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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10월
  • 어향숙 시인
  • 등록 2025-10-25 20: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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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흩어진 그림자들, 모두

한 곳으로 모이는

그 어두운 정오의 숲속으로

이따금 나는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쉽게 조용해지는 나의 빈 손바닥 위에 가을은

둥글고 단단한 공기를 쥐어줄 뿐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그것을 만져볼 뿐이다

나무들은 언제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작은 이파리들을 떨구지만

나의 희망은 이미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지면 모든 추억들은

갑자기 거칠어진다

내 뒤에 있는 캄캄하고 필연적인 힘들에 쫓기며

나는 내 침묵의 심지를 조금 낮춘다

공중의 나뭇잎 수효만큼 검은

옷을 입은 햇빛들 속에서 나는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2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

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본다


-기형도 시인의 시 '10월' 전문



이 시는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려있다. 


가을이 왔나, 하고 느끼기도 전에 어느새 짐을 싸는 듯한 요즘이다. 10월에는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어야, 그 "허무"를 감각해야 제대로 가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듯 채움과 비움도 다르지 않다. 지난 여름이 뜨거웠다면, 그래서 절망도 더 깊이 느꼈다면 "이따금 한 개 짧은 그림자가 되어" 정오의 숲속으로 들어가 "둥글고 단단한 가을 공기를 쥐어"보기도 하고 작은 이파리들이 낙엽되어 뒹구는 모습도 바라보며 지난날을 추억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절망"이 전부였던 적이 있을지라도 모두 지나간다. 문득 돌아보면 "절망"의 내용조차 가물가물하다. 이런 상실에 대한 기억과 존재의 어둠을 보듬으며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온전히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시는 이렇게 모순을 가로지르며 모순을 드러내는 표현 활동이다. 비록 "아침이면 머리맡의 촛불" 이 사라지고 빈병만 마주하게 될지라도 모든 불은 꺼지기 위해 타오른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삶이 참 덧없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애틋한지도 모른다. 10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허무의 색채를 깊이 느끼는 만추가 되기를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어향숙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김유정 신인문학상'(2016)을 받았다. 시집으로 《낯선 위로가 눈물을 닦아주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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