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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윤 소설가의 유리정원] 소요 3편
  • 박정윤 소설가
  • 등록 2025-08-30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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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울음을 터뜨린 아이의 손에 있던 풍선이 하늘로 올라갔다. 빨간색 풍선은 누군가 밑에서 바람이라도 불어주듯이 하늘로 빨려갔다. 동시에 여자의 비명이 들렸고 카누가 뒤집혔다. 나는 돌고래 상 구역인 안전요원을 바라보았다. 생리 중이라 말하려 할 때, 그가 말했다. 그쪽 구역이거든요, 구명조끼 입으라는 말 안 듣더니. 그는 여자가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고소해하는 표정이었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곧바로 하체가 미지근해졌고 축축한 생리대로 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생생했다. 카누가 뒤집힌 쪽으로 수영하며 나는 구명조끼를 입은 남자가 필사적으로 헤엄쳐 카누에 매달리는 것을 보았다. 하얀 원피스가 까뒤집혀 여자는 수영할 겨를도 없이 팔을 파닥거렸다. 나는 여자의 머리칼을 둘둘 말았다. 말려 올라간 원피스 자락을 잡아도 되는데 머리카락 채를 잡아당겼다. 여자가 어느 정도 물을 삼키도록 일부러 천천히 여자의 상체를 끌고 카누를 향해 헤엄쳤다. 어쩌면 지금, 여기에 아무도 없고 여자와 나 단둘이라면 나는 여자를 건지기 위해 물에 뛰어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여자가 얄미웠으니깐. 머리를 휘저었다. 움직임이 정지된 밀랍 인형이 아닌, 사람을 물속에 가라앉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랬다, 백 번을, 바보천치가 되어 생각해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단단한 등으로 벽을 만들고 서 있었던 섬의 여자들이 떠올랐다. 죽음을 방관할 만큼 사람이 미워지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자는 악착같이 내 몸에 달라붙었다. 여자의 원피스가 내 몸에 휘감겼다. 구조 보트를 타고 온 요원들이 남자를 보트에 태우고 여자를 양쪽에서 잡아 올렸다. 여자는 그 와중에도 핸드폰을 찾아달라고 버텼다. 티켓팅을 할 때 핸드폰에 관한 주의사항을 들으셨을 텐데요. 선착장 직원이 여자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여자는 선착장에 오르자 비명을 질렀다. 하얀 원피스에 핏물이 스며들었다. 핏물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는 서둘러 락커 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잠깐만요, 여자가 내 팔을 잡고 내 다리 아래를 살폈다. 칠 부 스판으로 달라붙은 검은 바지 틈새로 흘러내린 핏물이 종아리를 타고 내렸다. 


무엇을 보았니, 무서운 것을 보았어요, 그건 꿈이란다, 그러니 어서 꿈에서 빠져나오렴, 어떤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져요, 저기 무리에서 벗어나 천천히 날아가는 새가 보이니, 저렇게 뒤처진 새가 나쁜 꿈을 물고 날아갈 거야, 새에게 말해버려, 그리고 잊어라. 아버지는 낡은 목선을 가지고 있는 어부였어요, 섬에서 아버지처럼 목선으로 고기를 잡은 어부는 없어요, 아버지는 진짜 섬사람이었어요, 섬사람은 섬을, 바다를, 모래를 팔아넘기지 않는 사람이래요, 아버지를 따라 목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어요, 속을 슬며시 들여다보기만 해도 바다에는 갇혔던 물고기를 방금 풀어놓은 것처럼 어지럽게 물고기들이 돌아다녔어요, 바닷물이 먼바다로 빠져나갈 때였어요, 볼록볼록 솟아오르던 모래언덕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버지가 섬을 향해 목선의 방향을 틀었을 때, 익숙한 모래언덕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그리고 그것을 보았어요.


여자는 섬으로 온 다음 날 아침에 머리카락을 잘랐다. 바다 풍광을 막는다고 아버지를 꼬드겨 마당 가에 촘촘하게 서 있는 소나무를 베어냈다. 나무가 쓰러지자 마당 가득 바다가 펼쳐졌다. 아버지의 목선까지 보였다. 여자는 마당에 어질러진 그물을 걷어 구멍이 헐거워진 곳을 단단하게 기웠고 마당에 난 잡풀을 뽑았다. 낡은 셔츠를 가위로 오려 대나무에 연결에 총채를 만들어 마루 천장과 방 구석구석을 털어냈다. 노래를 부르며 총채를 휘두를 때마다 자잘한 돌과 먼지가 후륵 떨어졌다. 여자는 시멘트벽에 흰색 페인트를 두껍게 칠했다. 방마다 틈새를 회반죽으로 메웠고 오톨도톨한 질감이 느껴지는 문양이 있는 벽지를 발랐다. 바다로 면한 창틀에 제라늄 화분을 놓았다. 부엌의 시멘트 바닥에 독한 세제를 뿌렸다. 이불 홑청을 뜯어 삶아 빨아 마당에 널었다. 펄럭거리는 광목 홑청 사이로 바다도 펄럭거렸다. 아버지는 조금씩 단장된 집을 보며 과하게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가 갓 잡아 온 우럭을 건네주면 여자는 까악까악 비명을 지르며 펄떡거리는 우럭을 받아 들다 놓치곤 했다. 아버지가 우럭을 손질해 매운탕을 끓여 내오면 여자는 붉은 국물 속의 우럭 몸을 뒤집어 살을 발라내 우리의 밥 위에 놓아주었다. 여자는 회로 뜬 생선 살과 매운탕보다는 석쇠에 올려 구운 생선을 좋아했는데 늘 생선을 두세 번 뒤집었다. 할머니가 있었다면 손등을 얻어맞을 일이었다. 할머니는 생선을 뒤집으면 생선을 걷어 올린 배가 뒤집힌다고 믿었고 생선의 뼈를 조심스럽게 끄집어내고 밑엣 살을 발랐다. 나는 여자가 생선을 뒤집을 때마다 아버지의 목선이 뒤집힌 것 같아 불안했다. 생선의 살을 발라 소요의 밥 위에 올려주고 생선의 내장까지 줄줄 빼서 후륵 삼키던 여자는 늘 마지막에 생선의 눈알을 빼먹었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목선을 태워달라고 떼를 썼다. 아버지는 삐쩍 마른 몸으로 벽만 찾아 달라붙어 앉아있는 소요를 잡아 일으켰다. 목선에 오르자 먼바다로 물이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바닷길을 이십여 분 달렸을 때 모래언덕이 솟아올랐다. 여자가 환상의 섬을 발견한 듯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목선을 모래언덕 가까이에 댔다. 출발할 때 달아 놓은 어망을 걷어 올리자 쭈꾸미 사이에 아버지 손바닥만 한 민어 한 마리가 있었다. 


-계속-


박정윤 소설가

덧붙이는 글

박정윤 소설가는 강원도 강릉 출생이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에 《강원일보》 신춘문예, 「바다의 벽」으로 당선된 뒤 2005년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로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프린세스 바리』로 제2회 혼불문학상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프린세스 바리』, 『목공소녀』, 『연애독본』, 『나혜석 , 운명의 캉캉』, 『꿈해몽사전』 등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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