시 교육을 제도화하고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을 위한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와 기기 보조금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네 번째는 공공의료와 기술 협력 강화다. 공공 병원 및 지역의료기관에 AI 진단 시스템, 원격진료 플랫폼을 우선 도입하고, 기술기업과 의료기관 간의 공공-민간 협력 생태계를 구축(데이터 공유, 윤리 기준 합의 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료윤리 재정립과 전문 인력 양성이다. 의료 AI의 윤리적 사용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것은 물론 의료진과 환자 모두를 위한 ‘디지털 건강 시민 교육’과 전문 인력 양성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밖에도 사회적으로 준비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먼저 ‘건강 데이터 리터러시’ 교육의 일상화가 필요하다. 헬스케어 기술의 핵심은 데이터인데 대다수 국민은 자신의 건강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활용되는지, 그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되는지 모른다. 초·중등 교육과 평생교육에 ‘디지털 건강 리터러시’를 포함해 환자 스스로 건강 데이터를 이해하고, 선택하고, 삭제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보편적 기술 복지도 확대해야 한다. 고령자, 저소득층, 농어촌 주민, 장애인 등은 기술의 혜택을 받기보다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 보건소,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시설 등 커뮤니티 기반 시설을 활용해 헬스기기 체험교육, 디지털 코디네이터 배치, 맞춤형 헬스 앱 가이드북 제공 등이 필요하다. 기술 포용은 단지 접속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한 삶의 권리다.

시민사회와 의료계의 ‘AI 감시자 역할’도 확보해야 한다. 기술 발전의 속도에 비해, 사회적 견제 장치는 매우 미비하다. 헬스케어 AI 시스템이 오진하거나 불공정하게 작동할 경우, 이를 모니터링하고 대응할 수 있는 독립된 공익 감시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윤리 단체, 환자단체, 시민단체가 참여한 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기술 남용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뢰 기반의 의료-기술 융합 문화 정착도 이루어야 한다. AI는 의사를 대체할 수 없고, 의료진은 AI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의료계는 기술을 활용하는 전문성과 통합적 사고를 갖춰야 하고, 기술기업은 의료윤리와 생명 존중을 내재화해야 한다. 단순한 도입을 넘어 "의료와 기술이 동등한 파트너로 신뢰를 주고받는 협력문화"가 사회 전체에 자리 잡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적 ‘건강 데이터 주권’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GDPR처럼, 한국도 ‘내 건강 데이터는 내가 주인이라’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데이터 활용 동의서에 잘 모르고 서명하지 않아야 하고 데이터 거래의 윤리성을 시민이 감시하고 판단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는 시민의식의 진화이며, 디지털 시대의 건강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사람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혁신이다. 제대로 구축하면 디지털 헬스케어는 명백한 의료의 미래다. 하지만 그 미래가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보다 먼저 윤리와 신뢰, 포용과 공공성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우리가 지금 설계하는 표준, 제도, 문화는 단지 기술 인프라가 아니라 사람 중심의 의료혁신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지,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철학을 구현하는 국가, 사회, 개인이 함께할 때, 디지털 헬스케어는 진정한 의미의 ‘건강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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