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일이 없다. 석연찮은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나라가 시끄러우니 덩달아 삶도 번잡한 것 같기만 하다. 고요하고 정연한 연말은 당치도 않다. 초조와 긴박감이 따라다닌다. 그러는 동안 속절없이 또 하루가 간다.
그런데도 감사할 수 있을까? 목사이며 작가인 존 오트버그(John Ortberg)는 "감사하다는 것은 인생을 선물로 느끼는 능력"이라고 했다. 이 짧은 말에는 '섭리'가 들어있다. 인생 자체가 '선물'이라는 것이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선물 따위는 필요 없다며 따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도로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태어났으니 살아나갈 수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삶은 '선물'이 된다. 존재하는 사실을 수용할 때 '감사'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능력'이 된다.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삶이 아니다. 고귀한 선물을 받아들 듯 살아가게 된다. 얼마나 간단한가? 그냥 '‘감사'만 해도 그런 능력이 용솟음칠 수 있다. 그러니, 감사는 선택이다.
‘감사’는 ‘웃음’과도 일맥상통한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는 것이 아니다. 웃으면 웃을 일이 생긴다. 웃으면 복이 온다. ‘감사’도 마찬가지이다. 감사할 일이 있어야만 감사하는 게 아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일어나게 된다. 감사를 자주, 많이, 수시로 떠올리면 감사가 곳곳에 넘쳐나게 된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다. 고난이나 역경조차 감사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을 내는 것은 어렵지만 할 수 있다. 힘들지만 감사하게 되면, 그 감사는 길을 내게 한다.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는 길, 마음 안의 근원을 향해가는 길, 미처 알지 못했던 은혜로운 길, 환란을 버티고 살아내게 하는 길, 아름다운 영혼으로 뻗어가는 길.
'감사'는 내면을 판가름하기도 한다. '감사'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자. 대번에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면서 지금 이 마당에 감사가 나오냐고 고함을 치고 싶다면, 스트레스가 높다는 증거다. '감사'라는 말을 했을 때 그다지 감정의 반응이 없거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라면,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조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감사'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하거나 환한 웃음이 번져간다면, 더할 나위 없다. 마음의 면역력이 탄탄해서 웬만한 스트레스는 먼지처럼 불면 날아갈 정도다.
마음의 중심으로 가는 빛나는 길을 떠올려보자. 영혼 성장을 이루는 탁월한 방식은 바로 고통이나 고난에 감사하는 것이다. 여러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다가도 서서히 빠져나오게 된다. 그런 경우라면, 감사는 도대체 누구한테 하는 것일까? 고통을 준 대상? 트라우마를 준 상황?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고난이라면 당연히 감사도 할 수 없고, 감사할 대상도 마뜩하지 않다. 존 오트버그의 말에서 실마리를 풀어보자. 인생을 선물로 주신 이는 누구인가? 무수한 우여곡절이 필연으로 얽히고설켜서 태어나게 하고, 결국 때가 되어 목숨을 거두는 이는 누구인가?
특정한 대상이 없는데도 감사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신과 접속하게 된다. 신이 삶을 선물처럼 누리게 할 능력을 주실 것이다. 감사로 인해 매일, 매 순간이 축제가 될 것이다. 늘 감사하다 보면, 범사에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힘은 '감사'에서 나오고, '감사의 힘'은 모든 것이 된다.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 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박정혜 교수는 시-2006년 <시와 창작>신인상과 2015년 <미래시학>신인상을 받았고 소설-2004년 <대한간호협회 문학상>과2017년 <아코디언 북>에 당선됬다. 현재는 심상 시치료 센터장이며 전주대학교 한국어문학과,전주비전대학교 간호학과, 한일장신대학교 간호학과, 원광보건대학교 간호학과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