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이재용의 시시각각]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의 실질적 대책···노동의 깃발 대신 매달린 사람들
  • 이재용
  • 등록 2025-09-11 17:58:30
  • 수정 2025-09-11 18:01:16

기사수정
  • - 600일 만에 땅 디딘 노동자 박정혜 씨
  • - 노동자 폭압이 밀어 올려온 아찔한 하늘의 기록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고공에 매달렸던 사람이 600일 만에 지상으로 돌아왔다. 억지 해고로 올라갔고 회사의 외면과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인해 농성을 지속해야 했다. 


회사는 공장 문을 닫으면서 17명을 해고했다. 다른 지역에 있는 공장은 156명을 새로 채용하며 운영을 계속했지만 고용승계를 해달라는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다. 


겨울에 고공농성장을 차린 두 노동자는 여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내려오지 못했다. 겨울 내내 가물었고 2월에는 늦게까지 추위가 지속됐다. 4월에 한 노동자가 건강 악화로 내려와야 했다. 


긴 기간을 버텼던 노동자 박정혜 씨는 여당 대표의 책임 있는 약속을 듣고 지면에 발을 디뎠다.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팀을 직접 구성하겠다는 말을 듣기 위해 600일을 기다려야 했다. 세계 역사상 가장 긴 고공농성이었다.


그리고 세종호텔 앞 도로 위 10여 미터 높이의 폭 좁은 가설물에는 여전히 서울 세종호텔지부 '후지야'의 주방장이던 고진수 씨가 아직도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바로 아래로 차들이 계속 지나다니는 위태로운 자리다. 그 역시 해고노동자다. 


한국현대사에서 고공농성의 역사는 치열했다. 벽과 천장 없는 곳에서 뜨겁고 더운 계절을 나는 것만도 목숨을 거는 일인데, 더하여 단식을 하기도 했다. 황석영이 한국노동사를 집약한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창비, 2020)를 쓰면서 그 시작과 끝에 고공농성을 배치했던 것도 당연해 보인다.


세종호텔지부

왜 그렇게 목숨을 거는가? 평양 평원고무공장 파업 강제해산 이후 을밀대 지붕에 섰던 스물여섯 살 강주룡의 대답은 간단하다. 호소하기 위해서다. "자살하기 위해 나섰다가 사람들에게 호소나 하고 죽자고 지붕에 올랐다"는 것이 1931년에 잡지 《동광》에 실렸다. 박서련이 이 사건을 찾아 쓴 소설이《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 2018)이다.


현장을 찾는 기록노동자 희정이《여기, 우리, 함께》(갈마바람, 2020)에서 제시한 대답인 '임금 체불 정도로는 기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에는, 좀 더 복잡한 속내가 숨어 있다. 그럼에도 해법은 분명하다. "굴뚝에 오르고, 망루를 짓고, 끼니를 거부하고, 차가운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고 질문이 생겨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이 뒤이은 고공농성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현대 그룹과 경찰, 법원이 가세한 폭력적인 노조 봉쇄 전략에 4월 26~27일 78명이 82미터 높이의 골리앗에 올라갔다. 


이런 일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2년 전 백무산의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청사)에는 골리앗 크레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그렸으리라 짐작되는 시가 실렸었다. 고공에서 밧줄 하나에 매달려,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 일을 하는 노동자를 그는 '깃발 대신 매달린 사람'이라 불렀다. 


노동자들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위해서, 파업할 권리를 위해서, 부당해고에 저항하기 위해서, 고용승계를 위해서, 노조 탄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다. 가족을 위해 동료를 위해 앞으로 이 땅에 노동하며 살아야 할 인간을 위해, 항의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막아서는 무관심의 벽을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머무는 하늘은 그들에게 막다른 곳이면서 역설적으로 유일한 길이 열리는 곳이었다. 이제 그 길이 저 허공이 아니라 이 땅 위에 다양한 방식으로 널리 펼쳐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실질적인 대책을 기다린다. 인간의 가치에 대한 신뢰를 담은, 확실한 희망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모과의 귀지를 파내다 모과에 핀 얼룩을 손으로 쓱쓱 문지르니점액질이 끈끈하게 배어 나온다얼굴에 핀 검버섯처럼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반짝거린다 모과의 귀에 면봉을 깊숙이 넣으니갈색의 가루가 묻어 나온다너는 그것이 벌레의 똥이라고 우기고나는 달빛을 밟던 고양이들의 발소리라 하고천둥소리에 놀라 날아들던 새의 날갯짓 소리라 하고새벽바람에 잔..
  2. [새책] 번아웃 겪는 2040세대를 위한 제안 《셀프 콤마》···하루 5분 '일상돌봄 코칭' 끝없는 경쟁과 정보 과잉 속에서 번아웃과 무기력을 호소하는 2040세대가 늘고 있다. '더 애써야만 살아남는다'는 압박감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소중한 자신을 갉아먹는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왜 마음은 늘 허탈하고 공허한 것일까?새로운제안에서 15년 차 HRD(인적자원개발) 교육전문가 이종미의 첫 책 《셀프 콤마》를 펴냈다. 과부하...
  3. 11월 '코리아세일페스타' 가전 라이벌전···삼성 'AI·상생' vs LG '할인·구독' 정면승부 대한민국 최대 쇼핑 축제 '2025 코리아세일페스타'가 11월 1일 시작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0년 연속 행사에 참여하며 대대적인 할인 경쟁에 돌입한다. 삼성전자는 AI 가전 패키지와 소상공인 상생 혜택을 전면에 내세웠고, LG전자는 높은 할인율과 구독 서비스를 무기로 맞불을 놓으며 11월 소비자들의 지갑 공략에 나선다.삼성...
  4. [어향숙의 시가 있는 일요일] 접히다 "지금 화장 중입니다"승화원 전광판에는 뜨거운 불길이 일고한곳에 모인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 없었다전광판이 바뀌고눈물이 마르기 전 냉각을 마친 어머니를 모시러 갔다육중한 철문이 열리고철제 침대가 끌려 나왔다붉은 장미로 채운 관과 황금빛 수의는 간 곳 없고주검을 눕힌 그 자리타다만 뼈 몇 개와 재만 놓여 있...
  5. 2025년 포엠피플 신인문학상 주인공 22세 이고은 "시 없인 삶 설명 못 해" 올해 《포엠피플》신인문학상은 22세 이고은 씨가 차지했다. 16일 인천시인협회 주관하고 인천 경운동 산업단지 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1,351편의 경쟁작을 뚫고 받은 것이다. 행사 1부는 《포엠피플》 8호 발간(겨울호)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2022년 2월, 문단의 폐쇄적인 구조를 타파하고 회원들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기치 아래 창간된 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