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윤 소설가
할머니는 방문을 벌컥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할머니의 공단 치마가 펄럭일 때마다 알록달록한 속바지가 꽃밭처럼 출렁였다.
“강아야, 냉큼 일어나. 윤희야, 언니 깨워라.”
엄지손가락을 입 속에 집어넣고 쪽쪽 빨며 윤희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났어. 생각중이야. 건들지 마.”
“생각은 무슨, 일어났으면 얼른 씻고 학교 가.”
할머니는 아침부터 평상에 앉아 술을 마셨다. 나는 일어나 할머니를 쏘아보곤 수돗가로 갔다.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평상 앞에 섰다. 수건을 터는 척하다 평상에 놓인 술병을 쳤다. 술병이 평상에서 떨어지자 할머니는 헐레벌떡 평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굼뜬 할머니의 동작에 비해 술병은 순식간에 소리를 내며 깨졌다. 동생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밖을 내다봤다.
“에이, 쓸모없는 것들. 할미 등골을 쪽쪽 빼먹는 것들.”
나는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머니 등 뒤로 바글바글 달려들어 등골을 쪽쪽 빠는 상상을 했다. 할머니의 등뼈는 너무 약해, 조금만 힘을 줘도 바삭 부서지고, 물컹물컹 골이 줄줄 흘러, 맛없어. 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고소해 했다. 할머니는 주정을 한바탕하고 난 뒤 잠을 잤고,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변덕을 부리며 내 눈치를 보며 우리에게 맛난 것을 해주었다.
거울 앞에 앉은 내 옆으로 윤희와 미아가 바짝 다가앉았다. 윤희의 오른쪽 눈동자가 불안한 듯 딴 곳을 쳐다보았다. 윤희는 간헐사시다. 언니들이 윤희 몰래 속닥거리는 것을 들었다. 윤희의 어깨를 꼬집어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쳐다보게 했다. 나는 윤희에게 작은 거울을 뒤에서 들고 있으라 하고 빗으로 뒷머리에 가르마를 타고 머리칼을 양 갈래로 땋았다. 책가방을 싸는 동안 윤희와 미아는 내 눈치를 보며 서둘러 옷을 입었다. 우리 셋이 마루를 나설 때 할머니는 마룻바닥을 탕탕 쳤다. 샛노란 금가락지가 끼워진 할머니의 주름 많은 손바닥이 마룻바닥에 실제 손보다 더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었다.
“지가 시집와서 한 일이 뭐냐, 아들을 낳았나, 가정을 일으켰나, 근데 뭐가 그리 잘나서 날 이렇게 부려먹어, 왜, 왜에.”
골목길을 지나 학교 운동장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미아와 윤희는 말 한 마디 없이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철봉이 있는 곳으로 갔다.
금을 그었다. 담벼락에서부터 철봉대와 나무 그늘 아래까지 커다랗게 반원을 그렸다. 손을 허리에 올리고 윤희와 미아에게 지시했다.
“이 금 밖을 절대로 나가지 마. 심심하면 철봉에서 놀고 미끄럼틀도 타. 이 사탕을 먹어. 나무 그림자가 요만큼 움직이면 내가 나올 거야.”
나는 은행나무의 그림자에서 한 뼘 정도 되는 곳에 선을 그었다.
“절대 원 밖으로 나가지 마. 아이들이 철봉대에 오면 담 아래 앉아 있어, 말 안 들으면 다신 안 데리고 온다, 알았지?”
운동장을 가로지르다 뒤를 돌아보았다. 은행잎이 노랗게 떨어져 있는 담벼락 아래 쪼그리고 앉은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윤희의 오른쪽 눈동자가 멍하니 하늘을 향해 있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창가에 앉은 남학생에게 가 언니의 미술책에서 빠닥빠닥한 종이를 뜯어 접은 딱지를 건넸다. 그 애는 가방을 들고 내 자리로 갔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미아는 그네를 타고 있고 윤희는 담벼락 아래에 앉아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윤희가 입은 노란 치마 속 팬티가 보였다. 바람이 쌀쌀한데 타이즈를 신지 않았다.
일 교시가 끝나자마자 나는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윤희는 나무 그림자가 더 지나갔다며 투덜거렸다. 선을 그어 놓은 자리에서 손톱 속 반달만큼 그림자가 지나가 있었다. 나는 나무 그림자 옆에 한 뼘보다 조금 길게 간격을 두어 선을 그었다. 미아는 녹색 철봉대 아래에서 모아 놓은 모래 가운데에 하드 작대기를 꽂으며 윤희를 불렀다. 윤희는 노란 치마를 팔락거리며 뛰어갔다.
