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성 하나은행장 인사말(홈페이지)
은행창구 직원이 고객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신분증 주세요"다. 금융실명제는 한국 금융의 헌법과도 같은 원칙이다.
그런데 하나은행에서 이 철칙이 무너진 사실이 드러났다. 신분증 원본도 없이 복사본으로 계좌를 터주는가 하면, 고객 몰래 법원이나 국세청에 정보를 넘기고도 한 달 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금융감독원이 19일 하나은행에 대해 제재 조치를 통보하고 관련 직원 45명에게 견책과 주의 등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하나은행 홍보영상
신분증 사본으로 OK...DLF 등 101개 계좌 뚝딱
은행 계좌는 반드시 본인이 신분증 원본을 들고 가야 만들 수 있다. 대리인이 갈 경우엔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등 서류가 필요하다. 그런데 하나은행 지점 등 34개 영업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2018년 7월 ~ 2019년 10월, 이들 지점은 고객이 신분증 원본을 가져오지 않았음에도 계좌를 개설해 줬다.
방법은 황당했다. 예전에 계좌 만들 때 복사해 둔 '신분증 사본'을 재활용한 것이다. 심지어 대리인이 방문했을 때 필수 서류인 위임장을 받지 않거나 유효기간이 지난 가족관계증명서를 받고도 눈감아줬다.
이렇게 프리패스로 만들어진 계좌가 101건(66명)이나 됐다. 더 큰 문제는 이중 상당수가 원금 손실 위험이 큰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79건과 주가연계증권(ELS) 신탁 22건이었다.
하나은행
금융 정보 넘기고 37일이나 늦게 고객에 통보
고객 정보가 수사기관이나 과세 당국으로 넘어갈 때도 하나은행은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 은행은 법원이나 국세청 요청으로 고객의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하면 10일 이내에 어디에 왜 제공했는지 고객에게 알려야 한다.
하나은행 M센터는 2015년부터 2020년 사이 무려 172건이나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그 사실을 고객에게 제때 알리지 않았다.
통보는 최소 5일에서 최대 37일이나 지연됐다. 고객들은 자신의 금융 정보가 외부기관에 넘어간 줄도 모른 채 한 달 넘게 방치된 셈이다. 고객의 알 권리 침해며 혹시 모를 법적 대응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