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경 지음 /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18,000원
절판 20년 만에 선보이는 《딕테》가 원작의 디테일을 고스란히 살려 출간됐다. 1982년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차학경의 유작으로, 탈식민주의문학과 페미니즘문학, 소수자문학을 아우르는 '컬트 클래식'으로 평가받는다.
그간 《딕테》는 미술관을 찾아가거나 수십만 원대 중고본을 구해야만 읽을 수 있었다. 아시아계 미국문학 연구자들과 페미니즘 연구자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자리 잡은 이 작품은 도입부와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실험적 텍스트다.
작품은 한국의 유관순, 프랑스의 잔 다르크, 그리스신화의 뮤즈들, 저자의 어머니 허형순 등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학경은 이들을 영웅적 존재가 아닌 '우리 주변의 사람들'로 그려내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UC버클리에서 미술과 비교문학을, 파리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한 작가의 이력은 작품 전반에 녹아있다. 자서전, 소설, 역사, 시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영화의 점프컷기법까지 차용한 독특한 구성이 돋보인다.
라틴어, 한국어, 한문, 프랑스어, 영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언어 실험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1970-80년대 영어 중심 미국사회에 대한 도전이자, 독자들에게 새로운 해석의 자유를 선사하는 장치다.
시인 캐시 박 홍과 김승희는 "《딕테》는 당시 시대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걸작"이라며 "미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고전이 되길 바란다"고 평했다.
차학경이 "예술가의 길은 연금술사의 길과 같다"고 했듯 『딕테』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아스포라, 여성주의, 다문화주의, 탈식민주의 담론의 선구적 작품으로 읽히고 있다.