수업시간 내내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내 시야에서 동생들은 바닥을 뒹구는 은행잎처럼 팔랑거렸다. 종례 시간에 선생님은 당번을 가르쳐 주며 청소를 지시했다.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와글와글 떠들었다. 나는 그 틈을 타 교실을 빠져나갔다. 반장이 복도까지 쫓아 나와 청소하고 가라고 소릴 질렀다. 나는 못들은 척하고 뛰었다. 토요일이고 아버지에게 가는 날이었다. 실내화도 갈아 신지 않고 운동장으로 달려가며 윤희의 이름을 불렀다. 땅따먹기를 하던 윤희와 미아는 원을 벗어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나를 향해 뛰어왔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 금을 벗어나지 말라는 내 명령쯤은 어겨도 좋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밀가루 반죽을 밀고 있었다. 마당에는 물이 뿌려져 있었다. 윤희와 미아를 데리고 수돗가로 갔다. 미아는 혼자서 씻고 윤희는 내가 씻겼다. 나는 윤희의 이마에 내려진 머리칼을 위로 올렸다.
“나를 봐, 윤희야”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있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자매들과 달리 윤희는 얼굴이 하얗고 이마가 동그랗게 불거져 있고 눈이 커다랗다. 얼굴을 씻기고 나면 여름 날 장독대에 피는 흰 도라지꽃 같았다. 나는 도라지꽃을 손으로 눌러 터트리곤 했다. 하얀 이마를 누르면 톡 터질 것 같았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도라지 향내가 났다.
국수가 삶아지는 동안 할머니는 윤희와 미아의 머리를 빗겨주었다. 국수를 먹고 난 뒤에는 우리 뒤를 따라 나섰다. 길을 안다고 해도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곤 역 앞에서 나를 불러 세웠다.
“강아야, 니 어미한테 할미 술 마셨다고 일러바치지 마라.”
나는 할머니에게 눈을 흘기다 고개를 끄덕이곤 동생들의 손을 잡고 개표구 앞에 섰다. 검표원은 표 없이 서있는 우리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지만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묵호역에서 근무하세요.”
그러면 검표원은 그래 공주네 구나, 하며 어서 들어가라고 했다. 우리는 개표구를 통과한 뒤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는 그제야 왼손은 허리 뒤로 돌리고 오른손을 휘저으며 역전에 있는 안주옥을 향해 걸어갔다.
윤희와 미아는 창가에 다가앉아 바다를 보며 소리쳤다. 기차가 네 개의 역을 지나 묵호역에 도착하면 빨강과 초록, 두 개의 깃발을 들고 서 있던 아버지는 빨간 깃발을 들어 우리를 맞이했다. 아버지는 우리를 관사 마당까지 데려다 주었다. 관사로 가는 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할머니가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고 일렀다.
우리는 관사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살림놀이를 했다. 동생들이 밍크 담요로 만든 무덤을 뭉개며 잠들었을 때, 나는 일어나 방 안을 정리하고 관사 밖으로 나왔다. 어디선가 짤랑짤랑 방울 소리가 들렸다. 역사를 향해 걸어갔다. 리어카에 물건을 실은 아카브 구씨가 역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를 쫓아가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양팔을 펴고 철로 위를 걸었다. 아카브 구씨도 예전에는 역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왜 아카브 구씨로 불리는지 궁금했다. 물건을 잔뜩 싣고 커브를 돌 때, 리어카의 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해 아, 카브요, 하고 소리쳐서일 거라 생각했다. 어른들은 그가 사람을 잘 속여서라고 했다. 진아 언니는 그에게 아프리카 깜둥이 아들이 있은 적이 있어 아카부, 구씨라 했다. 진아 언니는 그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 그가 나에게 일곱째인지 묻는 것은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흑인 아이를 데리고 온 여자가 당시엔 구총각, 이라 불린 그의 아이를 뱄다. 엄마와 여자는 서로의 배를 만져보았고 배 모양을 비교해 성별을 헤아려 보았다. 그는 밤새 일하고 쉬는 다음 날 아침이면 새벽시장에 들러 양손 가득 먹을 것을 사들고 관사로 왔다. 고기며 과일들을 엄마에게도 건네줬고 뱃속에 있는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나는 그의 행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였으며 동시에 그의 죽은 아이의 성장을 가늠해 주는 아이였던 것이었다. 나는 그가 좋았다. 딱히 나에게 주는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 다음주 토요일 3회가 이어집니다.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