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증권
금융감독원이 고위험 파생결합증권(ELS)을 판매하면서 법적 의무인 '녹취'를 피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숙려제도'를 무시한 KB증권에 16억8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관련 직원들에게 견책과 주의 등 제재를 내렸다.
이번 제재는 H지수 ELS 사태로 금융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진 가운데 드러난 불건전 영업 행위로 기록될 전망이다.
설명은 얼굴 보고, 가입은 폰으로…녹취 회피의 기술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영업 현장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에 따르면 증권사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개인 일반투자자에게 판매할 때 반드시 판매 과정을 녹취해야 한다.
불완전 판매를 막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하지만 KB증권의 일부 지점들은 이 안전장치를 무력화하는 '꼼수'를 썼다.
KB증권 8개 지점은 2021년 1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H지수 ELS를 판매하면서 직원이 고객을 직접 만나 상품을 권유하고 설명해 놓고는 정작 가입은 '비대면'으로 하도록 유도했다.
대면 창구에서 가입할 때 필수적인 녹취 의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녹취 없이 판매된 사례만 16건, 금액으로는 5억7000만 원이나 됐다.
일부 직원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고객의 온라인 가입 절차를 대신 완료해주기도 했다. 고객 스스로 가입한 것처럼 꾸미면서 설명 의무와 녹취 절차를 건너뛴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12건(약 4억8000만 원)이 판매됐다. 부적합 투자자에게 상품을 팔면서도 녹취를 하지 않은 사례도 적발됐다.
안내 문자 전송 실패해도 나몰라라…구멍 뚫린 숙려제도
투자자가 가입을 결정하기 전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주는 '숙려제도' 운영도 엉망이었다. 규정에 따르면 금융사는 숙려기간 동안 투자자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 등 위험 요인을 명확히 알려야 한다. KB증권은 시스템을 통해 안내 문자를 자동 발송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발송이 실패했을 때였다.
시스템 오류나 번호 변경 등으로 문자가 전송되지 않았음에도 KB증권은 해당 투자자들에게 추가적인 안내를 하지 않고 방치했다.
그 결과 2021년 5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30명의 투자자가 투자 위험에 대한 고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9억8000만 원어치의 상품에 가입했다. 기본적인 시스템 관리 소홀이 투자자 보호의 공백으로 이어진 셈이다.
숙려기간 중 확정 의사 강요까지
숙려기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영업 행위는 이뿐이 아니었다. 숙려기간이 끝난 후에는 고객이 서명이나 녹취 등을 통해 "가입하겠다"는 확정적 의사를 밝혀야 청약이 집행된다.
그런데 KB증권 B지점은 2021년 6월 고객의 확정 의사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6000만 원 상당의 ELS 청약을 집행했다.
나아가 고객에게 가입 확정을 종용하는 행위도 드러났다. 판매 직원은 청약 집행을 목적으로 숙려기간 중인 고객에게 연락해 가입 의사를 확정해 달라고 권유했다.
이는 투자자가 차분하게 투자를 결정할 기회를 뺏는 행위로 엄격히 금지된 사항이다. 3개 지점에서 5명의 투자자가 이런 식의 권유를 받았고 2억8000만 원이 투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