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축하를 주고받기가 미안할 지경이다. 무안 공항의 통곡과 함께 새 아침이 밝았다. 이곳저곳에서 명복을 빌고 있다. 답답하고 원통한 마음이 새해로 이월되었다. 세월호 참변 때는 ‘바다’라는 단어를 꺼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철새’라는 단어가 그렇다. 바다나 새의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 ‘새’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꺼려진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나날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든 것이 손가락질하고 있는 것 같다.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일밖에 남지 않은 것만 같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뒤틀리고 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다. 무연하게 자신을 내팽개치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온 세상이 째려보고 쏘아보는 것 같다. 어깨는 처지고 가슴은 휑하다. 돌연 낙엽 하나가 내려앉았다. 그게, 뭐 대수인가? 그저 낙엽인데? 어쩐지 가슴이 뭉클거린다. 바람은 수천 개의 손가락을 움직인다. 나무는 수만 개의 지문을 연다. 햇살은 수억의 햇살을 머금는다. 그때, 고달프고 스산한 마음을 알고 있다며 하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김사인의 시 ‘조용한 일’의 전문은 이러하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 고맙다 /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난은 물러나지 않았고 혼란은 멈추지 않았다.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며, 분열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거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막막하다. 걷잡을 수 없는 혼동으로 어수선하기만 하다. 그 순간에 내려앉은 낙엽쯤이야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렇지가 않다. 몽글거리는 가슴으로 보면, 보인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소질이 ‘신비로운 것에 대한 놀라움’이라고 했던 독일 작가 괴테의 말처럼 경이로움이 스며든다. 너무 많기에 오히려 보이지 않는 눈과 귀를 가진 하늘이 슬쩍 잎사귀 하나를 곁에 떨궈준다. “염려하지 말라,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될 것이다.”라며.
그런데도 자꾸만 한숨이 쉬어진다. 그저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해결이 되는 걸까? 언뜻 보면, 긍정을 담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데도 조용히 여명은 다가오고 있다. 어쩌겠는가. 어김없이 새해가 왔고, 희망을 부르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렇게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려고 하면, 놀랍게도 들린다. 온 우주가 보내는 강렬한 응원이! 지금은 ‘희망’을 말할 때다.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다.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 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박정혜 교수는 시-2006년 <시와 창작>신인상과 2015년 <미래시학>신인상을 받았고, 소설-2004년 <대한간호협회 문학상>과 2017년 <아코디언 북>에 당선되었다. 현재는 심상 시치료 센터장이며 전주대학교 한국어문학과,전주비전대학교 간호학과, 한일장신대학교 간호학과, 원광보건대학교 간호학과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