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서둘러 후회를 하다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06-08 08:52:46
  • 수정 2025-06-15 11:28:50

기사수정


평소대로라면

등 떠밀며 서둘러 손 재촉했을 어머니가

오늘은 어쩐 일인지 종종걸음으로 큰길까지 나와

궁색한 목소리로 발길을 잡아끈다

- 자고 가믄 안 되냐?

죄지은 사람마냥

서 있는

젖은 눈망울

못 본 척

돌아서 왔다

풀죽은 보따리를 업고

그리운 도시를 향해 돌아오는 내내

궁색한 그 한마디가

마음을 찔렀다


-김월수 시인의 시 '서둘러 후회를 하다' 전문



김월수 시인의 시집《서둘러 후회를 하다》에 실려있는 시다.


이 시를 만나는 순간 "자고 가믄 안 되냐?"라는 "궁색한 그 한마디"가 돌아가신 필자의 어머니 말씀과 모습이 오버랩되어 눈을 찌르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평소와 다른 어머니의 종종걸음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에 쫓기어, 마음에 여유가 없어 외면하고 돌아설 때가 있었다. 놓쳐버린 그때가 "풀죽은 보따리"처럼 평생 미안함과 후회로 남는다. 


알베르 까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말한 "부조리는 우리가 깨닫는 순간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와 많이 닮아 있다. 한 순간을 포착한 시가 부모 자식 간의, 더 나아가 타인과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한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모과의 귀지를 파내다 모과에 핀 얼룩을 손으로 쓱쓱 문지르니점액질이 끈끈하게 배어 나온다얼굴에 핀 검버섯처럼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반짝거린다 모과의 귀에 면봉을 깊숙이 넣으니갈색의 가루가 묻어 나온다너는 그것이 벌레의 똥이라고 우기고나는 달빛을 밟던 고양이들의 발소리라 하고천둥소리에 놀라 날아들던 새의 날갯짓 소리라 하고새벽바람에 잔..
  2. [새책] 번아웃 겪는 2040세대를 위한 제안 《셀프 콤마》···하루 5분 '일상돌봄 코칭' 끝없는 경쟁과 정보 과잉 속에서 번아웃과 무기력을 호소하는 2040세대가 늘고 있다. '더 애써야만 살아남는다'는 압박감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소중한 자신을 갉아먹는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왜 마음은 늘 허탈하고 공허한 것일까?새로운제안에서 15년 차 HRD(인적자원개발) 교육전문가 이종미의 첫 책 《셀프 콤마》를 펴냈다. 과부하...
  3. 11월 '코리아세일페스타' 가전 라이벌전···삼성 'AI·상생' vs LG '할인·구독' 정면승부 대한민국 최대 쇼핑 축제 '2025 코리아세일페스타'가 11월 1일 시작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0년 연속 행사에 참여하며 대대적인 할인 경쟁에 돌입한다. 삼성전자는 AI 가전 패키지와 소상공인 상생 혜택을 전면에 내세웠고, LG전자는 높은 할인율과 구독 서비스를 무기로 맞불을 놓으며 11월 소비자들의 지갑 공략에 나선다.삼성...
  4.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접히다 "지금 화장 중입니다"승화원 전광판에는 뜨거운 불길이 일고한곳에 모인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 없었다전광판이 바뀌고눈물이 마르기 전 냉각을 마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육중한 철문이 열리고철제 침대가 끌려 나왔다붉은 장미로 채운 관과 황금빛 수의는 간 곳 없고주검을 눕힌 그 자리타다만 뼈 몇 개와 재만 놓여 있...
  5. [새책] 20대 청년이 쓴 《마르크스주의 입문》···세계 바꿀 가장 날카로운 무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는 지금, 왜 다시 마르크스주의를 읽어야 할까? 1%의 부자가 전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가 계속되면 마르크스주의는 다시 부활할까?오월의봄에서 20대 청년 이찬용이 쓴 《마르크스주의 입문》을 펴냈다. 그동안 나온 마르크스주의 책들은 대부분 오래됐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