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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선의 희망공간] 봄을 기다리며
  • 송형선 활동가
  • 등록 2025-03-31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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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는 지금 감자를 심어야 할 때


꽃샘추위가 꽤나 매서웠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포근하다. 이제 의심할 나위 없는 봄이다. 봄볕이 따뜻하다. 곤줄박이 한 쌍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오르며 노래한다. 떼를 지어 날아가는 물까치들의 날갯짓도 경쾌하다. 호응하듯 여기저기 멧비둘기들의 노랫소리가 메아리친다. 언제 나왔는지 들판 곳곳에 봄나물이 지천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완전히 녹아 푸석푸석하다. 경운기로 땅을 뒤집고 계분 비료를 뿌리고 삽으로 푹푹 떠서 뒤집어 준다. 심심치 않게 나오는 주먹돌은 주워다가 밭 옆 경사진 길에 던져둔다. 비닐을 씌웠던 밭을 파다가 나오는 검은 비닐 조각들은 놓치지 않고 따로 버릴 요량으로 작업복 주머니에 넣어둔다. 


객토 뒤 고랑을 만든 감자밭에 감자를 심는다. 씨앗은 먹으려고 샀다가 다 먹지 못해 싹이 난 감자들이다. 싹이 난 감자 눈을 찾아 쪼개어 적당한 간격으로 심는다. 감자는 90일이 지나면 수확을 할 수 있다. 감자심기는 마치 봄을 선언하는 행사와도 같다. 감자를 심고 20일을 기다려야 싹이 나오기 시작하고 한번 싹이 솟아오르면 그때부터는 쑥쑥 자란다. 


봄맞이 농사일을 마친 사람들이 서둘러 마무리하고 서울로 간다. 밭농사만 농사가 아니라, 세상 농사가 더 중요한 농사란다. 산천에 벌써 봄이 왔는데 진짜 기다리던 봄은 오지 않고 있다. 긴 겨울을 길바닥에서 보내면서도 춘삼월 전에는 봄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그토록 기다리던 봄은 오지 않고 있다. 설마 더 늦게 오는 것이 아닐까? 아니, 봄이 오지 않고 다시 겨울이 되어 버릴까? 조바심에 밤잠을 뒤척인다. 때가 되어도 오지 않는 봄은 생명들을 움츠리게 한다. 봄인 줄 알고 싹을 틔우고, 피어난 꽃들이 때아닌 진눈깨비에 횡사한다. 늦어지는 봄만큼, 사람들의 삶도 위태롭다. 아직 오지 못한 봄을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린다. 거리에는 빈 가게들이 넘쳐난다. 윗집 아저씨는 12월 이후부터 미국 수출길이 막혀 두 달째 월급도 못 받고 있다고 한다. "탄핵해서 그렇다고", "얼른, 기각되는 것이 해결 방법이다"라고 믿고 있는 아저씨다. 아저씨의 판단을 탓한들 봄이 빨리 오겠는가? 우리는 자주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봄이 오길 기다렸다. 지지난 겨울이 끝나고 5월이 왔을 때 우리는 진짜 봄이 온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 봄은 미완의 봄이었다. 왜 봄이 왔는데도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고, 일하다 죽는 사람은 늘어가고, 비통한 사람들의 아우성은 멈추지 않았던가? 자식 잃은 부모들의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는가? 그 봄은 어떤 이들에게는 봄이었지만, 그늘진 곳에 살아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가짜 봄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봄은 진짜 봄이 되려나? 그늘진 곳 없이 두루두루 따뜻한 볕이 쬐려나? 젊은이들에게도 따뜻한 봄바람이 감싸주려나? 졸지에 가족들을 잃은 비통한 사람들의 가슴을 녹여 주려나? 멸종 위기 생명들의 생명을 지켜 주려나? 우리가 기다리는 그런 진짜 봄이 오긴 오려나?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말겠지. 오늘을 딛고 펼쳐진 4월의 들판을 지나 곳곳이 푸르러지겠지.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움츠리고 있으면 곤란하겠지. 우리는 지금 감자를 심어야겠지. 그래, 지금 새로운 미래를 심어야겠지. 그래야 희망의 싹이 돋아날 수 있겠지.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이 되기 전에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감자를 캘 수 있겠지. 누구나 배고프지 않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겠지. 


덧붙이는 글

마을기획 청년활동가 송형선은 사단법인]마중물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남동희망공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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