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영화 속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장면들은 선명하다. 아름다운 들꽃이 가득 피어난 평화로운 언덕, 햇빛이 찬란하게 비추는 곳을 따라 스크린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언덕 바로 옆에 들리는 사람들의 함성과 총소리, 총칼이 번득이는 아비규환의 싸움터였다. 전쟁 전의 평화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나 보이는 것도 없을 것이다.
요즘 세상은 온통 전쟁터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쟁터. 경쟁에서 뒤처지면 생존이 위협받는 곳. 살기 위한 일터에서 멀쩡히 일을 하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일터에서 밀려나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점점 늘어간다. 거기에 최근에는 생각과 생각들이 광장에서 전면전을 벌이는 또 다른 전쟁터가 매주 열리고 있다.
광화문에는 내란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고 처벌하자는 시민들과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이 수만 명씩 양편으로 나누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수만의 사람이 매주 다른 주장을 하느라 하는 것을 보면 총칼은 없으나 그 자체로 전쟁터처럼 느껴진다. 급기야 대통령이 구속되었다고 법원을 침탈하여 부수고, 불을 지르려는 진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마을은 평온하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일상의 소음 속에서도 마을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모든 마을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소리,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 만나는 소리, 이야기하는 소리, 사랑하는 소리가 마을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왜 마을 바깥은 전쟁터가 되어야 할까. 우리는 전선에서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 진지로 복귀하는 전사들이었던가? 마을의 평화가 왜 세상의 평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마을의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모두 전사로 바뀌는 마법이 일어나는 걸까? 아니면, 마을의 평화는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 걸까? 세상의 싸움을 마을로 가져와야 할까? 마을의 평화를 세상으로 넓혀야 할까?
어쩌면, 마을이라는 세상은 전쟁터 한켠에 있는 비무장지대이거나 중립지대인지도 모른다. 중립지대에서는 싸움이 중지된다. 적개심을 걷어놓고 서로를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싸움을 멈춰야 우리는 쉴 수 있고, 그 쉼 속에서 나를 살펴볼 수 있고, 상대를 확인할 수 있다. 기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대상은 지금 앞에 마주하고 있는 다른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순간에는 볼 수 없는 것을 중립지대에서는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는 적도 아군도 없다. 총을 겨누었지만, 총구 앞의 존재가 나와 똑같은 존재임을 알게 된다. 서로 맞서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동료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동막골'이라는 가상의 중립지대에서는 이런 기적이 벌어진다.
우리의 마을에서도 이런 기적을 꿈꿀 수는 없을까? 사람이 사는 마을이면 가능하다.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살펴볼 수 있는 그런 마을이면 기적은 가능하다. 그저 지친 몸을 잠시 누이다가 다시 전장으로 나가는 막사가 아니라, 사람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서로 만날 수 있는 마을이면 기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그런 희망을 만드는 공간을 소망한다. 이것이 미래를 함께 살아갈 우리 후손에게 남겨야 할 아름다운 마을이기 때문이다.
송형선은 마을기획 청년활동가로서 사단법인 마중물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남동희망공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