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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의 호모룩스(Homo Lux) 이야기] 평강을 위하여
  • 박정혜 교수
  • 등록 2024-12-30 00:00:02
  • 수정 2025-01-14 21: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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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이라는 단어를 썼더니, 누군가 나무랐다. 특정한 종교에서 쓰는 단어라는 거였다. ‘평안’이라는 말로 바꿔 쓰라고도 했다. 불쾌한 듯 인상마저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 반응이 놀라웠다. 국어사전 그 어디에도 특정 종교 용어라는 설명은 없다. 어쩌면 그에게는 그가 언급했던 종교에 대한 상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염려도 있지만, 그래도 ‘평강’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평안’이 ‘편안’에 초점이 맞춰있다면, ‘평강’은 편안뿐만 아니라 온화하고 즐겁고, 들어 올린다는 다양한 뜻을 포함한다. 그러니 복이 되는 좋은 운수인 ‘행복’을 불러온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평강할 수 있을까? 도대체가 불안하기 그지없는 세상인데 말이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모든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같은 유형을 한데 묶어 부정이나 긍정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평강에 행복이 엮어진다면, 불안에는 불운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걸 알면서도 삶이 처한 상황은 좋지 않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제시하고 그의 막내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정립한 것이 ‘자아 방어기제’이다. 잠재적 불안의 위협으로부터 마음의 평정을 찾고자 무의식적으로 욕망을 조절하거나 왜곡하면서 누구나 사용하게 되는 심리를 일컫는다. 자신도 모르게 방어기제를 자주 쓰게 되면, 심각한 정신적 문제에 빠지게 된다. ‘누구나’ 쓰는 것이지만, 그러다 보면 ‘누구나’ 병들 수 있다. 그것은 ‘평강’과는 거리가 멀다. 

 

  ‘내맡김’이라는 단어가 있다. 비겁하고 수동적인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내맡김은 나보다 큰 존재를 인정할 때 이뤄진다. 세상과 생명을 주관하는 힘을 가진 존재를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신’이라고 하거나 ‘우주의 에너지’라고 해도 좋겠다. 내맡길 때 내려놓게 된다. 그럴 때 옥죄던 것으로부터 놓여나게 된다. 그 문제를 안고 끙끙대던 마음이 진정될 수 있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게 아니라 감나무 아래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감이 떨어질 무렵, 저절로 입이 벌어질 것이다. 

  정신의학자 데이비드 호킨스는 ‘완전한 내맡김은 영적 의지를 초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영적 의지’는 높은 차원에서 현재를 통찰하게 한다. 이것 또한, ‘누구나’ 있는 것이고, ‘누구나’ 하면 할수록 내면이 아름다워진다. 작가이자 영성 지도자인 에크하르트 톨레는 ‘내맡김’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고 했다. 내맡길 수 있는 사람만이 영적인 힘을 가지고, 그 상황에서 자유롭게 되며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내맡김’의 영어식 표현은 ‘Surrender’이다. 이 단어는 항복하고 권리를 포기하며 넘겨준다는 의미를 지닌다. 내맡길 수 있다면, 내려놓을 수 있다. 내려놓을 때 놓여나게 되면서 평강이 찾아온다. 연이어 찾아오는 행복을 만끽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내맡길 수 있을까? 이것이 관건이다. 초조와 근심으로 발을 동동 굴리게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초연하게 될까? 삶의 마지막 때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육체의 눈을 감을 때,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지 상상해보면 어떨까. 오로지 남은 영혼이 고유한 향기를 지닌 채 가야 할 길이 어딘지를 상상해보면 어떨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곳에 수시로 마음을 보내면 어떨까. 최면 요법가인 돌로레스 캐논은 ‘죽음과 삶 사이의 세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함께 지혜도 찾아온다. 육체로부터 이탈과 동시에 무엇인가가 일어나며, 전혀 새로운 차원의 지식 차원이 열린다.’ 직접 해보면, 체험하게 될 것이다. 놀랍게도 평강을 위해서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떠올리는 것이다. 죽음마저 감사하며 껴안는 것이다. 아니, 기꺼이 감사하며 죽음을 보듬는 것이다. 

 

 

 

 

 

 

 

 

 

 *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 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 예술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입니다.

덧붙이는 글

박정혜 교수는 시-2006년 <시와 창작>신인상과 2015년 <미래시학>신인상을 받았고 소설-2004년 <대한간호협회 문학상>과2017년 <아코디언 북>에 당선됬다. 현재는 심상 시치료 센터장이며 전주대학교 한국어문학과,전주비전대학교 간호학과, 한일장신대학교 간호학과, 원광보건대학교 간호학과의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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