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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화가의 수요수필] 흥미롭고 호기심이 생기면 도전하라!
  • 김형희 화가
  • 등록 2025-05-14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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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캔버스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여자
  • - 꿈, 사랑, 도전, 이것이 인생이다.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 부부의 소망을 담아 아기 이름을 의인이라고 지었다.

내가 의인이를 혼자 돌볼 수 없어 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돌보고, 국가 지원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본격적으로 양육이 시작되었다. 


요일에 따라 오전에는 지역복지관에서 보내준 산모 도우미 선생님들이 오셔서 아이 목욕, 우유병 소독, 청소를 도와주시고, 저녁에는 친정아버지,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 주시고, 조카 미령이는 심부름을, 늦은 밤과 새벽에는 남편과 내가 3시간마다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했다. 일하고 들어온 남편은 아기가 울어도 일어나기 힘들어할 때가 많았고, 나는 눈을 뜨고 있어도 아이에게 우유를 먹일 수 없어 안타까울 때가 많았는데, 언제부터가 친정아버지께서는 새벽이 되면 조용히 방에 들어오셔서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가셔 우유를 먹이고 재워 주신다. 


또 한 달은 시댁 부모님 집에서 돌봐 주셔서, 나는 매달 의인이가 먹어야 할 분유, 물의 양, 현재 진행된 상태, 해야 할 일들 등, 의인이 상태를 꼼꼼하게 적어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받았다. 모든 가족이 힘들지만 의인이를 사랑과 정성으로 돌봐 주시고, 다행히 낯도 가리지 않고 까다롭지 않고 순하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감사했다. 그렇게 의인이가 6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의인이는 분유를 먹고 자랐다. 아이에게나 산모에게나 모유 수유가 좋다고 하지만, 척수손상 장애인들에게는 ‘과반사증’이 있어 방광에 소변이 꽉 차서 팽창하거나 어떤 압력에 의해 통증이 심해지면 두통이 심해지면서 혈압이 올라 뇌출혈이 생길 정도로 매우 위험한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 증상이 아이를 낳은 산모의 젖가슴이 불어 팽창하게 되면 나타날 수 있다고 하여 나는 의인이를 낳고 바로 젖 마르는 약을 먹게 되었고 내 딸 의인이에게 한 번도 엄마 젖을 물려 보지 못했다. 그래서 늘 미안한 마음으로 아이의 이유식에 신경을 더 쓰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나는 개월 수에 따라 먹어야 하는 재료들로 영양소를 체크하여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장 활성을 위해 요거트를 직접 만들고 청국장 가루를 살짝 넣어 먹였다. 또 과자나 사탕, 시중에서 파는 유아용 음식은 먹이지 않았으며 유아 성장에 좋다고 광고하는 식품들에도 호기심을 배제했다. 나는 우리 의인이를 특별하거나 유별나게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나의 정성과 사랑을 듬뿍 담아 그 시기에 맞게 적용해 주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잘 자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신 마비 장애가 있는 엄마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은 정보를 알고 성장 발달을 관리해 주는 일뿐이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남편, 시댁, 친정 부모님, 도우미 선생님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하루는 도우미 선생님께 이유식을 부탁했는데 실수로 태웠는지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하지 않고 태운 이유식을 통에 담아 놓고 퇴근했다. 저녁에 남편이 이유식을 먹이려고 보았더니 검정 찌꺼기와 탄 냄새가 확 올라와 무척 화를 낸 일, 의인이 엉덩이가 자꾸 물러져 시어머니께서 천으로 만든 기저귀를 보내 주셔서 사용하였는데 아이 기저귀만 따로 세탁해 달라고 부탁했건만, 털스웨터와 함께 세탁기를 돌려 기저귀에 털이 붙어 따가운 기저귀를 채워 놓은 일 등, 그 외에도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믿고 부탁한 일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내 아이에게 피해가 되었을 때, 마비되어 감각도 없는 손끝이 저리는 심정이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워 보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는 말처럼 내가 의인이를 낳고 키워보니 내 부모님께서는 나 때문에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는 심정이었을지 이해가 되어 더욱 죄송스러웠다. 


세월은 참 빠르게도 흘러 의인이가 벌써 11살이 되었다. 나는 의인이로 인해 엄마가 되었고,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하는 철든 딸이 되었고, 내 옆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 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아내가 되었고,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 화가, 임상미술치료사, 기획자, 강연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고있는 김·형·희가 되었다. 앞으로 체계적인 맞춤 교육과 제도가 활성화되어 많은 여성 장애인들에게 임신, 출산, 양육의 혜택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아이를 키울 때 큰 어려움과 두려움이 없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김형희 /꽃이-피다-Ⅰ / 1994년/ 116.8 x 91.0 / Acrylic on Canvas



또 다른 도전 임상미술치료사


의인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심해졌다. 장애인 엄마인 내가 다른 엄마들처럼 보살펴 줄 수 없는 환경이 의인에게 결핍으로 채워질까 늘 불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을 고민했다. 우연히 ‘임상미술치료’라는 학문을 알게 되었고 매우 흥미롭고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임상미술치료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임상미술치료사 자격증 수업은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론 수업과 실기 수업을 받는 교육과정으로 남편이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수업이 있는 날 남편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의 외출 준비를 도와주고 6개월이 된 의인이 분유와 기저귀를 챙겼다. 그리고 남편이 운전할 때는 의인이는 내가 앞으로 안아 안전띠로 묶었다. 의인이도 칭얼대면 엄마가 힘들다는 것을 아는지 수업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히 안겨있었다. 


수업 장소에 도착하니 엘리베이터가 없다. 20개의 계단을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행히 남자 학우가 있어 매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공부하는 동안 남편은 의인이와 휴게실에서 기다렸고, 점심시간에는 계단을 다시 오르내리기 힘들어 도시락을 사다 교육실에서 먹었다. 


그렇게 안양에서 서울로, 실습을 위해 대구까지 3년을 오가며 이론과 임상 실습 500시간, 사례 발표까지 어렵게 해내고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여 임상미술치료사 1, 2급, 색채치료전문가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세계 최초 최중증장애인 임상미술치료사가 된 것이다. 정말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의인이까지 고생시키면서 얻은 결실이라서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내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의 과정들을 하나씩 회상해 보니 그림 그리는 과정이 심리적, 정신적, 육체적인 재활치유였음을 깨달았다. 흥미로웠다. 호기심이 생겼다. 남편에게 좀 더 깊이 있는 학문을 공부해 보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은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지지해 주었다. 


장애인 엄마인 내가 다른 엄마들처럼 보살펴 줄 수 없는 환경이지만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씩 도전하고 성취해 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의인이도 힘차게 응원하고 있음을 믿는다.



김형희 /꿈꾸는 그녀/ 1994년/ 116.8 x 91.0 / Acrylic on Canvas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김형희 화가는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졸업하고 CHA의과학대학교 통합의학대학원 임상미술치료 전공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 후 장애예술 단체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를 설립하고 대표를 역임, 현재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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