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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문형배의 단호한 함성《호의에 대하여》···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의 언어
  • 정해든 기자
  • 등록 2025-08-30 15: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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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보통의 삶을 위해 배우고 성찰하며 기록한 120편
  • - "내가 법정에서 화내려 하면 법복 소매 당기라"

문형배 지음 / 김영사 / 18,800원


"친구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을 간다는 주목나무를 소개해주었고, 나는 헤아릴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주목나무 사진을 찍어 존경하는 박 선배에게 보냈다. 선배를 닮은 것 같아 보낸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그 선배는 수백 년을 삶의 단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 문형배


낡은 교복과 교과서를 물려받을 정도로 가난한 소년. "내게 고마울 필요 없다. 나도 이 사회에서 받은 것이니 갚으려거든 이 사회에 갚아라"는 김장하 선생의 말을  새기며 살아온 청년.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전국이 긴장감에 휩싸이고 많은 사람이 초조하게 기다리던 시각. 문형배 대법관이 '주문'을 외웠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대한민국에 환호성이 휘몰아쳤다. '12·3불법비상계엄'에 분노하면서도 참아내고, 총칼에 긴장해야 했던 감정들이 북받쳐 올라오는 함성이었다. 그의 표정은 차분했고 목소리는 단호했다.


김영사에서 문형배 에세이《호의에 대하여》를 펴냈다. 편견과 독선에 빠지지 않고 작고 평범한 보통의 삶을 지키기 위해 배우고 성찰하며 기록한 글 120편이 실려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우리 모두는 절망과 희망의 시간을 살아왔다. 윤석열은 탄핵됐지만 불법비상계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더불어 올바른 길을 제시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 책은 위기의 시대에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작은 호의와 올곧은 원칙이 필요하다는 걸 말한다. 판결문 속의 단호한 언어와는 다른,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의 언어가 실려 있다.


재판관으로서 원칙과 정의를 지켜온 저자의 목소리가 법정이 아닌 글에서 울려 퍼진다. 나무와 계곡, 책과 사람, 일상의 사소한 장면들에서 저자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러준다. 


그 어떤 커다란 금전적 이득보다 호의를 담은 말 한마디가 때로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방지하는 한 수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화는 그 반대의 효과를 낸다는 점도 알고 있다. 조정실이나 재판정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면 화를 이기기 힘들므로 화가 나기 전에 화를 늦추라" 한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을 때 가장 큰 손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배석판사들에게 "내가 법정에서 화를 내려 하면 법복 소매를 당기라"고 부탁한다. 


저자는 화이트칼라 범죄에 엄정하게 판결했다. 창원지법이 공직 부패와 비리의 양형 기준을 강화할 때 참여했고 재판 과정에 그 기준을 반영했다. 전관예우 논란을 없애기 위해 법원 게시판에 "양형 기준제"를 전면 확대하자"고 했다.


스스로 엄격해지기 위해서다. 그들은 "판사에게 심정적으로 와닿는 면이 있다"며 범죄 이유를 밝혔다. 판사의 사회적 경험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누군가의 작은 호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보고 스스로 증명했다. "먼저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다." 이 책이 그 시작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거창한 구호는 없다. 여러분께 했던 말을 실천에 옮기고, 남을 비판할 때 썼던 그 잣대로 스스로 삶을 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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